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_홍지운/ 사진_공감만세
2017년 1월 12일 목요일
대전에서 드레스덴까지, 장장 14시간이 넘는 긴 시간이 걸렸다. 그 시간 내내 앉아있으려니 허리가 아프고 몸이 뻐근하지만, 좀 전에 본 드레스덴 야경은 그 이상의 가치가 있는 것 같아 마음은 가볍다. 드레스덴에 도착해 비몽사몽 버스에서 내리자 찬바람이 날 맞았다. 정신이 탁 트이는 기분이었다. 엘베 강을 건너 드레스덴 성과 프라우엔 교회를 맞은편에서 바라봤다. 정말 예뻤다. 눈에 모두 담기에는 나중에 잊어버릴 것 같아 사진도 잔뜩 찍었다.
2017년 1월 13일 금요일 오늘은 드레스덴 구시가지를 중심으로 둘러봤다. 오래된 건물들이 예뻤다. 모든 건물이 다 새것 같은 우리나라와 다르게 옛 건물을 그대로 남기고 사용한다는 것이 조금 부럽기도 했다. 처음 본 옛날 건물은 프라우엔 교회였다. 일부분이 재건되어 옛날 건물이라고 하긴 뭐 하지만 이 건물은 세계대전 당시 무너졌다가 그 잔해를 간직했던 독일 사람들이 최근 복원한 것이다. 독일인들의 문화재에 대한 자세를 엿볼 수 있었던 부분이었다.
2017년 1월 14일 토요일 오늘은 특별히 독일의 역사에 대해 더 자세히 듣기 위해 독일에 사시는 가이드샘과 함께 베를린을 돌아다녔다. 처음엔 원래 유대인 박물관에 가는 것이었는데 10시에 개장해서 먼저 벽화가 그려진 베를린 장벽에 갔다. 여러 벽화가 있었고 예쁜 게 많았다. 인상 깊었던 것은 남자 둘이 입 맞추는 장면을 그린 벽화였다. 설명을 들으니 동독 관리가 서독 관리가 서로 만나 우정의 표시로 키스를 했는데 이 장면을 그린 것이라고 한다. 매우 화제가 되었다고 한다.
다음에 드디어 유대인 박물관에 갔다. 박물관은 아연 벽으로 되어 있어 은빛이 나는데 매우 차가운 인상을 준다. 외벽을 난도질당한 것을 형상화한 것 같이 창문이 나 있다. 특이한 점은 그 박물관에는 입구가 없고 그 옆의 신축 건물을 통해 지하로 들어가야 했다. 이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유대인이 독일과 연결되어 있음을 의미한다고 한다. 안에 들어가면 천장에 한 줄기 빛이 보이고, 외부 세계와 단절된 느낌을 잘 느낄 수 있다. 차 소리 등이 잘 들리기도 한다. 단절되고 고립된 상황에서 유대인은 어떤 생각을 했었을까? 또 다른 기념관에서는 홀로코스트의 참상이 드러나 있었다.
이름이 잘 기억나지 않지만 이 사람은 유대인 학살을 아주 체계적으로 빈틈없이 해냈다고 한다. 그와 그의 부하들의 조직도도 전시돼 있을 정도면 꽤 중요한 사람임이 틀림없다. 그는 나중에 감옥에서 자살을 했다고 한다. 자살한 사진도 있었다. 이 박물관에는 총살당한 유대인의 모습이 사진으로 드러나 있었다. 역사의 치부를 이렇게 드러내 놓고 보여줄 수 있다는 점이 대단한 것 같다. 그만큼 성숙했고 상처를 딛고 올라설 수 있는 힘이 있다는 뜻일 것 같다. 이런 걸 보면서 위안부 문제가 떠올랐지만 우리가 잘못한 것들, 잘못하고 있는 것들도 돌아보고 알아보려고 해야 할 것 같다.
2017년 1월 16일 월요일 야간열차에서 하루가 시작됐다. 처음엔 좋아 보였던 침대도 써보니 좁지 않았고, 같이 탄 독일인도 굉장히 친절하셔서 무리 없이 있을 수 있었다. 지하철은 한국과 비교하자면 조금 구식이기는 했으나 수동으로 문을 여는 것이 색다른 경험이었다. 목적지는 쇤브룬 궁전이었다. 여기는 한국어 지원이 되는 오디오 가이드가 있어서 내부를 돌며 오디오를 들었다. 대갤러리와 소갤러리의 프레스코화도 멋졌다. 조금 색감이 옅긴 했지만 또 마리 앙투아네트가 ‘기요틴의 이슬로 사라졌다’라고 하는 표현이 마음에 들었다.
2017년 1월 17일 화요일 나에게 여행이란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다. 평소에는 잘 생각하지 못했던 나 자신에 대해 돌아보게 되는 것 같다.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도 물론 여행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나를 돌아보게 되기도 한다. 여행의 반이 벌써 지나갔다. 슬슬 피곤해지기 시작한다. 오늘은 구스타트 클림트의 키스가 있는 궁에 갔다. 궁전의 정원에는 뭔가 12지신을 형상화한 동상이 서 있었다. 지붕의 장식은 왠지 동서양과 이집트를 합친 느낌이었다. 안에는 교과서에 나올 법한 초상화, 풍경화 등이 잔뜩 있었다. 모네, 마네 등 한 번쯤은 들어본 이름들이 즐비했다. 에곤 쉴레라는 작품이 있었는데 우울하고 심오했다. 내일 설명해주신다니 기대된다.
2017년 1월 19일 목요일 오늘은 드디어 잘츠부르크를 본격적으로 둘러보았다. 잘츠부르크는 딱 인솔쌤 취향의 도시라고 한다. 행운인지 불운인지, 어제 문제가 많던 버스가 오늘 아침까지도 고쳐지지 않아서 미라벨 정원까지의 이동을 택시로 이루어졌다. 택시는 꽤 인상적이었는데, 가격이 쉴 새 없이 올라갔기 때문이다. 얼마 안 탔는데 15,9 유로나 나왔다. 미라벨 정원엔 눈이 수북하게 쌓여있었다. 그렇다고 눈이 펑펑 내리는 날씨는 또 아니어서 빛에 반짝이는 눈이 아름다웠다. 바닥에만 눈이 쌓인 건 아니고 나무에도 눈이 쌓여있어서 마치 디즈니 겨울왕국에 나올 법한 풍경이 사방에 펼쳐져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산간지방 외에는 절대 볼 수 없는 풍경이어서 더 신기하고 예쁘게 느껴졌던 것 같다. 미라벨 정원에서 얼마 정도 걸으면 호엔 잘츠부르크성이 나온다. 정확히는 호엔 잘츠부르크성에 올라갈 수 있는 교통수단이 왕복 6.3유로이다. 하나밖에 없다곤 하지만 무지하게 비싸다. 올라가는 시간은 짧았지만 벽이 유리로 되어 있어 경치를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동화 속에 나올 법한 집들이 오밀조밀 붙어 있어서 좋았다.
잘츠부르크 성은 역사 속에서 함락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한다. ‘호엔’이란 단어는 켈트어로 놓다는 뜻이고 말 그대로 걸어 올라갔으면 다리가 남아나지 않았을 정도로 높았다. 성 안에는 당시 사람들의 주방, 체스판, 투구, 칼 등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실감 나게 잘 전시되어 있었다. 설명이 죄다 독일어나 영어로 써져 있어서 영어 울렁증에 걸릴 것 같았다. 성을 다 보고 나니 자유시간이 남지 않아서 아쉬웠다. 성을 보고 게트라이데 거리에서 모차르트 생가와 모차르트가 좋아했던 카페를 봤다. 특히 눈 쌓인 풍경이 기억에 남는다.
2017년 1월 20일 금요일 잘츠부르크, 오스트리아를 떠나는 날이었다. 그저께 빈에서 잘츠부르크로 이동하는 긴 여정만큼이나 많은 시간이 걸렸다. 체스키크롬포트는 정말 동화 속 마을 같았다. 중세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고 하는데 건물이 다 무너져가는 것도 아니고 운치 있어서 좋았다. 생각해보면 중세는 감이 안 잡힐 정도로 아득한 시간인데 어떻게 잘 남아있는지 신기하다.
볼타바 강을 끼고 있는 구시가지가 그 중세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곳이다. 두세 개의 다리를 통해 갈 수 있다. 안에는 성당, 마리오네트 박물관, 밀랍인형 박물관 등 많은 볼거리가 있다. 그리 크지 않은 크기인데도 말이다. 중세 건물을 이용한다는 것도 신기했다. 점심도 중세 식당에서 먹었는데, 문이나 통로의 높이가 낮고 좁았다. 아까 말했던 마리오네트 가게에서 피노키오 마리오네트 한 개를 샀다. 기분이 좋았다. 가져가는 길에 설마 파손되진 않겠지?
2017년 1월 21일 토요일 마지막 날이다. 오늘은 거의 모든 이동을 도보나 트램으로 했다. 마지막이어서 더 아쉽고, 더 예쁘게 보였다. 카를교는 28개의 동상이 있는데 그중 한 동상 위에 새가 앉아있었다. 귀여웠다! 프라하 성은 별다른 임팩트가 없었는데, 그 옆 성당이 멋졌다. 거뭇거뭇했는데 안 닦아서 그렇다고 한다. 충격이었다. 그 근처에 프란츠 카프카가 살던 집이 있었다. 바츨라프 광장을 바츨라프 하벨의 이름을 딴 것이다. 우리나라의 광화문 광장 같은 곳이라고 한다.
나의 공정여행기
생생하면서도 실감 나지 않던 동유럽 인문학 여행학교가 끝났다. 체코에 도착해 입국심사를 받을 때까지도 실감이 안 나더니, 이제 벌써 돌아가는 비행기에 올랐다는 건 더욱 믿기지 않는다. 여행 하루하루는 긴 시간이었지만 12일을 생각해보면 참 짧은 기간이다. 그새 3개국 6도시를 거쳤다니, 뿌듯하면서도 허무하다.
이 글은 ‘공정여행기’이지만, 솔직히 말해서 아직 내게 공정여행은 모호한 개념이다. 10일이 넘는 시간 동안 나름 공정여행을 했는데도 말이다. 자료집에 나온 대로 공정여행이 현지인과 소통하고 서로 배워가는 여행이라면, 내가 한 것은 공정여행이 아닌 단순 여행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10박 12일 동안 친구들과 함께 다니며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다. 함께 어울려 여행하는 법, 먼저 다가가는 법 등 떳떳한 공정여행이라 말할 수 없지만 그래도 한 발 내디딘 게 아닌가 싶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좋았던 것은 역시 ‘현장감’이었다. 교과서에나 나오는 여러 건물들, 그리고 미술 작품을 눈앞에서 볼 수 있다는 건 정말 교과서 글자를 백 번 보는 것보다 훨씬 가치 있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얼마 안 가 역사 이야기는 다 내 머릿속에서 사라질 거란 것이다. 계속해서 곱씹고 되새김질하는 게 중요하겠지, 그렇게 되면 언젠간 내 지식이 될 거다. 또 좋았던 것은 서로 국경에 제한이 없고 매우 가까이 붙어 있는 세 나라의 차이점을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내가 여행한 것은 그 나라의 수많은 도시들 중 단 2곳뿐이지만, 그렇기에 단정 짓는 건 위험한 일이기는 하지만 나라별로 미묘한 분위기의 차이가 확연히 느껴졌다. 가보지 않고서는 모를 차이를 방학 12일을 투자하여 성공한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생각을 하다 보면, 좀 더 일찍 왔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생기기도 한다. 분명 여러 역사 이야기가 내게 더 도움이 되었을 것이고 순수하게 모든 것을 흡수할 수 있던 예전엔 얼마나 도움이 되었을지 말할 것도 없기 때문이다. 자료집에 따르면, 여행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행동하고 생각해야 한다는 의미인 것 같다. 그런 부분에선 아쉬움이 남는 이번 여행이다. 하지만 다음 여행, 그리고 그다음 여행을 위한 밑거름이 분명히 되었고 더 나은 것을 계획할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었다. 자유 시간을 통해 부딪치며 배웠던 것도 큰 도움이 되었다. 지금은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이 글을 쓰고 있지만 난 머지않아 비행기를 또 한 번 타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