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기

수기 [동유럽 여행학교] 새로운 세상, 새로운 사람이 기억에 남는 여행

  • 공감만세
  • 2017-03-23
  • 56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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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동유럽 청소년 인문학 여행학교

2017-07-03 ~ 2017-07-30

글_한동채/ 사진_공감만세

 

2017년 1월 12일 목요일

 

고생 끝에 밟은 유럽의 첫 발자국은 프라하였다. 프라하에 뭐가 있는지 궁금해할 겨를도 없이 드레스덴으로 떠났다. 국경을 넘어 다닌다는 것은 국경의 존재가 생소할 수밖에 없는 우리나라의 현실이 떠올랐다. 드레스덴의 야경은 정말 맘에 들었다. DSLR이 없는 것이 이렇게 원망스럽던 적이 없었다. 숙소에서 잠시 짐 정리를 하고 케밥 식당에 가서 현지인과 첫 번째 소통을 하는 역사적 순간도 겪었다. 다만 ‘Halo’ 한마디 하는 순간에도 나는 살짝 움츠려들었다. 아직 현지 사람들은 조금 무섭다. 무서운 사람들도 아니고 좋은 사람들이 웃으며 대해 줬는데도 이러니 미안한 마음까지 들었다. 그래도 눈인사는 최선을 다했다. 이런 식으로 먼저 겁먹는 건 좋지 않다. 고치고 싶지만 조금은 먼 길 같다. 애들과 먼저 친해져야 할 텐데 그것도 아직 모르겠다. 고민이 많아지는 유럽에서의 밤이다.

 

 

2017년 1월 13일 금요일

독일에서 맞은 아침은 꽤나 마음에 들었다. 온도나 습도도 적당하고 음식도 가볍게 먹는 걸 좋아하는 나한테도 잘 맞고 한국이었다면 당연하듯 대화를 하지 않았을 사람들과도 소통을 하니 좋은 느낌이 들었다. 교회, 드레스덴성, 군주의 행렬 등 하나하나 아름답고 웅장했다. 반쯤 무너져 내린 빌헬름 카이저 교회마저도.

 

독일에 와서 좋은 것 중 하나가 문화재가 아니더라도 건물이나 신호등, 사람들에게서 이 나라에 와 있다는 느낌을 물씬 받는다는 것이다. 베를린 트럭 돌진 사건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수많은 꽃과 양초를 봤을 때는 숙연해지기도 했고 떠다니는 감정들이 묻어있는 듯해 일부러 사진도 찍지 않고 여러 생각에 잠겼다. 음식에 대해 할 얘기가 조금 있다. 인상 깊고 좋았었다. 아침과 저녁은 샐러드와 빵, 햄과 고기 그리고 커피나 물로 간단히 했다. 이런 방식의 식사는 간단하고 거창하지 않아 부담이 훨씬 덜해 좋아한다. 하지만 점심에 먹은 슈바인스학세는 거창했지만 느끼한 고기와 잘 어울리고 느끼함을 완화시켜주는 사우어크라우트가 있어 먹고 난 뒤에도 힘들지 않고 궁합이 잘 맞아 좋았다. 독일 음식은 정말 내 취향과 잘 맞는 것 같다.

 

좀 더 다양한 향신료에 도전해보고 싶다. 온 곳에서 물씬 풍겨 나오는 독일의 느낌이 신기하고 맘에 든다. 내가 가봤던 다른 나라에서와 마찬가지로 그들이 내게 먼저 건네는 인사 한마디가 가장 인상 깊고, 즐겁고, 또 나를 긴장하게 만든다.

 

2017년 1월 14일 토요일

오늘은 가볍지만은 않고 의미의 무게가 조금 더해져 있는 일정이었다. 그냥 슥 둘러보고 넘길만한 내용이 아니었다. 홀로코스트, 베를린 장벽, 유대인 박물관은 생각만큼 내게 혼란을 주지 않았지만 꽤나 인상적이었고 그렇게 때문에 더 이해하려 노력한 것 같다. 특히 홀로코스트의 축에선 살에 와 닿는 차가움에 유대인들의 상황을 아주 작게나마 느꼈고, 위에서 들어오는 한줄기 빛에서 희망을 보고 이들의 심정이 어떨지 생각해봤다.

 

베를린 장벽은 냉전을 상징한 벽이었지만 지금은 베를린 도시의 상징, 한때는 예술품 등 수많은 역할을 하고 있고 교육의 생생한 자료로서 쓰이는 걸 보며 독일이란 나라에 대해 약간의 존경심마저 들었다. 브란덴부르크 문을 직접 마주한 순간은 너무 기뻤다. 언젠가 꼭 봐야겠다고 마음먹은 지 두 달도 되지 않아 직접 보니 믿기지 않고 곧 최대한 잘, 자세히 많이 봐야겠다고 생각해 평소보다 열정적으로 행동했다. 그러다가 어제 본 베를린 트럭 사건 추모와 같은 형태의 추모장을 보고 조금 숙연해졌다. 거울이 놓여 있었는데 보고 있자니 묘했다. 집착하게 되는 순간 순수성은 변질되는 것 같다.

 

 

 

 

2017년 1월 15일 일요일

오늘 기억에 크게 남은 독일 국회의사당의 ‘투명한 정치’를 나타내는 동과 앞쪽에 쓰여있는 ‘독일 국민에게 바침’이라는 문구가 인상적이었다. 그저 한 문장 일지라도 우리나라와 많이 다르다는 게 느껴졌다. 자유시간이 되어서 이제야 다른 나라에 있는 느낌을 받았다. 많은 시간이 아니었지만 몇 분을 혼자서 걸어 다니니 색달랐다. 걷기란 이런 맛이 있어야 한다. 기차 안은 생각보다 좁아서 놀랐다. 애들이랑 얘기를 꽤 했다. 이제 슬슬 피곤하다. 아직도 다른 나라를 기차나 차를 타고 간다는 건 신기하게만 느껴진다.

 

2017년 1월 16일 월요일

꿈에 그리던 독일에서 환상 대신 현실을 머릿속에 집어넣은 뒤 기대하던 오스트리아에 도착했다. 독일처럼 여전히 춥고, 칙칙하고 흐렸다. 하지만 설렘은 가시지 않았다. 친구가 그리 극찬하던 오스트리아 빈을 밟은 것만으로도 좋았다. 기대된다.

 

외관도 외관이지만 난생처음 보는 진짜 황실의 모습을 엿보니 그저 동화 속 세상 같았다. 하지만 황족들도 나름 고충이 있을 걸 생각하니 그렇게 좋기만 하지 않은 것 같았다. 현재의 삶에 만족해야겠다. 슈테판 성당은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종교의 전파에 있어 건축물이 상당한 역할을 할 것 같다. 무교인 나에게도 아름다움과 장엄함을 느끼게 하니 말이다. 오늘은 지하철로 이동했는데 문을 직접 여는 것과 좌석 배치가 다른 것과 옆에 잡지가 걸려 있는 등 여러 가지가 달라 흥미로웠고 현지인과 조금 동화되는 느낌을 받아 좋았다. 그들과 거리낌 없이 살 수 있을까. 갈수록 피곤함이 증진된다. 그래도 바삐 움직이는 바깥과 같이 움직이는 게 맘에 든다.

 

 

2017년 1월 17일 화요일

나에게 여행이란, 만남이다. 새로운 사람, 장소, 문화 그리고 새로운 일, 언제나 만남이 있기 때문이다. 좋던 나쁘던 만남은 늘 새롭다.

 

 

2017년 1월 18일 수요일

언제 봤는지 기억도 안 나는 ‘사운드 오브 뮤직’에 나오는 장소들을 갔을 때 부분, 부분 기억이 돌아오는 듯했다. 아름다움, 그리움, 반가움 같은 감정은 메말랐는지 그런 감정이 들진 않았다. 그저 눈이 많이 왔다는 것이 늘 나를 기분 좋게 하는 것 같다.

 

모차르트의 생가는 아름다운 노란색이었다. 모차르트의 향취는 얼마 없는 듯했다. 오스트리아는 독일보다 인문학적인 느낌을 많이 받지 못했다. 도시가 아름답다는 느낌과 오스트리아에 왔다는 느낌이 크게 든다.

 

 

 

2017년 1월 20일 금요일

길고도 짧았던 오스트리아에서 떠나 체코로 왔다. 무려 ‘보석’이란 별칭을 가진 도시가 있는 나라인 만큼 아름다웠다. 할슈타트보다 따뜻하고 고풍스러운 느낌이 와 닿아 할슈타트를 잊을 만큼 예뻤다. 음식이 현지에 있다는 느낌을 가장 잘 전달해 주는 것 같다. 또 체스키크룸로프 성, 볼바와 강을 끼고 있는 보니트르주니 모네스토는 중세의 느낌을 잘 간직하고 있어 아름다웠지만 중세인 만큼 조금 심심한 느낌도 줬다. 이제 돌아다니는 게 익숙해져 여러 군데 돌아다니며 구경하고 기념품하고 하다 보니 유럽에 있는 게 확신이 들었다. 하지만 곳곳에서 들려오는 한국말이 분위기를 깼다. 성당에 가 유지 보수 비용을 보태기도 했다.

 

자신이 하는 말이 부딪쳐 돌아온다는 게 힘들다는 건 나도 잘 아니까 조금이라도 말을 잘 들어야겠다. 사운드 오브 뮤직을 다시 보니 감회가 새롭다, 잘츠부르크에서 본 곳이 나오니 더욱. 체코는 지금껏 여행한 곳 중 가장 아름답다. 내일이 기대되고 유럽이란 사실을 다시 한 번 새삼 느낀다.

 

 

2017년 1월 21일 토요일

동유럽의 보석 프라하에 왔다. 아침부터 기분이 좋았다. 호텔 아침밥이 다채롭고 좋았다. 바츨라프 광장으로 향해 바츨라프 하벨과 ‘프라하의 봄’ 그리고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 얘기를 들었다. 사회주의는 그저 스탈린주의로 인해 실패한 이념이라고는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리 꽉 막히지만 않고 개혁의 여지가 존재했다는 걸 알았다. 바츨라프 광장을 돌아보며 독일, 오스트리아와는 다른 느낌을 받았다. 약간 더 어둡지만 음산하지 않은 오묘한 느낌이었다. 동유럽이라 그런가 싶다.

 

 구시가지에 있는 천체 시계는 매 정시에 해골이 종을 울리고 예수 뒤로 12제자가 지나갔다. 독특해서 맘에 들었다. 음악에 이끌려 가보니 콰르텔이 버스킹을 하고 있었다. 평소에 이런 음악을 좋아해 끝까지 듣고 몇 센트 놓았다. 또 새로운 경험을 한다. 프라하성은 웅장함보단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안쪽에 있는 성당과 황금소로도 예뻤다. 건물들이 하나하나 다 예뻐서 직접 보고 있는지 의심이 갔다.

 

 야경을 볼 때쯤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길 것만 같았는데 다들 친해지고 여행하는 과정이 진행될수록 시간이 빨리 흘렀다. 아쉽고 또 아쉽지만 이만큼 해 와서 다행이다. 만남에는 언제나 헤어짐이 있지만 막상 바로 앞으로 다가오니 여러 감정이 교차하고 떠돈다. 계속 같이 있으면 많은 새로운 일이 있을 거란 생각이 자꾸 든다, 아까 썼지만 아쉽다. 돌아보면 이만큼 좋은 여행은 없단 생각이 들 만큼 만족스러웠다. 왜 마지막에야 더 잘해볼걸 후회하는 걸까. 이제는 일상으로 돌아갈 준비를 해야겠다.

 

 

 

나의 공정여행기

유럽 땅 중 가장 처음으로 밟은 프라하와 작별을 고하려고 하는 때에 쓰는 여행기이다. 아직도 머릿속에 꿈같이 좋았던 순간들이 스쳐간다. 크게 두 가지가 좋았다. 새로운 세상, 그리고 새로운 사람. 두 가지 요인이 겹쳐서 기억에 남는 여행이 된 것 같다.

 

늘 가보고 싶던 유럽에 온 것도 온 것이지만, 짧은 시간 동안 미치도록 그리워질 것 같은 사람들이 되어버린 이들과 함께 하며 만들어진 이야기가 있는 여행이었기에 기억에서 오랫동안 떠나지 않을 꿈결 같은 여행이 된 것 같다. 여행에서 갖는 만남이 여행을 풍족하게 한다고 생각한다. 몇 번 주춤하고 가끔씩 피하기도 했지만 그랬던 만큼 다가가려고도 하고 평소 같으면 하지 않았을 것들을 도전해보기도 하면서 나는 풍족하고 얻어 가는 게 많은 여행을 했다.

 

역사 속에서 수많은 사건으로 대륙 내에서 얽힌 유럽이라 그런지 문화는 말할 것도 없고 사람들이 달랐다. 아쉽게도 현지인과의 교류 일정이 없어 크게 느끼지 못했지만 곳곳에서 엿볼 수 있는 현지인들에게서 우리와는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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