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_신경주/ 사진_공감만세
동남아시아에 대한 편견이 많았던 내가 공정여행을 통해 편견을 버리고, 나비효과와 같이 천천히 세상을 변화시키는 공정여행에 대한 매력에 빠진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나는 우리나라가 단일민족과 백의민족이라고 쓰여진 교과서와 미디어를 접하며 성장했다. 나는 그런 사실을 자랑스러워 했고, 내 생각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교과서와 미디어 는 ‘단일민족’이라는 단어는 사라지고 ‘다문화’ 라는 단어를 쓰기 시작 했다.
나의 삼촌은 국제결혼을 하셨다. 어렸을 적 어렴풋이 가족들과 모여 식당에 갔는데 우리와 생김새가 다른 분과 식사를 한 기억이 난다. 그분이 바로 작은어머니시다. 처음으로 인사를 하려고 가진 식사 자리였다. 어렸을 땐 몰랐지만 점점 성장해 가면서 ‘나도 다문화 가족을 가지고 있구나’ 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우리나라 중2들이 많이 걸리는 중2병에 걸리면서 베트남에서 오신 작은어머니와 사촌동생들을 우리 가족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또한 동남아국가들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생각을 있었다. 하지만 중 3겨울방학, 공정여행을 통해 내가 쓰고있던 색안경을 벗게 되는 계기가 생겼다.
바로 태국치앙마이로의 공정여행 이었다. 태국으로의 공정여행은 한국과 태국의 불교를 비교하는 주제였다. 공정여행 첫날 공주에 있는 마곡사에서 하룻밤동안 템플스테이를 하였다. 우리나라에 있는 대부분의 절 들이 그렇듯 산에 있어서 매우 조용하고, 단아하였다. 스님께 기본적인 불교의 예의범절을 배우고, 우엉근차를 마시며 스님과 담소를 나눴으며, 스님은 학생자살, 남북의이데올로기와 같은 사회문제에 관환 생각을 물어보셨다.
절에서 도만 닦으시는 줄 알았던 스님이 사회문제를 물어보실 뿐만 아니라 나도 가지고 있지 않는 스마트폰을 가지고 계시다니.......내겐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108배를 시간상 54배를 하기도 하면서 우리나라불교는 정갈하고 항상 수련하는 불교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불교문화를 체험하는 것을 마치고 우리의 태국 불교를 체험하기 위한 여정이 시작되었다.
새벽4시 인천공항을 출발하여서 태국 민항기인 비즈니스 에어를 타고 6시간후 태국 치앙마이 국제 공항에 도착했다. 왜 우리 공정여행가들이 굳이 현지 국적기를 이용했을까? 우리가 여행국의 국적기를 이용하면 더 많은 현지인이 고용될 것이기 때문이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훅!하고 불어오는 더운 바람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우리는 태국의 불교문화를 체험하기위해 태국 북부에서 가장 큰 절 인 왓프라탓도이수텝을 방문했다. 왓프라탓도이수텝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백두산과 200M밖에 차이가 나지 않을 만큼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
태국의 치앙마이 대학교는 신입생들이 신고식으로 사원까지 직접 올라가는 풍습이 있다고 한다. 이 말을 듣고 태국인들에게 불교란 종교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는 것을 느꼈다. 꼬불꼬불한 길을 돌고 돌아 도착한 왓프라탓도이수텝을 보는 순간 저절로 ‘와-’하고 감탄이 절로 나왔다. 황금으로 덮혀 화려한 기운을 뽐내고 있었다.
불상만 있는 것 뿐만아니라 태국의 신인 코끼리 조각상들도 많았다. 밤이 되면서 사원은 더욱 장관이었다. 나무들은 크리스마스트리처럼 불이 들어오고 분수들도 많았다. 금탑에 빛이 비쳐서 오묘한 노란빛으로 사원이 가득찼다. 마치 자신들의 불교가 얼마나 대단한지 뽐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다음날 우리는 목에 링을 감고 산다는 카렌족 마을로 이동했다. 카렌족 마을에서 한 홈스테이는 지금도 생생히 기억난다. 내가 묵었던 집 주인부부는 살갑게 우리들을 맞아주셨다. 부엌일을 도와 드리려 해도 한사코 거부하시고. 식사시간에 밥을 더먹으라고 많이 퍼주시는 아주머니의 모습에서 따뜻한 정을 느낄 수 있었다.
저녁에는 이웃들과 두런두런 모이셔서 노래를 부르시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카렌 사람들이 불편하게 사는 것 같아 삶의 만족도가 높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카렌족은 원래부터 그렇게 살아 왔고, 어쩌면 카렌족은 반대로 우리가 사는 모습을 보면서 불편할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번 공정여행을 준비하면서 카렌족 학교 친구들에게 갖고 싶은 선물이 뭐냐고 물었더니 그 친구들은 소박하게도 우리가 사용하던 헌 옷과, 우리가 좋아하는 과자를 먹고 싶다고 했다. 우리는 여행 전에 사용하지 않는 물건을 한가득 모아서 박스에 담아 카렌족 마을까지 가지고 들어왔다.
카렌족 마을의 학교에 가서 우리가 쓰지 않는 물건과 옷들을 모아 나눠주고, 함께 노는 프로그램을 진행하였는데, 카렌족 친구들이 우리들을 위해서 준비한 너무나 귀여운 공연을 시작으로 우리는 풍선을 불어주고, 매니큐어와 페이스페인팅을 하며, 티셔츠에 예쁜 우리말과 그림을 그려주고, 축구도하고 아이들과 친해진 하루는 시간이 정말 빨리 지나 갔다. 맨발로 축구하던 카렌족학생들의 모습을 보고 안쓰러웠지만 오히려 물질적인 시선으로만 바라보고 있는 내가 더 안쓰럽게 느껴졌다.
야시장에서의 캠페인은 정말 잊지 못할 감동이었다. 태국 치앙마이는 높은 곳에 위치해있어서 오존층과 가까워, 세계의 배기가스의 1프로도 생산하지 않지만 반대로 다른 나라들이 내 뿜은 배기가스로 인해 지구온난화에 가장 피해를 입는 나라이다. 우리 공정여행가들은 야시장 바닥에 긴 천을 깔아놓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지구 온난화에 대해서 한마디씩 적어달라고 부탁했다.
그런 경험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처음엔 쭈삣쭈삣 했지만 그런 모습이 답답하셨는지 고두환선생님이 크게 한국말로 안녕하세요? 라고 소리치며 모습에 용기를 받아 곧 캠페인을 잘 진행할 수 있었다. 천과 야시장바닥을 온통 지구온난화에 대한 메세지로 덮었다. 거리의 화가도 나서서 바닥에 멋진 그림을 그려주시는 등 소극적이었던 태국인들도 적극적으로 참여해주었다. 한국에서 온 우리들의 지구 온난화 예방 캠페인으로 인해 조금이라도 더 경각심을 가지게 된 듯했다.
우리 여행 기간 동안 우리의 길잡이 였던 태국 YMCA 요 선생님의 말씀이 기억난다. “큰 변화는 만들기 힘들지만, 너희처럼 공정여행을 조금씩 하다보면 세상은 변할 거야.” 라는 말은 앞으로 책임감 있는 공정여행을 해야 하는지를 일깨워주는 의미 있는 말이었다.
나는 공정여행을 나비효과에 비교하고 싶다. 나비의 작은 날개 짓이 큰 폭풍우를 만든다는 뜻처럼 우리공정여행가들의 작은 소비가 누군가에는 큰 행복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여행을 통해 그동안의 동남아시아 국가에 대한 편견, 우리와 좀 다른 작은어머니와 사촌들을 이제 가족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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