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기

수기 [필리핀 여행학교] 이제까지 내가 해왔던 여행은 비겁했다_강*비

  • 공감만세
  • 2023-12-15
  • 1085
루손섬_모바일버전_240422_4대3_썸네일_루손섬.png

[24 여름][필리핀] 편견을 넘어 가슴 뛰는 필리핀, 루손섬 청소년 여행학교

2024-07-21 ~ 2024-07-31 2024-08-04 ~ 2024-08-14

내가 이 여행에서 얻은 것은 '진실한 생각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자'는 거다. 그러면 빈곤에 굶주리는 사람들을 모른 척하지 않을 수 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생각 있는 사람이 되자’ 이것이 나의 바람이다. 앞으로 거짓말로 현실의 눈물이 숨겨지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 필리핀 여행학교 참가자 강*비 

 


2013년 1월 23일 수요일
전에 갔던 해외여행은 말 그대로 관광이었다. 고급 호텔에서 머물며 비싼 음식만 먹고 놀이동산과 박물관을 갔다. 여행이란 그런 것인 줄 알았다. 
어느 날 아빠가 공정여행을 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호화롭지 않은 여행 같았다. 청결하지 않은 환경에서 지낸다길래 처음에는 가기 싫었다. 하지만 등 떠밀려 필리핀에 오고 나니,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필리핀하면 아름답게 석양이 지는 바다, 관광지가 떠올랐는데 내가 도착한 곳은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맨발로 다니는 아이들, 판자촌을 보자 ‘내가 알고 있던 건 필리핀이 아니었구나’ 생각했다. 세계문화유산인 계단식 논이 사라져 가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공정여행은 여행을 온 나라의 모순된 모습이 아닌 씁쓸한 현실을 배울 수 있게 하는 여행이다. 이제까지 내가 해왔던 여행은 비겁했다. 관광객의 입장에서 볼 때 편안함만 추구했었다. 이곳에 와서 현지인들과 지내보니 진심으로 이 나라를 이해하게 됐다. 공정여행이란 관광객이 아니라 현지인으로 자세를 낮춰서 배우는 여행이다. 내가 다시 이런 여행을 할 수 있을까.

 


2013년 1월 24일 목요일
오늘은 고된 일이 많았다. 오전에는 잡초 뽑기를 하고 오후에는 탑피아 폭포에 갔다. 딱 보기에는 두 가지만 한 것 같지만 어마어마하게 힘들었다. 
바타드 트래킹은 체력장이나 다름이 없었다. 미끄러운 길에 계단이 1억 개는 되는 것 같았다. 가도 가도 오르막이 안 끊겼다. 결국 탑피아 폭포에 도착해서 물놀이를 했고, 돌아올 때 또 다시 생고생을 했다. 가이드들이 우리의 짐을 들어주며 동행했다. 우린 라면을 먹기 위해 열심히 사이먼 산장으로 돌아왔다. 


'내가 평소에 쉽게 할 수 있었던 작은 일도 원래는 고된 일을 거쳐야만 이뤄질 수 있는 거구나'하고 생각했다. 가이드를 보면 겉으로는 웃지만 미치도록 힘든 길을 나보다 더 많이, 돈을 벌기 위해 가야 한다. 내가 힘들다고 생각하는 일을, 곁에서는 배로 힘들게 하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오늘 숨넘어가도록 산을 넘었지만 가이드에게는 돈을 벌 기회를 주었다. 선생님 말처럼 세상은 모두가 연결되어있는 것 같다.

 

2013년 1월 27일 일요일
바공실랑안에서 BSYF라는 단체를 만나 각자 하룻밤을 지낼 집을 찾아갔다. 룸메이트와 골목으로 점점 들어서는데 다큐멘터리에서 본 것 같은 집들이 빽빽이 들어차있었다. 우리를 신기하게 쳐다보며 어설프게 “안녕하세요”라고 말하는 이들도 많았다. 적응하기 힘들었다. 흙길에 앉아있는 아이들이 무서워 보였다.


문득 더러워 보이는 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을 불쌍하게 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홈스테이 집을 열악하다고 투정부렸던 게 후회스럽다. 돈을 달라고 손을 펴보이는 아이들을 보면서 왜 나는 ‘싫다’는 느낌이 들었을까. 가난하다는 것이 죄가 아닌데 말이다. 어제 선생님께서 보여주신 다큐멘터리에서 나왔던 말이 생각난다. ‘가난한 사람을 외면하는 것은 그 자신이 가난하기 때문이다’ 빈부격차 속에서 마음으로 벽을 만드는 내가 부끄럽다.

 


2013년 1월 28일 토요일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참 힘들었다. 하지만 공정여행에 와서 많은 것이 깨졌다. 호텔에서 머물며 비싼 음식을 먹고 큰 박물관만 갔던 여행은 여행지를 무시한 여행이었다. 나는 잔인한 사람이었다. ‘필리핀’ 하면 떠오르는 것이 아름다운 바다, 볼거리인데 그것은 사람들의 눈물을 감춘 것이었다. 인구의 80%가 가난한 나라에서 나는 호화로운 생활을 원했다. 부끄럽다.

 

누군가 물었다. “당신은 왜 더럽고 힘든 곳에 가는가?” 나는 선뜻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높은 산을 오르고 벼농사를 돕고 누추한 집에서 잠을 청했지만 정작 내가 왜 이러한 여행을 하려 했는지 명확한 답을 찾기 어려웠다. 그렇지만 바공실랑안에서 손을 펴 보이며 돈을 구걸하는 많은 아이들을 보고 깨달았다. 이것이 필리핀의 모습이구나. 그것이 진실이었다. 우리는 지금까지 으리으리하고 황홀한 생활만을 희망해왔다. 거짓이다.
내가 이 여행에서 얻은 것은 진실한 생각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자는 거다. 그러면 빈곤에 굶주리는 사람들을 모른 척하지 않을 수 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생각 있는 사람이 되자’ 이것이 나의 바람이다. 그리고 앞으로 거짓말로 현실의 눈물이 숨겨지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