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기

수기 [공정여행 수기 당선작 - 아동 장려]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

  • 공감만세
  • 2013-12-17
  • 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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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내 인생의 쉼표, 치앙마이 힐링여행

2017-01-01 ~ 2017-12-31

 글_이효진/ 사진_공감만세

 

 

태국, 치앙마이.

이제 내게는 설레는 이름이 되었다. 치앙마이에서의 경험은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 2012년, 포상제를 처음 시작한 해, 탐험활동을 해야 한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나는 태국으로 공정여행을 가기로 했다. 공정여행에 대해 잘 모르는 상태였고, 막연히 ‘공정한 여행’, ‘소통하는 여행’ 이라는 얄팍한 지식만이 있었다. 지도교사 선생님께서 설명하는 공정여행은 ‘재미있을 수도 있겠다와 고생되겠는데…….’라는 생각뿐이었다. 구체적인 공정여행이라는 지식도 없이 단지 포상제에 필요하다는 말만 듣고 1월 말, 나는 태국 치앙마이 Slow City라는 도시로 향했다. 우리 공정여행 팀은 곧바로 치앙마이로 떠나는 것이 아니라 공주에 있는 마곡사라는 산사로 예비탐험을 하였다. 주제는 ‘한국불교와 태국불교는 무엇이 다른가?’ 이었다.

 

그때 선생님께서는 ‘태국’하면 떠오르는 것들을 적어보거나 그림으로 그리라고 하셨다. 내가 태국에 대해서 떠오르는 것이라고는 불교, 코끼리, 줄지어 가는 동자승……. 그런 것 들 뿐이었다. 그러한 나의 연상은 태국과 한국과의 불교에 대한 차이점을 알지 못했다. 기독교인 나는 불교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는데 마곡사라는 절에서 명상의 방법, 108배의 의미, 그리고 마곡사 뒷산과 연결되는 ‘명상의 길’을 걸으면서 자연과의 합일을 추구하는 한국불교의 매력에 푹 빠져들었다. 깊은 산속의 산사의 고요함, 스님이 끓여주시는 오랜 기다림 끝에 우러나오는 자연과 닮은 향기로운 차 한 잔이 내 마음의 고요함을 느끼게 해주었다. 한겨울속의 추운 산사에서 입으로 불어 나오는 하얀 입김과 군불로 방바닥을 지져댄 따끈한 산사의 방에 누워 생전 처음 해보는 공정여행에 대한 기대감, 얼른 따뜻한 나라로 가고 싶다는 생각, 친구들과 수다를 떨다가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첫 발을 딛고 비행기에서 내렸을 때 태국은 나에게 훅-하는 열기를 내뿜으며 나에게 첫 인사를 했다. 나는 덥다, 덥다 하였지만 사실 따뜻하면서 더운 그 열기가 반가웠다. 드디어 목적지인 태국에 도착한 것이다. 공항에서 입국 수속을 마친 뒤 YMCA청소년 센터로 향했다. 버스를 타고 이동하면서 차창 밖으로 보이는 낯선 풍경들이 반가웠다. 내가 드디어 태국에 있구나, 나의 여행이 비로소 시작 되었다는 기대감으로 설렜다.

 

YMCA청소년 센터에서는 푹신한 호텔방에서 부드러운 침대에서 자는 것이 아니라 탐험활동 때문에 텐트에서 자야 했는데 친절한 태국인들이 우리들이 쳐야 할 텐트를 다 쳐주었다. 호텔방에서의 달콤한 잠도 좋았겠지만 생전 처음 자보는 텐트는 걱정했던 것과 달리 기대이상의 선물을 내게 나누어주었다. 친구와 함께 잠자리에서 마음속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할 수 있었고 마음의 경계가 나도 모르게 풀리어 친구와 마음 한 뼘이 가까워진 느낌이었다. 이제 나는 어디에서도 텐트를 칠 수도 있게 되었다. 외동딸인 내가 어디서 그러한 경험을 해볼 수 있단 말인가? 어느 곳에 가서도 살아있는 여행을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맛있는 아침과 점심식사 후 커피를 마신 뒤 왓프라탓 도이수텝으로 출발했다.

 

왓프라탓 도이수텝은 수텝산의 프라탓 절이라는 뜻이다. 약 108개의 계단을 올라 우리는 빛나는 황금사원에 도착했다. 왓프라탓 도이수텝은 낮에는 햇빛을 받아 빛나고 밤에는 가로등빛을 받아 찬란하게 빛났다. 빛나는 황금사원, 탑돌이를 하는 스님들은 불교를 처음 접해본 나에게 새로운 느낌을 다가왔다. 태국 불교사원은 한국의 절과 많이 달랐다. 한국의 절은 산속에 자연과 함께 조화롭게 지어졌는데, 태국의 불교사원은 시내 한복판에 있었고 화려했다. 같은 부처님을 모셔도 사원의 위치도 다르고 건축양식도 다른데 추구하는 생각은 같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예비탐험이 왜 필요한지를 절실히 느꼈다. 기독교인 내가 불교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었고 경험과 여행을 통해 얻어지는 지식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둘째 날, 우리는 카렌족 마을이 있는 곳으로 출발했다. 차를 타고 구불구불한 커브길을 올라 홈스테이를 하러 갔다. 산속에 숨어 있는 작은 카렌족 마을에 우리는 드디어 도착했다. 3일 정도의 먹을 것을 받아서 배정받은 집으로 갔다. 우리에게 2층 방을 내 주셨는데 생각보다 좋았다. 저녁때 우리가 직접 요리를 했어야 했지만 카렌족 가족들이 우리를 말리며 손수 요리해주셨다. 우리는 카렌족 사람들이 해준 요리를 맛있게 먹고 설거지를 했다. 그 다음날은 카렌족 어린이들의 학교에 갔다. 학교에서 우리는 우리가 준비해간 여러 가지 것들로 학교의 아이들과 놀아주었다. 나는 그곳에서 공기놀이와 풍선놀이를 했다. 풍선 놀이를 할 때 그 작은 손으로 나를 잡고 풍선놀이를 하러 가자며 잡아끌던 따뜻하고 귀여운 손을 가진 아이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나는 아이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내가 돌 볼 동생도 없을뿐더러 가까이 사는 친척도 동생도 없었기 때문에 아이를 안아주고 놀아주는 것을 할 줄 몰랐다. 그런데 태국아이들은 너무 귀여웠다. 내가 먼저 말을 걸고 언어가 통하지 않았기 때문에 바디 랭귀지로 웃기고 잡아끌고, 같이 놀아주고 너무 행복했다. 우리는 다른 언어를 가졌지만 같은 감정을 가진 사람이었다. 태국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아이의 귀엽고 작은 손, 따뜻한 느낌, 반짝이며 나를 바라보았던 맑은 눈이 아직도 가슴에 남아 나를 설레이게 한다. 공정여행이라는 것이 ‘소통하는 여행’이라 하더니 어느 여행에서도 느낄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을 했다.

 

우리를 환대해주고 맛있게 만들어 준 그들의 음식, 우리들에 대한 배려, 순수한 마음, 눈빛 어느 하나 잊을 수 없다. 여행의 소중함과 공정여행의 필요성이 가슴으로 와 닿았다. 너무 잘 왔구나, 나는 참으로 축복받은 아이구나, 선진국인 서유럽인 69명이 여행을 떠날 때 아프리카 인들은 1-2명만이 여행을 떠날 수 있다한다. 나는 아직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지 못한 한국에서 태어나 좋으신 부모님을 만나 아직 중학생인데도 이렇게 여행을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세상을 새롭게 여행하는 법을 여행할 수 있게 기회를 마련해주신 주신 부모님이 고마웠다.

 

사실 나는 부모님과 함께 해외 패키지여행을 여러 번 해보았지만 지금은 별루 기억에 남는 것이 없다. 좋은 호텔, 맛있는 음식, 그리고 에어컨이 빵빵한 버스, 그리고 버스에서 내리고 오르며 구경했던 이국적인 풍경들과 유적지. 그러한 유적지를 만들고, 그러한 문화를 만들어낸 그 곳 원주민들에 대한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못했다. 그들과 대화할 생각도 하지 못했고 더러운 거리를 지날 때, 구걸하는 아이들을 보았을 때 그냥 불쌍해 라는 생각밖에는 없었다. 그러나 공정여행은 나에게 그들과 소통하게 했고, 그들과 함께 웃게 했고, 그들과 함께 음식을 나누어먹게 했고, 따뜻함을 느끼게 했고 그들의 문화와 풍속을 익히게 했고 우리의 문화와 한글과 놀이를 함께하여 소통할 수 있도록, 서로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게 만들어 주었다.

 

 

나에게 이제 꿈이 생겼다. 나는 다시 이곳에 올 것이다. 반드시 올 것이다. 나는 이곳에 다시 와서 내게 새로운 세계를 가르쳐준 여행을 했던 것처럼 치앙마이에 사는 한 명을 데리고 같이 여행을 떠날 것이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의사가 되어 돈도 벌고 나눔을 실천하는 멋진 어른이 되어 가난한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주고 싶다. 내가 여행을 떠날 때 현지인 1명과 함께 여행하며 여행경비를 부담해주고 현지인에게 꿈을 가르쳐 주고 싶다. 더 넓은 세상을 그들에게도 가르쳐 주고 싶다.

 

카렌족과 함께한 치앙마이에서의 밤은 또 나에게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선물하였다. 맛있는 저녁심사를 한 후 우리는 모닥불을 피우고 바나나와 감자를 구워 먹었다. 선생님들과 같이 누워서 수많은 별들을 보며 이야기를 듣던 것도 잊을 수가 없다. 치앙마이는 고산지대이기 때문인지 문명이 덜 발달해서 야경이 없어서인지 밤하늘의 별들은 유난히도 맑고 아름다웠다. 난 하늘을 쳐보다본지가 얼마나 되었지? 이제 가끔은 숨을 쉬고 맑은 하늘을 바라보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 다음날 아침에는 우리에게 주어진 미션 카렌족 마을을 탐험하며 지도를 그리러 떠났다. 카렌족 마을의 슈퍼도 가보고 마을사람들에게 태국어로 이름도 물어보면서 마을 지도를 그렸다. 지도를 완성하고 나니 카렌족 마을이 한 눈에 들어왔다. 참으로 의미 있는 활동이었다. 치앙마이에서 머무른 시간은 짧았지만 순수하게 우리를 환대해주었고 정들었던 카렌족 사람들과 카렌족 마을과의 이별은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사람들의 친절함 또 산속에서 느껴지는 신비함 때문인지 즐거웠던 꿈같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산에서 내려와 밤에 는 공정여행에 대한 설명을 진지하게 들었고 난 몸으로 느끼는 체험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공정여행은 그냥 단순히 놀러 다니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근본적인 구조를 해결하기 위한 여행이었다. 캄보디아나 태국 같은 동남아 지역은 관광이 주요 수입이다. 그런데 우리가 여행을 하면서 외국의 항공을 이용하고, 외국 호텔에서 머물기 때문에 태국에는 적은 돈이 가고 나머지는 다 선진국이나 다국적 기업으로 흘러가게 되는 것이었다. 공정여행은 현지의 항공을 이용하고 현지의 숙소에서 머물고 현지의 물품을 사기 때문에 우리가 쓰는 돈이 현지로 가게 된다.

 

선생님께서는 한국형식의 도움의 문제점에 대해 설명해주셨다. 우리는 그냥 어려운 나라에 학교나 병원을 세워주고 대단한 일을 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단순히 건물뿐만이 아니라 건물이 돌아가는 ‘유지비용’도 필요했다. 우리는 좋은 일을 했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그들은 선생님이 없어서, 의사가 없어서 시설을 이용하지 못하는 것이다. 진짜 봉사를 하는 것은, 진짜 그들을 도와주는 것은 그들이 정말 필요해 하는 것을 해주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중에 의사가 되어 봉사하는 것이 꿈인 나에게 이것은 큰 깨달음이었다. ‘공정 여행’이라는 것을 통해 이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밤에 야시장에서 한 환경 캠페인도 나에게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지나가는 모르는 ‘외국인’을 붙잡고 환경보호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을 분필로 바닥에 써달라는 말을 했다. 나는 모르는 사람에게 잘 말을 걸지 않는 편인데 말까지 잘 통하지 않는 사람에게 이런 것을 부탁하는 것이 재밌었고 그 말 안 통하는 외국인이 우리처럼 환경보호에 대해 생각해서 바닥에 글씨를 써 주는 것이 너무나도 신기했다. 그 때 벌였던 환경 캠페인은 정말 인상적인 기억으로 남아있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비행기에서 내렸을 때 차가운 공기가 피부에 닿았다. 차가운 바람은 지금까지의 경험이 너무 행복하고 즐거워서 모든 것이 정말 ‘한여름 밤의 꿈’처럼 느껴지게 했다. 나는 원래 방콕 스타일이다. 여행하며 돌아다니는 것을 정말 싫어해서 부모님과 언쟁을 할 때도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몸으로 느끼며 여행하는 것이 내게 얼마나 많은 것을 가르쳐 주는지 더군다나 공정여행은 말할 것도 없다. 집이 최고였던 내가 ‘공정여행’을 통해 생각이 완전히 바뀌게 된 것이다. 그만큼 나에게 ‘공정여행’은 의미 있었고 새로운 꿈을 주었다. 나는 내 꿈을 실현하기 위해, 내가 나눔을 실천하는 멋진 어른이 되기 위해, 현지인 1명을 여행시키기 위해 나는 열정적으로 내 인생을 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