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기

수기 [홍성 공정여행] 여행이 주는 '무엇'을 만나다.

  • 공감만세
  • 2015-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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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_월간토마토 기자 이수연/ 사진_공감만세

 

둥그렇게 둘러앉은 자리에서 다리만 쳐다보던 반우가 모두가 하는 이야기를 하나도 빠짐없이 듣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여행 첫날밤 숙소에 둘러앉아 오늘 하루를 떠올리며 마음을 나누는 시간이었다. 시종일관 고개를 숙이고 있던 반우는 “사람들과 함께 이렇게 있는 게 오랜만이어서 행복했다.”라고 말했다. 다른 이의 이야기를 빠짐없이 들었다는 사실은 모든 시간을 마치고 마당에 앉아서 대화를 나누다 들었던 이야기다. 고개를 숙이고 있다고, 태도가 좋지 않다고, 듣지 않는 건 아니었다. 반우는 ‘열심히 듣는다는 걸 사람들이 아는 게 어쩐지 부끄러워서’ 그랬다고 말했다.

 

 

우리 함께 여행을 떠났다

6월 16일부터 18일까지 공감만세와 함께 떠난 여행지는 충남 홍성이었다. 이번 여행은 청소년대안교육위탁기관 신나는 배움터 두런두런(이하 두런두런 학교)에서 학업중단숙려제(이하 숙려제) 기간을 보내는 청소년들과 함께했다. 숙려제는 자퇴·유예 등 학업중단 의사를 밝힌 학생이나 담임·상담교사의 관찰을 통해 학업중단위기에 있다고 판단되는 학생들이 학교에 계속 다닐 수 있도록 마련한 제도다. 약 3주간 진행하는 이 프로그램은 대상 학생이 교육청에서 지정한 위탁교육기관이나 학교에서 일정 교육을 받으며, 학교에 계속 다닐지 그만 다녀야 할 지 생각할 기회를 한 번 더 주기 위해 마련한 제도다. 2015년 상반기 두런두런 학교에서도 총 네 팀의 숙려제 기간 학생들과 시간을 보냈다. 6월에 함께한 친구들은 네 팀 중 마지막 팀이었고, 마지막 프로그램은 ‘여행’이었다. 6월 9일부터 12일까지 함께 여행을 준비하는 것부터 여행의 시작이었다. 6월 16일, 준비한 것을 바탕으로 여행을 떠났다.

 

함께 떠난 친구는 총 아홉 명이다. 열여섯 살부터 열아홉 살까지 모두 다른 이유로 학교에 계속 다녀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었다. 6월 16일 모임 장소인 건신대학원대학교 강당에서 친구들을 처음 만났다. 어색한 얼굴로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앉아 있는 아이들의 표정을 살피며, 눈이 마주칠 때마다 입가에 씩 웃음을 보였다. 아이들 역시 힐끔힐끔 처음 본 사람의 얼굴을 살폈다. 눈을 마주쳤다가 휙 피하기도 하고, 쓱 능글맞은 웃음을 보이기도 한다. 가장 늦게 고개를 숙이고 성큼성큼 자리에 앉은 친구가 반우였다. 공감만세 여행교육팀 공현숙 코디네이터와 김성선 운영위원이 아이들에게 여행을 떠나기 전 주의사항을 설명하고, 다섯 명과 네 명으로 두 개 팀을 나눴다. 그리고 길을 나섰다. 시내버스를 타고 대전복합터미널 앞에서 먼 나라 관광객처럼 일어서서 단체 사진을 찍을 때만 해도 반우의 얼굴이 밝지 않았다.

 

 

여행이 보여준 무엇

두런두런 학교 박동우 교감은 아홉 명의 아이들이 학교에 가기 싫은 이유를 크게 세 가지로 나누었다. 무기력한 아이들, 안된다는 말과 못한다는 말을 계속 들으며 무기력을 학습한 친구들이다. 규칙을 위반해서 벌점이 쌓인 친구들, 지각하거나 땡땡이를 치거나 교복이 단정치 못해서까지 벌점을 받는 일은 종류도 다양하다. 또 하나는 좋아하는 걸 가르쳐주지 않아서 더는 학교에 다니고 싶지 않은 친구들이다. 음악을 배우고 싶은데 학교에서는 가르쳐주지 않아서, 미용을 배우고 싶은데 학교에서는 공부만 하라고 해서와 같은 이유로 아이들은 학교에 다니는 걸 힘들어했다.

홍성으로 가는 데까지 세 시간 남짓 걸렸다. 홍성시외버스터미널에서 문전성시로 향했다. 문전성시에서 문화연구소 ‘길’의 최철 소장을 만났다. 점심시간엔 누군가 해주는 음식이 아니라 친구들이 직접 만든 음식을 먹어야 했다. 함께 만들고, 상인들에게 대접할 요리를 선정했다. A팀은 또띠아토스트와 볶음밥, B팀은 해물손칼국수와 김치어물전이었다. 요리에 필요한 재료를 사기 위해 팀별로 시장을 휘저었다.

 

 

A팀은 반우를 포함한 다섯 명의 친구와 두런두런학교 박동우 교감, 차길담 교사가 함께했다. B팀은 네 명의 친구와 두런두런 학교 진선미 교사, 공감만세 김성선 운영위원이 함께했다. 시장에 처음 온 친구도 있고, 부모님과 함께 시장에 올 때면 차 안에만 있었다는 친구도 있었다. “시장 냄새가 싫었는데, 친구들과 함께 장을 보러 다니니 색다른 기분이에요.”라고 말하는 친구도 있었다. 상인들은 대낮에 시장을 휘젓는 학생들이 뭔가를 물어오면 하나라도 더 알려주었다. 김치볶음밥을 만들 때는 어떤 고기를 써야 하고, 칼국수 만들 때 넣으라고 국물을 한 대접 싸주기도 했다. 밀두리식당과 한양식당에서 부엌을 내주어 요리할 수 있었다. 정해진 시간 안에 음식을 만드는 동안 주인아주머니가 간을 봐주기도 하고, 한 번씩 어깨를 쓰다듬어주기도 했다. 누군가 만지는 걸 불편해할까 봐 선생님이 “아. 어머니. 친구가 싫어할 수도 있어요. 반우 괜찮아?”라고 묻자 벌게진 얼굴에 미소를 띠며 “괜찮아요.”라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여행이라서 들을 수 있었던 무엇

홍성시장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숙소로 향했다. 시골버스를 타고 홍성환경농업마을로 향했다. 그날 잠들기 전 숙소에서 3분 거리인 소나무숲으로 향했다. 그날 내내 다른 친구들에게 “웃는 얼굴 처음 본 것 같다.”라는 이야기를 듣던 반우가 다가왔다. 혹시 우울증에 시달린 적 있느냐는 질문에 한참을 고민하다가 “자주 우울하지만 아마 네가 겪는 우울증을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이렇게까지 우울하기 전에는 저도 우울증 때문에 아무 것도 하지 못하겠다는 이야기를 믿지 않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알 것 같아요. 정말 무기력하고, 의욕이 없어요. 학교에 가는 것도 집에 있는 것도 힘들어요. 그래서 여행에 꼭 오겠다고 했어요.”

숙소도 좋고, 소나무숲도 좋고, 함께 여행을 떠난 사람들도 좋지만 다시 돌아올 일상이 괴로울까봐 두렵다. 기쁨과 만족, 행복함을 느낀 이후에 찾아올 허무함과 허전함이 더 크다는 것을 짐작하면서 두려움을 느낀다. 반우는 자주 우울하지만, 자신이 우울증에 잠식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병원에서 준 약을 먹으면 잠깐은 나아지지만, 완전한 해결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무작정 어디로 떠나야할 것 같다가도 금세 무력해져서 고개를 떨군다. 이렇게 자신의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할 때 잠깐씩 우울함이 누그러진다고 말했다. 그런 반우의 이야기를 듣다가 “그래도 넌 좋겠다. 네 마음이 어떤지, 그럴 땐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있는 거 아니야. 그건 좋은 거 아니야?”라고 물었다. 반우는 자주 자신에 대해서 생각하는 학생이었다.

 

 

 

여행지라서 보이는 무엇

마블은 눈을 마주칠 때마다 꾸벅 인사를 하고, 우주최강슈퍼락커는 사진기를 들 때마다 모델처럼 자세를 취한다. 왕언니는 아프다고 투덜대면서도 손 내밀면 언제나 함께 해줬다. 해바라기는 화장품 세일하는 곳을 알려주며 화장 기술에 대해 가르쳐주었다. 젼이는 사진 찍을 때마다 얼굴을 가리더니 어느 순간 사진기를 똑바로 바라보며 브이 자를 그린다. 학교생활이나 고민을 조용히 이야기하던 꼬북이, 함께 하지 못한 시간이 아쉬웠다며 앞으로 함께 하는 시간엔 모두 참여하고 싶다고 다짐하던 오리, 재미없다고 말하면서도 함께 하는 모든 일정에 성실히 참여하던 푸드파이터. 하나씩 머릿속에 떠올리니 모두가 다르게 행동하고 다르게 받아들이고 다르게 생각하는 친구들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낯선 이에게 조금씩 마음을 내어주었다. 조심스럽게 손 내밀면 찡그린 얼굴을 하면서도 카메라 앞에 서주었고, 함께 걷자고 옆에 붙으면 웃어주었다. 익숙하지 않은 공간이라는 것과 이미 관계를 형성한 교사들이 소개한 사람이라는 것이 학생들에게 큰 점수를 받았던 것 같다.

 

“나는 XL를 입어야 하는데 학교에서는 자꾸 일괄적으로 S를 입으라고 하는 거예요. 나는 그 옷을 입으면 불편하고, 견딜 수 없는 거예요. 그런 아이들을 이해하는 게 어려운 게 아닌데 거대한 시스템 속에 있으니까 보듬기 힘들죠. 이번 여행에서 목표했던 건 딱 하나였어요. 관계예요. 관계를 형성하는 데 주요한 역할을 하는 게 여행이라고 생각했어요. 학교에서는 관계가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교육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경쟁으로만 치닫고, 학생들은 계속 내몰리잖아요. 여기 오는 친구들이 개성이 강해요. 오히려 수업시간 내내 엎드려 있는 것보다 용기가 있는 친구들일지도 몰라요. 지금 교육이라는 시스템 안에서 수동적일 수밖에 없도록 길러지는 아이들을 이해하고, 진심으로 대하고, 그렇게 관계를 쌓고, 그다음에 뭔가를 가르치면 돼요. 관계가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하지 말라는 말은 지시가 되지만, 관계가 형성된 이후에는 학생들이 받아들이는 게 달라져요.”

박동우 교감이 정의한 ‘관계’는 신뢰와 우정이었다. 2박 3일 여행 중 두 번째 날 대전으로 돌아왔다. 이후 여행을 마무리하는 시간에 다시 만난 박동우 교감은 여행 마지막 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과 같이 여행하는 기분이었어요. 시장에서 만난 상인들도 숙소에서 만난 선생님들도 모두 아이들을 진심으로 대해주셨거든요. 여행 마치고 어딜 가도 좋다고 한 적이 없었던 친구가 집으로 돌아가서 엄마에게 이번 여행 좋았다고 말했대요. 또 반우가 마지막 날 편지를 쓰는데 평생 오늘을 절대 잊지 않겠다고 썼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