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_진주iCOOP생협 홍보위원회
iCOOP소비자활동연합회는 ▲지역조합의 핵심리더의 교육과 역량 강화 ▲새로운 운동방식에 대한 견문 확대와 인식증진 ▲조합 활동가들의 유대 강화와 재충전을 목적으로 2015년 지역조합 활동가 해외연수를 진행하고 있다.
진주iCOOP생협 이사들이 지난 6월 10일~14일 4박 5일 일정으로 베트남 하노이지역을 다녀왔다. 베트남의 공정무역 산지를 견학하고 그곳의 협동조합을 방문해 교류를 확대하겠다는 취지였다. 아래는 공정여행을 다녀온 진주iCOOP생협 홍보위원회의 연수기이다.
메르스를 이기고 가다
연합회에서 지원하는 지역조합 이사회 해외연수에 우리가 뽑힌 사실만으로도 정말 기뻤다. 학습회 등 몇 달간 연수를 위한 준비를 해나갔다. '공감만세'에서 연수 일정과 내용에 대한 브리핑까지 마쳤는데, 떠나기 일주일여를 앞두고 복병을 만났다. 그것도 아주 강력한...'메르스'
아직 팔팔한 나이인 우리야, 그 어떤 최강의 바이러스를 만나더라도 이길 수 있는 몸과 정신력이 된다고 우겨도 되었다. 하지만 어린 아이나 몸이 약한 아이를 둔 이사들은 지나친 불안과 공포감에 감염된 가족들의 반대와 싸웠다. 마지막까지 반대하던 이사 한 분의 시어머니가 갔다 오라고 허락을 한 건 출발하기 불과 이틀 전이었다. 극적으로 전원의 이사가 갈 수 있게 된 것부터 베트남 연수는 예사로운 여행이 아니었다. 우리는 '메르스'를 그렇게 이겼다.
'예외없는' 식품완전표시제 캠페인 활동에 힘을 쏟아야 할 시기란 점도 우려스러웠으나, 연수에 들고 갈 현수막에 식품완전표시제 내용을 넣었다. 출발지인 김해공항에서 도착지인 하노이 공항에서도 둘러보는 곳마다 현수막을 펼쳐 들고 사진을 찍었다. 이런 모범 이사회 같으니라구...^^
하노이병원에서 처음 들어본 말 '포타슘'
호텔에 짐을 푼 뒤 현지 대절버스를 타고 드디어 연수의 첫 번째 방문지인 민족학박물관으로 출발~! 아... 그런데 몇 분 지나지 않아 미라 이사가 온몸에 경련을 일으키며 눈물을 뚝뚝.. 달려들어서 몸을 주무르고 바늘로 따도 피 한 방울 안 나오는 급박한 상황 발생! 정말 다행으로 멀지 않은 곳에 병원이 있었고, 응급 처치를 받고 검사를 해보니 몸속 전해질인 '포타슘'의 수치가 급격히 떨어져 근육이 수축되었다고 한다. 그 병원에는 한국인 통역사가 근무하고 있었다.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가까이에 우리말 통역까지 해주는 병원이 있었다는 게. 만약 그 타이밍이 아닌 정말 먼 곳에서 그랬더라면 어떤 상황이 벌어졌을지 생각하기도 싫다. 전해질 수액을 내리 3병이나 맞고 미라 이사는 퉁퉁 얼굴이 부은 채 침대에서 일어났다. 죽다 살아난 첫날 아찔한 그 순간은 연수내내 이야깃거리였고, 한국에 와서도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첫날 우리의 일정은 이렇게 급변경되었다. 계획에도 없던 첫 방문지는 바로 하노이 병원으로~
공정쇼핑의 천국 '크레프트 링크'(CRAFT LINK)
병원에서 모두가 마냥 기다릴 수 없어서 급한 불을 끄고 난 뒤 미라 이사와 한 명만 간병인으로 있고, 일정 하나를 건너뛰어 향해 간 곳은 '크레프트 링크(CRAFT LINK)'란 사회적 기업이었다. 이 곳은 54개 민족 중 87% 차지하는 비엣족을 제외한 나머지 소수민족의 자활을 위해 1996년 민간에서 운영을 시작했다.
크레프트 링크는 소수민족의 전통문화를 보존하고, 소수민족에게 경제적 지원을 한다는 목적을 가지고 설립되었다. 소수민족별로 돌아가면서 2년씩 집중적으로 직원들이 교육을 하고 생산한 공예품의 판매수익으로 소수민족의 자활을 돕는 방식으로 운영되며 외부의 지원을 받지 않는다. 모두 70개 그룹이 있는데 6000명 정도의 생산자들이 수공예품을 만들고 있다. 수공예품 판매뿐만 아니라 소수민족의 문화, 언어 등을 알리는 역할도 여기서 하고 있다.
생산된 수공예품중 80%는 미국, 유럽, 호주 등 해외로 수출되고 20%는 국내 로컬숍에서 판매되고 있다. 60%는 공정무역시장, 40%는 일반시장에서 거래된다. 1년에 한 번씩 모든 소수민족이 모여서 큰 시장을 열고 축제처럼 즐기면서 자긍심과 자립심을 키우는 기회로 삼는다. 이런 행사시에는 200명 정도의 자원봉사자가 참여를 한다.
이 모든 이야기는 크레프트 링크의 빨간 치마를 입은 예쁜 매니저가 이야기해 주었다. 궁금한 게 많은 이사들이 자리를 떠날 줄을 모르고 질문을 이어갔다. 시간만 된다면 이 물품을 만드는 곳을 직접 가서 보고 싶었다. 수공예품의 질이 좋고 예쁜데, 가격도 비싸지 않아서 하노이 여행에서 꼭 들러야 할 곳으로 추천되고 있다 한다. 첫날 첫 방문지라 아직 어떤 물건을 살지 감이 없는 이사들이 한 두 개씩밖에 안 사고 왔다가, 다른 방문지를 갈 때마다 크레프트 링크만큼 사갈 만한 선물이 다양하게 또 싸게 구비된 곳이 없음을 알고는 원통해 했다. 마지막 날까지 일정이 되면 잠깐이라도 다시 가려는 시도를 했지만, 끝내는 이룰 수 없었다. 크레프트 링크를 가기 위해 하노이에 꼭 다시 오겠다고 하는 이 여자들을 누가 말릴꼬...
사회적기업 레스토랑 '코토'(KOTO)에서의 특별한 저녁식사
첫날 저녁식사를 하러 간 곳은 베트남 최초의 사회적기업 '코토'란 레스토랑이었다. 현지식을 먹는다는 기대감은 이내 예상치 못한 향이 밴 음식들에 사그라들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참기 힘든 그 향의 정체는 베트남 음식의 필수 향신료로 쓰이는 '고수'란 풀이었다. 비주얼은 먹음직스러운데 가까이하지 못하게 만드는 향. 고수향은 베트남 연수 내내 식사 시간이면 후각을 자극했다. 하지만 조금씩 적응되어 음식을 잘 먹는 사람도 있고, 오로지 현지식을 먹어봐야겠단 마음으로 조금씩이라도 먹어보는 사람, 싸간 김치와 김이 꼭 있어야만 되는 사람으로 자연스레 나누어졌다.
가족해체, 빈곤, 저임금 노동 등으로 고통받는 베트남 아이들에게 근본적인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자 설립한 코토는 길거리에서 방황하는 아이들을 교육하고 일자리를 마련해주고 있다. 지금까지 14년간 약 700여명의 요리사와 바텐더를 배출하였다 한다. 코토는 현재 베트남 최고의 요리전문학교이자 레스토랑으로 발전되어 있다.
호치민, 베트남 국민들에게 그는 어떤 존재인가
둘째 날 아침. 역시 아침부터 시작되는 6월 베트남의 열기는 만만치 않았다. 둘째 날의 첫 번째 일정인 호치민 묘역 방문. 아침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묘역으로 들어가려는 줄이 끝도 없이 늘어서 있었다. 어린이 집에서 단체로 온 아이들, 가족단위로 온 사람들, 관광객들...주말이나 공휴일도 아니고 평일 아침, 뭔 사람들이 이리도 많이 오나 싶었다.
입장하기 전 가이드가 가방에서 긴소매 점퍼며 두르는 치마(?)를 주섬주섬 꺼낸다. 이유를 알고 보니 짧은 치마나 짧은 바지, 민소매 차림으로는 아예 묘역 안으로 들어갈 수도 없어 옷차림부터 점검을 해야 했다.
걸어 들어가는 내내 더위와 길게 늘어선 줄을 그나마 버틸 수 있게 해준 건 호치민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는 곳까지 그 긴 길을 파란 천막으로 쭉 그늘을 만들어 놓았다는 것. 그 길을 따라 가는 동안 가이드를 통해 호치민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호치민은 베트남의 독립운동가이자 민족의 지도자로서 프랑스로부터 베트남의 독립과 통일을 위해 일생을 바쳤다. 독립운동을 위해 여러 나라를 망명해 다니며 7개 언어를 구사할 정도의 뛰어난 실력자였으며 베트남 사람들은 그를 신처럼 생각한다고 한다. 호치민은 생전에 가족이나 자식이 없었고, 늘 친근한 사람이었기에 호 아저씨라고 불렸다. 그는 1969년 사망하였는데, 장례도 화장을 하고, 간소하게 해주길 원하였으나 국민들은 영웅인 그의 장례식을 고인의 뜻과는 다르게 성대한 장례식을 치르고 묘소도 크게 지었다. 또한 시신을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도록 유리관에 모셔 놓았다. 그가 편안히 누워있는 모습(?)을 보면서 그를 너무도 사랑하고 존경하는 베트남 국민들의 마음을 이해할 것도 같으면서 한편으로는 고인의 뜻과 무관하게 이렇게 해 놓는 것이 맞는 건가 조금은 의문이 들기도 했다.
하루 10만명 정도의 방문객이 찾는 이 호치민묘역은 1972년 정도에 만들어졌는데, 만들 때 하노이 지역의 모든 국민들이 1일 이상 의무적으로 자원봉사하도록 했다고 한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쳤지만 결국 우리 힘으로 독립을 이루지 못한 우리나라와 비교해, 호치민이 중심이 되어 그들의 힘으로 독립을 이룬 베트남이 한편으론 참 부럽다는 생각을 하며 그곳을 나왔다.
호치민 묘역에서는 지키는 경찰들이 현수막을 들고 사진 쵤영을 못하게 했다. 현수막 안에 어떤 내용이 쓰여있는지 모른다는 것 때문이란다. 좀 심하다 싶었다. 하지만 우리가 누군가. 출구 쪽에서 감시의 눈길을 피해 거의 빛의 속도로 현수막을 꺼내어 찰칵!!
민족학 박물관
입장부터 달랐다. 단순관람자와 사진을 찍을 관람자의 입장료가 달랐다. 박물관은 실내 전시장과 야외 전시장으로 나눠져 있었다. 실내 전시장은 베트남 54개의 소수민족을 언어와 문화 등으로 분류한 4개의 큰 부족으로 나누어 각 부족마다의 특징과 생활모습을 볼 수 있도록 전시했다. 각 민족들은 서로의 문화에 영향을 주면서 함께 성장하고 있음을 한 눈에 볼 수 있었다. 야외 전시장에선 각 소수민족의 가옥 양식과 무덤양식을 한눈에 보고 체험할 수 있었다. 전시된 모든 가옥은 각 소수민족이 직접 참여하여 제작 설치한 것이라고 한다. 다수를 차지하는 민족이 소수민족을 정복의 대상으로 본다거나 무시함이 없이 함께 더불어 공존하려 노력하는 모습을 베트남 곳곳에서 엿볼 수 있었다.
베트남의 협동조합은? 사이공생협 방문
연수 일정 중, iCOOP 활동가로서 가장 궁금하기도 했던 사이공생협으로 이동할 때는 왠지 설렜다. 하노이에 2개밖에 없다는 쿱마트(coop mart) 중 한 곳을 방문했는데, 하노이 시내에서 조금은 외곽 쪽으로 이동했다. 시내의 상가들과 다르게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파트 단지 내 상가에 위치하고 있었다.
매니저와 회계(총책임자), 부매니저, 섹션별 매장책임자 등 몇 분이 나오셨는데, 블루톤의 와이셔츠 차림이었다. 매니저의 브리핑으로 사이공생협에 대하여 간단히 설명을 들었다.
사이공생협은 1988년에 설립하였고, 1996년 9월에 처음으로 매장을 개설하였다. 현재 전국에 75개의 매장이 운영되고 있고, 조합 수는 147개, 조합원 수는 16,000명 정도 된다. 하노이에는 매장이 2개밖에 없지만 남부 호치민에는 매장이 훨씬 더 많으며, 협동조합 본부 또한 호치민에 있다. 현재 베트남에서 소매업계 1위, 점유율 50% 차지할 정도로 사이공생협의 쿱마트는 베트남의 생활 속에 탄탄하게 자리를 잡은 듯하다. 사업은 배송, 소매, 투자(부동산) 로 크게 나뉘고, 슈퍼마켓 외 푸드COOP(편의점 형태, 유기농 판매)과 쇼핑몰은 호치민에만 있다.
주로 친환경위주의 먹거리를 취급하고 있는 iCOOP생협과 달리 사이공생협은 일반상품을 취급하지만, 국내산 위주로 저렴하고 품질 좋은 상품을 판매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소매업계중 가장 저렴하게 공급하는 것이 경쟁력인 것 같았다. 이후 들어올 외국자본에 대한 전략에 대하여 질문을 했을 때 매니저는 고객에 대한 서비스와 저렴한 가격이라고 했으며, 경쟁력에서 뒤떨어지지 않을 거라는 자신감이 있어 보였다.
우리가 방문한 쿱마트는 물품이 2,000가지 정도 되고, 카테고리는 신선, 가공, 옷, 화장품으로 크게 나뉜다고 하며, 이 쿱마트에서 쇼핑하는 조합원은 약 147명 정도 되는데, 조합원만 이용하는 아이쿱과 달리 조합원과 비조합원의 구분이 별도로 없었고, 많이 이용하는 고객에게 혜택을 준다고 한다.
사이공생협은 정부에서 3년 정도 세금감면의 혜택을 주었고 다른 지원이 있는 건 아니다. 총회에서 조합원 중 회장을 뽑고, 임기는 5년이다. 조합은 조합원들이 운영을 하지만, 매장에서는 특별히 조합원 유치를 위해서 활동을 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조합과 조합원 활동 등에 대해 궁금했던 우리들로서는 약간은 김이 빠지는 분위기였다고나 할까?
브리핑을 마치고 쿱마트로 이동하였다. 베트남은 특이하게도 마트로 들어갈 때는 가방을 들고 들어갈 수가 없다. 그 만큼 상품이 도난당하는 경우가 많은가보다. 불편하지만 가방을 모두 밖에 모아놓고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마트 내부는 우리나라 일반 마트와 거의 흡사하였고, 제법 많은 한국 상품들을 볼 수 있었다.
2012년 ICA-AP 생협위원회 자료에서 보면, 2008년 6월 기준 베트남에는 총 17,900개 협동조합, 44개 연합회가 존재하며, 매년 1,000개의 협동조합이 설립되고 있다고 한다. 그 중사이공 생협은 베트남에서 가장 대표적인 협동조합이다.
2011년 사이공생협의 사회적 활동으로는 주로 VND5억기부, 재난구호활동, 장학금 지원, 수혈활동, 친환경 활동 등이 있다.
베트남은 생각보다 협동조합의 역사가 오래되었고 지금도 꾸준히 발달되고 있는 것 같았다. 브리핑에서 매니저는 사이공생협의 가치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고, 다른 또 하나는 지역사회 공헌이라고 말했다. 구조는 다를지 몰라도 사람이 중심인 iCOOP과 닮은 점이 있었다.
'수중인형극' 베트남의 문화를 만나다
수중인형극은 베트남의 54개 민족 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비엣족'의 전통 문화로 농업과 관련된 내용으로 만들어졌다. 인형극을 물속에서 하는 이유는 농업과 물은 뗄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물에 의해 피해를 받기도 했다면 물 밑에서 공연을 하면서 사람이 물을 조정하고 통제한다는 의식이 깔려 있기도 하다.
인형은 대나무 등의 나무를 사용하고 여러 주인공이 등장하는데 실제 존재하는 동물과 신화속 동물들이 함께 등장한다. 공연하는 사람들은 실제 농촌에서 온 사람들이고 농업의 일상인 낚시와 농사짓는 모습을 인형극으로 보여준다. 인형은 무대에서 발로 가려진 뒤쪽에 사람이 있어 줄 모양으로 생긴 것으로 인형을 조정한다고 한다.
처음 본 수중인형극, 베트남 전통 악기 연주와 노래를 시작으로 1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흥미진진하게 지켜봤다. 인형으로 물속에서 그렇게 다양한 모습들을 사실적이면서도 재미나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었다.
오토바이와 차와 사람이 뒤섞여 흐르는 하노이 구시가지
하노이에서 놀라웠던 것 몇 가지.
하나,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를 수많은 오토바이떼. 어느 이사는 한국 살면서 평생 볼 오토바이보다 하노이에서 본 오토바이 수가 더 많을 거란다. 많은 오토바이가 거의 딱 붙어서 차와 사람들 사이를 쉴 새 없이 빵빵거리며 지나다닌다. 처음 볼 땐 무질서해보여 건널 엄두가 안나 한참을 머뭇거리며 겨우 건너던 그 도로가, 떠나올 때쯤에는 제법 익숙해져 현지인 흉내를 내며 느긋하게 지나갔다.
둘, 거대한 가로수와 허름한 노천카페. 우리나라 같으면 통행에 방해가 된다고 짤막하게 가지치기를 해줬을텐데 하늘 높이 우거지게 내버려 둔 가로수들. 그리고 그 가로수들 사이로 난 좁은 길에 노점상과 아무렇지 않게 목욕탕 의자(?)를 두고 음식을 먹고 술을 마시고 이발을 하는 사람들. 제법 세련되게 차려입은 도도해보이는 아가씨조차 빨간 플라스틱 의자에 다소곳이 앉아 쌀국수를 먹으며 수다를 떨고 있다.
셋, 다닥다닥 붙어있는 직사각형의 좁다란 집. 옛날엔 집 앞의 대문크기로 세금을 거뒀다고 한다. 그래서 보여지는 앞은 좁고, 뒤로 길다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모습이 재미있다. 닭거리, 은거리, 신발거리... 우리말로 번역한 시가지 길의 이름들인데, 옛날에는 판매되는 물품들끼리 모여서 장사를 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넷. 사고 날까 겁나는 전기줄 뭉치의 전봇대. 아직 전선들이 지중화 되지 않아 전봇대와 건물사이로 하늘을 가릴 만큼 빼곡이 많은 전깃줄을 지고 있는 거리가 살짝 무서웠다. 특히 베트남은 스콜이 자주 내렸는데 비바람이 불 땐 감전 사고라도 날까봐 조마조마.
이것이 공정여행의 참맛! 베트남의 농촌마을 호아빈으로
셋째 날 우리가 간 곳은 하노이 서쪽 70km 떨어진 므엉족이 사는 호아빈 마을이다. 이곳에서 '블룸 마이크로벤처스'에서 소액대출을 받아 농사를 짓고 있는 가난한 '너' 할머니의 집을 방문하게 되었다. 우리의 여행 경비 중 공정여행기금이 이 할머니의 대출금으로 쓰여진다는 말을 듣고, 이게 공정여행이구나 하는 걸 새삼 실감했다. 너할머니는 딸과 장애가 있는 아들이 있으며 주로 카사바를 생산한다. 딸은 결혼하여 이웃마을에 살고 있으며 장애가 있는 아들이 있어 산속에 집을 짓고, 카사바 등을 기르며 살고 있다. 우리가 온다는 연락을 미리 받았는지 일하러 갈 시간인데도 가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다. 작은 잔에 차를 내주시며 자꾸 먹으라고 권하는 손목이 앙상했다. 막상 할머니를 만나고 사는 모습을 보니, 우리의 여행이 이분한테 드리는 도움이 너무나 미약한 것 같아 죄송한 마음이 들어 뒤돌아 나오는 발걸음이 마냥 무거웠다.
'블룸 마이크로벤처스'는 개발도상국의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마이크로크레딧(소액대출)과 공정여행을 결합한 영국의 비영리 사회적기업이다. 공정여행서비스를 이용하는 여행객들은 개발도상국의 농촌 지역을 보다 가까이에서 체험할 수 있고, 아울러 여행객이 낸 여행비는 고스란히 지역의 빈농들을 위한 소액대출금으로 사용되어,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는 역할을 한다. 공정여행의 수익으로 가난한 여성들에게 돈을 빌려주고, 여성을 교육시키는데 사용된다. 하지만 남성에게는 돈을 빌려주지 않는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남성은 돈이 생기는대로 술값으로 쓴다는 이유라니 이해가 팍팍 되는 대목이다.
다음으로 간 곳은 이곳에서 10분정도 떨어진 므엉족이 사는 마을이었다. 므엉족은 베트남 전체민족 중 약7%를 차지하는 소수민족이다. 공정여행객을 받기 위해 새로 지은 전통식 건물에서 밥도 먹고 주민들과 어울렸다. 점심은 이장님댁에서 준비한 베트남 정통 요리로 먹었고, 경운기로 마을 탐방을 하였다. 가끔씩 버팔로 무리가 길을 가로막았고, 더위로 양산을 쓸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이 한 쪽에서 우리가 어릴 때 하던 고무줄 놀이를 하고 있었다.
주민들이 우리를 위하여 전통의상을 입고, 민속춤(대나무를 이용한 춤)을 보여주었다. 더운지역인데 전통의상은 벨벳천으로 바느질 된 검정색 치마와 긴 소매옷으로 만들어져 있어 인상적이었다. 대나무를 이용한 춤은 박자가 중요한데, 우리도 춤출 수 있도록 배려해 주어서 함께 어우러져 한바탕 춤판이 벌어졌다. 정말 즐거운 시간이었고, 시간만 허락된다면 하룻밤 정도 이 마을에서 머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나절 새 정이 든 주민들과 헤어져 나오는 발걸음도 무거웠다. 신발에 잔뜩 묻은 흙도 한 무게 했다.
사회적기업 '토헤'(TOHE)와 '메콩 퀼트'(MEKONG QUILTS)
'토헤'는 장애아동이 그린 그림을 이용하여 지갑, 가방, 의류 등 다양한 생활 소품, 패션 악세서리를 판매하는 사회적 기업이다. 발생한 이익으로 다시 장애아동을 위한 각종 복지활동과 그림 수업을 위한 비용을 지원한다. 판매장은 크지는 않았지만, 아이들의 그림으로 만들어진 물품들이 매대에 참 예쁘고 깔끔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이 가게를 열게 된 계기는 디자인을 전공한 어떤 부부가 장애아동들이 그린 작품들을 우연히 보고 예술 작품으로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여 디자인화 했다고 한다. 장애아동들도 사회의 구성원이며 그 재능과 가치를 이런 멋있는 제품에 담아내어 일반 사람들의 곁에 친숙하게 다가가게 하려는 설립자의 의도가 참 훌륭하다. 이번 베트남 연수는 사회적 기업 방문이 유독 많았다. 다양한 사회적 기업의 모습을 보며 베트남 사회를 조금씩 알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사회적 기업 마지막 방문지는 하노이 구시가지 안에서 만난 '메콩퀼트'. 메콩강을 끼고 있는 농촌 베트남과 캄보디아의 농촌 여성들을 위한 지속가능한 일자리를 제공하는 비영리 지역 사회 개발 프로젝트를 운영하는 곳. 발생하는 이익의 1달러당 50센트는 다시 마을로 돌려 보내 일하는 여성들과 그 가족들의 삶의 질을 높이고, 지역경제에도 기여하는 비영리 시회적 기업이다. 예쁘고 다양한 퀼트 제품이 저렴했다.
40도 더위는 사진에 담을 수 없다. 마지막 날 닌빈에서의 하루
마지막 날, 날씨가 더우면 배타기가 힘들다는 이유로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오늘은 사회적 기업과 박물관 방문 등이 아닌 오로지 관광만 하는 하루. 닌빈은 하노이에서 남쪽으로 약 100km 거리에 있는 지역으로 '강의 하롱베이'로 이름이 나 있는 곳이다. 평탄한 대지 위에 우뚝 솟은 바위산과 유유히 흐르는 강이 어우러진 경치가 그만인 곳이라 하여 기대를 잔뜩 하고 출발했다. 약 3시간여를 달려 닌빈에 가까워지자 여기저기 시멘트 공장이 눈에 많이 띄었다. 관광 지역인데도 돌산을 깎아 곳곳에 들어선 공장들의 모습이 눈에 거슬렸다. '여기도 돈벌이를 위해선 개발이 우선이 되겠구나' 싶었다.
내리쬐는 햇살 아래 두 사람씩 나눠 나룻배를 탔다. 뱃사공은 나이 많은 아저씨도 있고, 할머니도 있고, 청년도 있었다. 할머니가 노젓는 배에 탄 두 이사는 어쩔 줄을 몰라했다. 할머니가 힘이 든 기색이 역력하여 가만히 앉아서 경치를 즐기기가 불편한 모양. 공감만세 김태형 팀장이 미리 일러준 '절대로 '노를 저어보겠다'고 일어서는 등의 부끄러운 한국인의 모습을 보여주지 말라'는 주의사항을 어길 수밖에 없었던 민경 이사님은 기어이 보무도 당당히 노를 저으며 도착하고야 말았다.
닌빈의 주민들은 뱃사공이 되어 받는 팁이 큰 수입원이라 한다. 닌빈 관광 입장료는 한푼도 주민들에게 돌아오지 않고 '욕심많은'정부가 다 가져가버린다. 줄줄이 대기하고 관광객을 기다리는 그들의 지친 표정이 이해가 되었다. 닌빈을 거쳐 10세기 고대국가 베트남의 흔적을 볼 수 있는 호아루 사원에서는 사실 너무 더워서 잠시도 걸음을 지체할 수가 없었다. 사진 속에 우리는 웃고 있지만...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점점 다가오는데, 달리는 고속도로에서 버스 타이어 펑크가 났다. 도로가 너무 뜨거워서 그렇다고 했다. 점점 불길한 기운이 엄습해오고.. 비행기를 타야할 시간은 점점 다가오는데 한 술 더 떠 하노이에 갑자기 태풍이 몰아쳤다. 약 1시간여만에 거리는 뽑힌 가로수와 부러진 나뭇가지들로 엉망진창. 불길함은 더욱 커졌다. 과연 우리가 한국으로 다시 갈 수 있을까?
그런 불길함은 이내 하노이 저녁 하늘의 구름과 함께 걷혀졌다. 구름 사이로 생긴 무지개를 보며 모두 아이마냥 탄성을 질러댔다. 출발부터 다이나믹했던 연수의 마지막 날이었다.
신짜오 비엣남!(안녕 베트남!)
쉼이 있고, 좋은 사람이 있고, 즐거움이 그득했던, 거기다 다이나믹한 짜릿함도 있었던 베트남연수. 공정여행이니까 가능한 시간이지 않았을까 싶다. 이제껏 이사들이 고작 하룻밤 정도는 같이 있어봤지만(그마저도 다음날 아침이면 부랴부랴 집걱정 때문에 헤어지는) 이렇게 오랜 시간을 같이 먹고, 자고, 지내기는 처음이었다. 여행은 같이 간 사람이 누군가에 따라 의미가 다르다더니, 정말 구르는 돌멩이 하나, 부릉거리는 오토바이 소리에도 깔깔거리고 이야깃거리가 생기는 여행이었다. 거기다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만남도 잊혀지지 않을 소중한 기억이다.
몸은 힘들었지만, 다시 돌아갈 일상이 떡 버티고 기다리고 있었지만, 베트남에서의 4일이 앞으로의 생협 활동에 큰 힘이 될 거라는 걸 우리는 안다. 오늘도 밀린 보고서에, 열린 식탁 준비에, 모임 진행에, 쫓기듯 활동하는 iCOOP 활동가들에게 이런 연수의 기회가 많이 있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