수기

수기 [나꽈우끼우 여행학교 수기] 행복이 넘치는 나꽈우끼우 마을

  • 공감만세
  • 2014-04-17
  • 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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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나꽈우끼우 여행학교, 공생의 마을살이

2016-07-02 ~ 2016-07-28

글_유연철/ 사진_공감만세

 

태국에 온 지 벌써 3일이 지났다. 마을에 들어간다기에 기쁨 반, 두려움 반의 반, 호기심이 반의 반이었다. 마을 가는 길에 주민들께서 너나없이 모두 모여 우리 공정여행팀을 반기고 있었다. 아이들과 어른들을 보니 막상 , 홈스테이를 하게 되면 혹시나 우리가 피해를 주지는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사람들이 환영식으로 전통춤과 노래를 하길래 다시 생각을 긍정적으로 바꾸어 즐거운 생활이 되겠구나!’라는 기대감으로 즐겼다.

 

 

그리고 그때 홈스테이를 할 집과 파트너를 정했는데 민재형과 같이 'NA'라는 엄마의 집으로 당첨되었다. 서로서로 관계가 서먹서먹했지만 나아질 거라는 생각을 가지고 집으로 향했다. 이 분의 집은 우리 할아버지 댁처럼 넓었다. 물론 치킨들과 병아리들도 많았고, 그 집 문지기인 뽀글이 개도 있었다. 놀라웠다. 그러나 집안은 더 넓었다. 마치 이층집 리조트 인 것 같았다. 물론 우리 방도 있었다. 다락방이었지만 나한테는 10평짜리 원룸인 것 같았다. 그리곤 'top'‘talk'라는 동생들을 소개시켜 주었다. 특히 'top'은 이름과 같이 키가 컸다. 마치 진격의 거인 에렌을 보는 것 같았다. 이러다 보니 벌써 저녁이 되었는데 손님 대접을 하는 듯이 귀하게 대접을 해 주셨다. 'NA'엄마는 우리 엄마를 보는 듯했다.

 

마을에 온 지 두 번째 되는 날, 이놈의 닭들이 돌림노래를 하는 듯이 꼬끼오~ 를 반복했다. 닭들에게 욕은 할 수 없고 정말 시끄러워서 일어났다. 근데 막 듣다보니 재미있어서 나도 닭들을 따라했다. 그런데 마침 할머니께서 절을 가자고 말씀하셨다. 우리들도 할머니를 따라가서 절에 갔다. 집을 지나 언덕을 넘어 밭을 지났더니 도착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절과는 다르게 분위기가 엄숙했다. 할머니께서 우리들을 끌고 법당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그 안에는 병현이네와 수진누나네도 있었다. 그런데 할머니께서 음식을 나누어주시더니 어떤 요강에다 넣고 물을 따르라고 했다. 그리고 스님께서는 불경을 외우셨다. 진짜 우리나라랑 다른 문화다.

 

 

오전에는 농사를 배웠다. 나는 1조였는데 도서관 뒤의 빈터를 밭으로 만들기 위한 작업을 했다. 남자들이 고랑을 팠고, 여자들은 이 일을 도와주거나 돌을 나르거나 나뭇가지를 날랐다. 그리고는 나와 병현이 그리고 연수 형까지 셋이 밭을 갈았는데 많은 경험으로 잘 할 수 있었다. 많이 해본 일이지만 많은 사람들을 위해 일을 한 것은 처음이라 평소 때보다도 두 배인 기쁨을 얻을 수가 있었다. 이 때 농사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여러 사람을 위한 것으로 협동심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점심을 먹고 난 후 어떤 골목을 지나 한 식물이 무성한 집에 들어갔는데, 허브 잎을 이용해 모기퇴치제와 수분 스프레이를 만들었다. 파 같은 허브와 깻잎 같은 허브를 씻고 삶았다. 냄새가 오이 같았지만 그래도 그 둘을 이용해 포션을 만든다니 참 신기했다. 그 후 저녁 후에 있는 한국어 교실을 위한 단어와 문장을 정했다. 이 전날 숙제로 낸 한글 단어, 문장을 생각해오는 숙제를 통해 축구(풋볼), 엄마(문매), 아빠(쿤퍼), 할아버지(), 할머니(야이), 태국(므엄따이), 한국(까올리), 안녕하세요(사와디(,)), 제 이름은 OO입니다. (폼츠 OO, 찬츠 OO), 고맙습니다.(컵쿤(,)) 등으로 정해졌다.

 

마침내 우리 여행자들이 선생님이 되는 시간인 한국어 교실 시간이 다가왔다. 홈스테이를 같이 하는 파트너들끼리 한 팀이 되어 반가웠다. 서먹했던 관계가 그 시간을 통해 가까이 접근할 수 있었다. 그러나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어떻게 가르쳐야 하나 우왕좌왕 하던 때 앞에서 리드를 해주어서 다행히 이 시간을 잘 보낼 수 있었다. 이 시간만큼은 정말 잊을 수 없는 선생님이 되는 시간이었다. 왜냐하면 나는 모르는 이한테 모르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을 좋아하고 즐겨했기 때문이다. 다음 프로그램은 오늘 하루를 돌아보며 몸으로 표현해요라는 시간이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가장 걸렸던 것이 수영이가 남자 애들 분위기가 이상했다라는 말에 우리가 너무 심했나? 라는 생각을 했다. 설령 내가 하지 않았다 해도 미안하다.

 

 

마을에 온 지 3일이 되던 날, 오늘은 특별히 시장에 갔다. 논산의 시장과는 다르게 마트처럼 소박하게 있었지만 먹을 것은 많았다. 할머니께서 스님께 시주할 음식과 우리가 먹을 젤리 우유를 샀다. 그리고 5분 후에 스님이 오셨다. 여기는 불교국가라 그런지 스님이 직접 오시고 최대한 조심스럽고 존경하는 듯이 했다. 10시쯤에 우리들은 식물을 키우는 실험장에 갔다. 자연에서 유기농으로 강물을 써서 키웠다. 내 소원이 여기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래서 뭐라도 조금 더 배우려고 더 열심히 물을 주고 심었다.

 

태국은 참 부럽다. 땅도 넓고, 비옥하니 여기서 아예 살고 싶었다. 그 후에 태국의 청춘들을 위해 '곰 세 마리'와 '올챙이와 개구리'를 추었는데, 틀렸지만 아이들의 웃는 모습을 보고 용기를 내서 훌륭하게 완료했다. 마을학교에서 가르쳤던 한글도 가르쳤다. 그 다음 태국VS한국 풋살을 붙었지만 아쉽게도 우리가 졌다. 그래도 재미있게 놀고 재미있게 끝내서 다행이다. 게다가 큰 스님까지 만나니 운이 좋다. 오늘의 한국어 교실은 '곰 세마리'를 가르쳤는데 나꽈우끼우 공립학교에 다니던 애들이 있어서 많이 어렵지는 않았다. 오늘의 밤은 걱정이 많다. 내일 떠나니 정들었던 가족과 마을을 보며 가족들의 눈물들이 머릿속에 아른 거리니 너무 힘들고 슬펐다.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그러나 시간은 가는 법, 아침은 매일 똑같고 헤어질 시간은 가까워지고, 마음이 복잡했고, 우울했다. 그러나 떠나기 전 아이들이 공부 할 수 있는 공간인 도서관을 꾸며주고 만들었다. 왜 나는 망치걸 밖에 할 일이 없는 것일까? 어찌됐든 이래봤자 시간이 안 갈 리가 있나. 헤어질 시간이 왔다. 홈스테이 부모님과 조부모님들이 다음에 다시 만나자는 말과 함께 눈물을 흘리신다. 나도 슬프다. 다시 이런 기회가 빨리 왔으면. 우연이라도 만났으면. 눈물을 흘리고 싶었는데 차마 나오지 않는다. 그게 더 안쓰럽다.

 

이 마을은 행복이 넘치는 곳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나라와 태국의 시골의 차이점을 알 수 있다. 우선 우리나라는 마을 사람들끼리 어울려있지 않지만 태국의 시골은 사람들끼리 대화도 많고 어울러져 있다. 여기 태국 아이들은 축구나 배드민턴을 하면서 어울리지만 우리나라 시골은 컴퓨터나 학원, 핸드폰 등을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나도 우리나라 사람이지만 창피하다. 3년 후에 태국에 다시 온다고 한다. 그 때는 내 동생 창성이랑 같이 와서 또 다른 여행과 교훈을 얻고 우리나라의 문제점을 알 수 있도록 태국에 데리고 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