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기

수기 [청소년 규슈 역사평화 기행 수기] 한국과 일본의 교류와 소통

  • 공감만세
  • 2014-02-14
  • 1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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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선입견을 넘어 공존으로, 규슈 역사평화 공정여행

2018-01-06 ~ 2018-01-12

글_박어진/ 사진_공감만세

 

1일차 : 와지로 마을 탐방기

나는 두 번째로 일본에 왔다이번에도 대중교통을 이용했고, 후쿠오카의 명물 칸막이식 라멘을 먹었다. 그 전에 먹었던 라멘에 비해 맛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주문할 때 면의 상태, 국물의 진하기, 파의 양 등을 모두 선택하여 먹을 수 있는 라멘이었다.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경험이었다.

 

공정여행 중 지내게 될 게스트하우스 '토모'. 처음엔 별로 기대하지 않았는데, 일본식 다다미 방과 여러 편의시설이 되어 있어, 우리나라의 게스트하우스보다 훨씬 좋다는 생각을 했다. 주인 할머니께 이 곳이 언제 생겼는지, 매년 전 세계 사람들이 어떻게 이곳에서 일본 문화를 배우고 살아가는지를 배우게 됐다.

 

 

그 후, 우리는 '토모'가 위치한 와지로 마을 탐방에 나섰다. 처음, 마을의 지도를 본 뒤 신사로 향했다. 신사는 일본 사람들이 자연에 있는 것들을 믿고 신으로 모시는 곳 이었다. 주인 할머니를 따라 들어가기 전 물로 손을 씻고, 박수를 두 번 친 뒤 기도하는 행위 등을 하며 겸손해 질 수 있었다.

 

문제는 자연신을 모시는 신사에 만행을 저지른 사람들을 모시고 참배하는 '신사참배'. 신사가 나쁜게 아니라, 그런 행동이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하철 역, 병원, 마트 등을 둘러보며 일본 사람들의 생활에 대해 여러모로 배울 수 있는 기회였다.

 

 

2일차 : 석탄박물관과 그 속의 우리들의 선조들

규슈에서의 두 번째 날, 석탄 박물관에 가기 전 위령비를 먼저 보았다. 위령비는 일제 강점기 때 50만명의 조선 청년들이 끌려가 석탄을 캐다가 죽어간 시신들을 위해 재일조선인들이 세웠다. 우리 선조들을 강제 징용을 당해 보상없이 노동을 했다. 나는 분노를 느꼈다. 일본인은 다 나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석탄박물관에서 만난 호리우치 선생님은 석탄의 정의, 석탄을 캐는 도구와 운송 수단 등에 대해 가르쳐 주셨다. 일본에서 최초로 유네스코 기록유산에 지정된 야모모토 쿠베에의 탄광 작품을 보고, 강제 징용 당한 선조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힘들고 고된 노동을 했다고 생각했다.

 

박물관에서 만난 타가와 시 이토시장님은 청동기 시대부터 지금까지 부산과 후쿠오카는 교류하면서 살았다고 이야기 했다. 이름 없는 선조들의 무덤에 가서 주변 정리 작업을 할 때, 그것이 누구의 무덤인지 모르지만 선조들을 위해 봉사하여 기뻤다. 지루하지 않았고, 더 열심히 활동할 수 있었다.

 

 

봉사활동 후, 추도비 앞에서 우리는 묵념을 했다. 선조들은 우리들의 공정여행을 보고 좋아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찾은 무궁화 당은 강제 징용 선조들을 위해 남과 북이 함께 납골당이다. 그 곳을 보며, 선조들의 고난으로 우리가 존재하지 않나 생각했다. 하루종일 지루하기도 했지만, 강제 징용 당한 선조들의 힘들었음이 느껴졌다. 그리고 타가와시 인권센터 처럼 활동하는 사람들을 보고 모든 일본인은 무조건 나쁘다는 편견을 버리게 되었다

 

 

3일차 : 한국과 일본의 교류와 소통

나고야 성 박물관은 우리나라 국립 진주박물관과 교류하여 지어진 박물관이다. 두 나라의 학자가 교루하여 만들어진 박물관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이유는 일본의 안 좋은 점도 전시했기 때문이다. 왠만하면 자기 나라의 좋은 점만 전시하기 마련이지만, 이렇게 사실을 전시해서 올바른 역사인식을 갖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멋있다고 생각했다.

 

한국과 일본이 소통하면서 이와 같은 박물관도 더 많이 만들고, 서로 잘못을 인식해 편견을 깨고, 악 감정을 사라지게 하는게 중요하다. 우리나라도 일본만이 아닌 우리나라가 어떤 점에서 문제가 있었는지 깨우쳤으면 좋겠다.

 

모형으로 전시된 반가사유상, 거북선 등 한국의 유품이 다양하게 있어서 이해하기 쉬웠고, 박물관을 둘러 본 것이 뜻 깊은 시간이었다.

 

 

이 글은 14년 1월 <청소년 규슈 역사평화 기행> 참가자 '박어진' 님의 수기에서 일부 발췌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