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기

수기 [서유럽 여행학교] 프랑스에 관해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던 하루

  • 공감만세
  • 2016-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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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서유럽 인문학 여행학교

2020-01-20 ~ 2020-01-31

[서유럽 여행학교] 프랑스에 관해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던 하루

 

글_여현승/ 사진_공감만세

 

오늘, 루브르 박물관에 가기로 해서 일찍 일어났다. 루브르 박물관은 필리프 2세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상당한 양의 그림과 문화재들이 전시되어 있다. 입구에서는 노점상들이 수많은 관광객들에게 물건들을 팔기 위해 줄지어 서 있었다. 박물관의 중앙에는 투명한 소재로 되어 있는 피라미드 모양의 구조물이 우리들을 압도했다.

 

 

입장을 하자마자 마주친 것은 승리의 여신 니케의 조각상이었다. 정식 이름은 '사모트라스의 니케'이다. 이후에는 쭉 종교화를 감상하게 되었다. 종교화는 라틴어와 같은 어려운 글자를 읽지 못하는 평민들에게도 예수님의 말씀을 전달하기 위해 알아보기 쉽게 그려졌다는 특징이 있다. 처음으로 본 그림은 성 베드로의 그림. 베드로는 예수의 12제자 중 하나로, 땅과 하늘을 여는 두 종류의 열쇠를 가지며 예수와 인간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성녀 아폴로니아는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에 자신의 어금니를 뽑히고 그것을 집게로 들고 있는 형벌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성 세바스티아누스는 기둥에 묶여 수많은 화살을 맞았지만, 예수님의 은총으로 죽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결국 목이 잘려 죽고 만다. 어린 예수와 성모 마리아, 그리고 성 안나가 나오는 그림이 있다. 어린 예수는 숭고한 희생을 상징하는 양의 인형을 가지고 놀고 있는데 이는 후에 다가올 예수의 미래를 암시하는 것이다.

 

가나의 결혼식과 관련해 커다란 그림이 있었다. 결혼식에서 맨 좌측에 앉아 포도주 잔을 받으려고 손을 뻗고 있는 사람이 이 잔치를 주최한 왕이다. 그리고 그림의 정 중앙에 위치, 뒤에 후광이 비치는 인물이 바로 예수이다. 이 그림에서 왕은 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져 걱정하고 있었는데, 그 때 예수가 그의 첫 번째 기적을 행한다. 물을 모두 포도주로 바꾸어 버린 것이다. 물은 모두 포도주로 바뀌어 항아리에 담긴다. 포도주는 피를 상징한다. 그리고 맨 아래에 왼쪽 편을 보면 머리가 벗겨진 악기를 연주하는 한 남자를 볼 수 있다. 그가 바로 이 그림을 그린 사람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모든 사람을 너무 화려하게 그리는 바람에 교황의 명령에 따라 다시 그려야 했다. 그리고 예수의 머리 위를 보면 양고기를 써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양은 신에게 바치는 제물로서 최고의 동물이었다. 그래서 양은 숭고한 희생을 의미하는데, 이는 곧 예수가 머지않아 큰 희생을 하게 될 것이라고 암시하는 것이다.

 

이제 바로 맞은편에 있는 모나리자로 넘어가 보자. 모나리자는 여러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천재'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작품이다. 그가 피렌체에 있었을 때, 한 귀족이 그의 세 번째 아내의 초상화를 다 빈치에게 부탁했다. 아내가 아들을 세 명이나 낳았기 때문에 그것에 감사하고자 했던 것인데,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그것으로 자신의 인생의 역작을 만들어냈다.

 

 

모나리자는 ‘리자 아줌마’라는 뜻으로 그 귀족 아내의 이름인데, 이 그림이 자리하고 있는 배경이 독특하다. 잘 보면 그곳은 황무지로, 색이 바래서 그랬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힘든 가운데서도 새 생명을 만들어내는 여성의 숭고한 모습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또한 이 시대의 결혼한 여자의 표식이었던 검은 머리띠, 그리고 가지런히 놓인 양손을 통해 정조를 지키는 얌전한 여자임을 드러내는 것으로 추측된다. 그리고 이 그림은 명암과 스푸마토라는 새로운 기법을 도입, 혁신적인 예술, 예술적 완벽함을 달성하며 고유한 예술적 가치를 만들어 냈으며,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닮았다던지, 어디로 가든지 눈동자가 자신을 따라오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 것 등으로 학자들에게 꾸준한 토론의 여지를 남겼다. 이들을 통해 모나리자는 오늘날 최고의 예술 작품 중 하나로 꼽히는 것이다.

 

이후에도 메두사 호의 뗏목을 비롯해서, 밀로의 비너스, 그랜드 스핑크스, 이집트 벽화, 람세스 2세의 좌상, 앵그르의 그림 등 세계적으로 예술적 가치가 있다고 널리 알려진 유명한 작품들을 볼 수 있었다. 루브르 박물관을 나와 향한 곳은 프랑스의 파리 최고재판소였다. 지방법원부터 고등법원, 대법원에 이르기까지 모든 종류의 법원들이 모여 있는 이곳에서 우리는 대한민국의 모든 청소년을 대표하여 법정을 참관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엄숙한 분위기 속으로 다섯 명씩 입장하면서 법정에 선 피의자와 법조인들을 볼 수 있었다. 맨 왼쪽에 피의자로 추정되는 남자 한 명과 피해자로 생각되는 여자 한 명이 앉아 있고 그 바로 옆에 선 변호사 두 명은 열정적으로 그 둘을 변호했다. 오른편에서는 검사 두 명이 신중하게 말을 했다. 네 명의 판사들이 제일 안쪽에서 그들의 변론을 듣고 있었다. 그런데 중간에 판사들 중 두 명이 우리 쪽을 가리키며 쿡쿡 웃었다. 나는 그 행동에 깜짝 놀랐는데, 피의자의 인생이 한 순간에 바뀔 수도 있는 중대한 상황에서 진지한 태도를 보이지 않는 것은 그들을 존중하지 못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이것은 지방법원이었고, 프랑스어로 진행되어 참관 중에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나중에 들어보니 북아프리카 출신 이민자가 성매매를 저질러서 기소된 사건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원래는 이렇게 사법부 견학을 일단락 짓고 프랑스 상원의회로 가려고 했지만 재판소 직원의 재량으로 우리 일행이 모두 고등법원 재판을 참관할 수 있게 되었다. 프랑스어에 능통한 정새날 선생님에 따르면 그 영재판의 내용은 대마초를 흡입하고, 국에서 대마초를 밀수해 오다 잡힌 한 청년에 관한 것이었다. 변호사는 그 청년이 초범인 데다 어리기 때문에 형량을 짧게 하여 몇 개월만 선고할 것을 판사에게 호소했다. 그러나 검사의 피의자 심문 과정에서 그가 자신은 결백하다고 우기는 바람에 곤란한 처지에 빠지고 말았다. 어쨌든 이번 재판은 이대로 끝나고 다음을 기약하게 되었다.

 

이렇게 법정을 나와서 역사와 전통이 깃든 이 건물을 더 둘러보다가 프랑스 상원의원으로 갔다. 도착하자 그곳에 근무하는 공무원인 Henry가 우리를 돕겠다고 했다. 간단한 한국말로 인사말을 한 Henry는 자신을 따라오라고 했다. 푹신한 카펫이 깔린 넓은 계단을 올라가니 회의장으로 가는 복도가 엄청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황금빛으로 칠해진 벽과 기둥들과 천장들이 있고, 커다란 유리창 사이로는 햇빛이 은은하게 비치며, 불을 밝히는 샹들리에와 전등들은 아주 고급스러워 보였다.

 

상원의원들의 회의실에 입장했다. 그리고 그 엄숙하고 진중한 분위기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무도 없었지만 자동으로 진지해지는 느낌이었다. 내가 무심코 앉은 자리는 프랑스의 장관들이 앉는 자리였다. 누구도 쉽게 경험해보지 못할 경험을 내가 하고 있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뒷자리에서는 빅토르 위고에게 헌정된 자리도 확인할 수 있었다. 진보주의자로, 문학계와 정치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한 인물로 유명한 위고는 '레미제라블'을 쓴 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우리는 EU가 유로라는 공동화폐를 쓰는 것처럼 한국, 중국, 일본이 공동화폐를 써야 하는가에 대한 찬반 토론을 짧게 진행하기로 했다. 앉은 자리대로 찬성 팀과 반대 팀을 나눠서 나를 경계로 오른쪽에 있는 팀이 찬성, 왼쪽에 있는 팀이 반대였다. 나는 찬성 팀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한동안 말이 없다가 재원이 형과 동건이 형이 말을 꺼내자 토론의 열기가 점점 뜨거워졌다. 동건이 형은 한중일 공동화폐 사용을 통해서 경제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준수가 경제적인 규모가 세 나라 간에 큰 차이가 있어서 대부분 경제 수준이 높은 국가들로 이루어진 EU와 다르게 어려움을 많이 겪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렇게 경제적 측면에 관한 토론이 열띠게 진행되다가 반대 팀에서 문화적인 측면의 이야기를 꺼냈다. 과거사에 관해 서로 사과하지 않고, 심지어는 왜곡하며 갈등을 해결하지 못하는 모습에서 세 나라가 단순히 경제적으로만 협력을 하기는 힘들 것이라는 주장을 했다.

 

그 때, 나는 경제적으로 협력을 먼저 하다 보면 여러 측면에서 서로 의견을 나누게 되고, 자연스럽게 대화의 폭이 넓어지게 되며 일본이나 중국과의 역사적 갈등도 더 수월하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토론이 좀 더 진행되다가 시간 관계로 종료가 되었다. 이 토론을 지켜본 Henry는 청소년들이 이렇게 수준 높은 토론을 진행할 수 있다는 것에 깜짝 놀랐다고 한다. 새날 선생님의 통역에 따르면 Henry는 우리가 여러 가지 문제의 핵심을 짚고 있는 것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Henry는 상원의회의 정원과 다른 건물들에도 우리를 데려가 설명을 해주었다. Henry는 상원의회의 안내가 끝나자, 이번 안내를 통해 자신도 아주 즐거운 시간을 가졌고 이후의 여행에 행운이 깃들기를 바란다고 했다.

 

 

우리는 아주 배가 고팠고 선생님은 노트르담 대성당으로 가서 그 앞에서 밥을 먹자고 했다. 긴 길을 걸어서 도착한 노트르담 대성당 앞에서 케밥이랑 탄산음료를 먹었다. 성당 앞에서는 프랑스인들이 노래와 춤을 하고 악기도 연주했다. 노트르담 대성당처럼 아주 오랜 세월 동안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건물 앞에서 오늘날에 일반인들의 공연이 벌어진다는 것이 신기하고 특색 있어 보였다. 마이클 잭슨의 춤을 따라하는 한 가수의 공연을 보면서 동전도 몇 개 넣어 주었다. 꽤 재미있었지만, 앞으로 노래는 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춤은 괜찮았지만, 노래를 듣는 건 아주 끔찍했다. 다시 자리로 돌아가 우리들끼리 재미있게 이야기를 하고 있자 차가 도착했다. 차를 타고 캠핑장으로 돌아갔다.

 

오늘 방문한 곳을 통해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프랑스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오늘 역시 바쁜 하루였지만, 프랑스에 관해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어서 아주 즐거웠다.

 

이 글은 '스토리와 관점이 살아있는' 서유럽 인문학교 참가자 '여현승'학생의 수기中 6일차를 발췌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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