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기

수기 [루손섬 여행학교] 누구도 나에게 가르칠 수 없는 것들을 많이 배운 여행

  • 공감만세
  • 2016-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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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23-24 겨울방학][필리핀] 편견을 넘어 가슴 뛰는 필리핀, 루손섬 청소년 여행학교

2024-01-21 ~ 2024-01-28 2024-02-13 ~ 2024-02-25

[루손섬 여행학교] 누구도 나에게 가르칠 수 없는 것들을 많이 배운 여행

글_최승혜/ 사진_공감만세

 

항상 여행의 처음이 그렇듯이 두려움과 설렘이 공존하는 마음을 갖고 공항으로 갔다. 워낙 숫기가 없는 나라서 혼자인 것 같은 채련이에게 말을 걸까 말까 정말 고민했다. 그러다가 그냥 여행하다 보면 친해지겠지라는 마음으로 있었는데 규리가 먼저 말을 걸어주었고 누가 먼저 말을 걸었던지 상관없이 우리의 처음이 시작됐다. 고1이 2명밖에 없다는 사실이 그다지 놀랍진 않았지만 누군가를 이끌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걱정이 되기는 했다. 앞서 말했듯이 친해지면 괜찮은데 처음에는 숫기가 없어서 조를 정할 때도 많이 걱정했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남자 서진이가 먼저 말을 꺼내줬고 조 활동을 할 때도 어색하지 않게 해줘서 고마웠다.

 

내가 필리핀 공정여행을 시작하게 된 이유는 이것도 편견에서 비롯된 생각 일 수 있지만 나와 다른, 어쩌면 극악한 환경일 수 있는 곳에서 생활해보고 싶었고, 짧더라도 현지인과 말 한마디 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반 여행사에서 가게 된다면, 동물을 타거나 안마를 받는 등 소통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또 내 마인드에 달렸긴 하지만 내가 현지인 보다 높은 위치에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할 것 같았다. 주변에 필리핀 간다고 말했을 때 필리핀을 왜 가냐, 위험하지 않느냐, 덥고 뭐 어쩌고 말이 많았다. 그런데 그렇게 따지면 갈 곳은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우리나라는 휴전 중이기도 하고, 세계 최대 규모의 핵 단지가 있기도 하다. 뭐 어찌 됐든 난 지금 무사히 돌아왔다.

 

필리핀의 첫인상은 혼잡한 교통으로 다가왔다. 지프니, 트라이시클, 자동차들이 엉켜서 교통이 아주 혼잡한 와중에 그 사이로 다니는 사람들.. 그렇지만 다들 여유를 가지는 것 같다. 물론 화내고 욕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내 생각에 우리나라에서 저런 일이 벌어졌다면 단체로 차에서 내렸을 것이다.

 

 

나가카단 초등학교에 가기 전에 막연하게 봉사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곳 아이들을 만나고 아리랑을 가르치면서 어쩌면 이 친구들이 우리에게 봉사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그 친구들에게 노래를 가르쳐준 것이 봉사라면 그들이 우리에게 노래를 가르쳐준 것도 봉사인 셈이다. 지금은 봉사했다기보다는 서로에게 시간을 내어줌으로써 ‘소통’ 했다고 생각한다. 언제부턴가 우리나라에서는 봉사라는 게 하나의 스펙으로 전락해 버렸고 자신들의 스펙을 위해서 상대방에 대한 일말의 이해도 없는 일방적인 봉사만이 남게 된 느낌이다. 그러면서 점점 봉사의 의미가 변질되어 간 것 같다. 봉사라는 가치에 대한 새로운 물음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싶다.

 

계단식 논에 갔을 때 과연 우리가 이 논에 도움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지치고 힘들고 사실 설명들을 때 너무 졸려서 계단식 논에 대해 제대로 듣지도 못했다. 그렇지만 나는 우리가 직접적으로 ‘계단식 논’에서 지금 당장 벼를 수확하는데 큰 도움이 안 될지 몰라도 마음으로 그들의 삶과 논이 처한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고, 어쩌면 우리 중 누군가는 논에 더 관심을 갖고 자신이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길 원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 바공실랑안에서 데니스, 마리루와 마을을 둘러볼 때, 조금 순화해서 정말 유쾌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비가 와서 흙탕물이 된 강을 보며 보라카이라고 하고 마리루는 나보고 들어가서 수영을 하라고 했다. 많은 경험으로 생긴 친화력일까 선천적인 친화력일까.. 지도 그릴 때도 데니스랑 마리루가 많이 도와줬는데 설명을 하는 줄 알고 엄청 열심히 가르쳐줬는데 설명 안 해서 아쉬워했다.. 활동이 끝나고 조셀의 홈스테이로 이동했을 때 정말 깜짝 놀랐고 빈민가에 왔다는 게 느껴졌다. 조셀이 친구 생일파티 때문에 사라네 갔었는데 애가 8명이었다. 아이들이 모두 자신들도 어리면서 아기 보기에 능숙해서 놀랐고, ‘포테이토 칩’이라는 단순한 게임 하나에도 함께이기 때문인지 너무나 즐거워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하루의 절반을 학교에서 친구들과 같이 지내면서도 함께 무언가를 하는데 인색한 우리가 생각났다.

 

늘 함께하면서 진정한 함께를 누리지 못 하는 이유는 과도한 경쟁구조 때문일까. 그래서 그런지 문을 열고 손을 흔들면 농구를 하다가도 다 같이 손을 흔들어주는, 우정 테스트 하나로도 웃음이 끊이지 않는 그 친구들과 헤어져야 하는 게 아쉬웠다.동시에 ‘자본만이 행복이다.’ 라는 강박관념이 꽤나 깊이 박혀있는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나면서 정신적빈곤의 위험을 느꼈다. 머리로는 이렇게 생각하면서 나도 모르게 자본에 대한 강박에 사로잡힐 때가 있어서 이러면 안 되지 할 때가 있다.

 

 

필리핀을 2주가량 경험했는데 내가 만난 사람들, 그리고 필리핀을 잘 알기에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 스스로를 향한 편견을 깨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던 것 같다. 평소에 벌레라면 극도로 혐오하는 사람이고, 초파리 잡기 시작한지도 얼마 안됐는데 오버한다는 소리 많이 들어서 일부러 티 안내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그러다 보니 나방정도는 무서워하지 않게 됐다.

 

아무리 지치고 힘들어도 절대 도마뱀이 있는 곳에서 못자리라 생각했지만 잘 잤다. 너무너무 놀라운 일이고 장족의 발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애초에 필리핀 사람 자체에 가지고 있던 편견은 없기 때문에 편견을 깨기보다는 조금이라도 알아갈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유쾌하지만 은연중에 나오는 진지한 모습들이 멋있었던 BSYF 청년들이 그 예인 것 같다. 아 그리고 아시안브릿지 갈 때 되게 경비가 삼엄하고 좋은 차들도 많고, 그랬는데 조금만 더 가면 판자촌 있고 그래서 놀랐다. 어느 나라던, 새삼 부의 분배가 이래도 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번 여행이 우리 모두에게 정신적으로 힘든 부분이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여행 중에 애들끼리 약간의 기 싸움이 있었는데, 미숙한 정신으로 어떻게 해결할까 생각했지만 결국 답은 대화로 푸는 것 이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별거 아닌 일 일 수도 있었다. 여행에서는 내가 나이가 많은 편이었지만 정신적으로 성숙하진 못 했나 보다. 어느 책에서 봤는데 새는 박쥐를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왜 박쥐는 거꾸로 매달려서 잘까?’ 그것을 이해하는 게 의사소통이라고, 애초에 이해가 안 돼서 싫은 건데 나 혼자 계속 이해하려고 해봤자 더 싫어질 뿐이다. 그래서 대화라는 걸 하는데 우리의 여행에서 그게 부족했던 것 같고, 그 과정에서 오해가 더 쌓였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난 지금 왜 그때 진즉에 말로 하지 않았을까라는 후회가 있다.

 

우리가 살면서 배울 것은 두 종류로 나뉜다. 가르쳐야만 배울 수 있는 것과 배워야 하되 가르칠 수 없는 것, 나는 후자에 더 가치를 두는 편인데 이번에 그 누구도 나에게 가르칠 수 없는 것들을 많이 배웠다. 솔직히 이번 여행에서 반성을 많이 했다. 누군가와 함께하는 여행에서 나만 생각하고 행동한 것 같아서 부끄럽기도 했다. 내가 반성해야 했던 그 순간은 돌아오지 않겠지만 다시 그런 상황은 만들지 않을 거라 믿는다. 2주 동안 어린 저희를 잘 이끌어주신 희영쌤 진호쌤 감사합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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