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_월간토마토 기자 이수연/ 사진_공감만세
부수고 짓고 고치고 부대끼던 북촌을 여행하다
창덕궁과 경복궁 사이에 있는 마을, 숨을 헐떡이며 고개를 올라가다가도 멀리보이는 인왕산 풍경에 잠시 넋을 놓는 마을, 북촌을 여행했다.
5월 16일 토요일 공감만세와 함께 북촌 여행을 떠났다. 북촌 주민으로 살며 북촌의 이야기를 한 권의 책으로 엮은 『북촌탐닉』의 저자 옥선희 작가가 들려주는 여행이었다. 그곳에 사는 사람에게 ‘북촌’을 듣고, 들여다보았다.
실핏줄 같은 골목이 가닥가닥 이어져 있다. 한옥과 콘크리트 바닥이 조화를 이룬다. 북적이는 사람 역시 풍경의 일부가 된다. 다닥다닥 붙은 한옥을 보러 사람이 온다. 어느새 ‘관광지’가 된 북촌은 모든 것이 관광객 위주로 변화했다. 그래도 아직 ‘주민’으로 남은 사람이 있다. “15년 동안 북촌 주민으로 살았습니다. 가지처럼 뻗은 골목을 들여다보면, 뭘 보존해야 하는지 알 수 있을 거예요. 새로운 것이라면 넘쳐나잖아요. 가까운 명동도 있고, 서울엔 온통 새것이에요. 보존한다고 쓸데없는 데 투자하는 것보다는 긴 안목으로 어떤 걸 보존해야 하는지 생각해야 해요.”
옥선희 작가의 이야기를 들으며 걷는 북촌 여행에 참가한 사람은 모두 열두 명이다. 용인에서 온 네 모녀와 KDB산업은행 종로지점 외국환파트 네 명의 팀원이 함께했다. 맛집을 찾으러 왔던 곳, 나들이로 찾기도 했던 북촌은 이야기와 함께 보니 생각 거리를 던지는 곳이다. “점점 상업화되는 북촌은 주민이 살 만한 공간이 조금씩 사라져요. 매일 대형 관광버스가 들어오고, 프렌차이즈 커피숍과 호텔이 생겨요. 주민에게 필요한 공간은 아니죠. 세탁소, 미용실, 목욕탕같이 여느 마을에나 있을 법한 상점은 비싼 자릿세 때문에 견디지 못하고 떠납니다. 오늘 오신 여러분께는 북촌의 역사와 골목에 깃든 이야기와 함께 주민의 입장을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안국역 3번 출구에서 나와 현대 빌딩을 오른쪽에 끼고 중앙고등학교까지 향하면서 잠깐씩 멈추었다. 그곳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옥선희 작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계동길’이라고 불리는 골목길 초입에는 최소아과병원, 중앙탕, 대구참기름집, 서울종합수리센터 등 눈길을 끄는 건물이 많다. 40년이 넘은 중앙탕은 안타깝게도 문을 닫았다. 100년 전통의 중앙고등학교 야구부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가 목욕을 하던 곳이었다는 그곳의 추억도 함께 사라지고 있었다. 북촌과 어울리는, 그곳의 추억을 기억할 수 있는 공간으로 변했으면 하는 게 옥선희 작가의 바람이다.
최소아과병원은 여든이 넘은 할아버지 의사 선생님이 지금도 진료를 한다. 빌딩 숲에 있었다면 생뚱맞았을 외관은 북촌과 잘 어울리는 풍경이 되었다. 대구참기름집 역시 주민들이 맛을 보장하는 기름집이었다. 옥선희 작가가 소개한 공간은 모두 그곳에 사는 사람을 위한 시설이었다. 북촌은 어느새 관광객이나 손님을 위한 상업지구가 되었다. 사는 데 필요한 물건을 판매하는 곳들은 훌쩍 뛴 자릿세를 감당하기 어려워 문을 닫았다. 서울시는 2001년부터 844억 원의 예산으로 북촌 107만 6,302㎡에서 한옥 보존 사업을 벌였다. 한옥 300채의 수선을 지원했고, 허물 위기에 처한 30여 채를 매입해 공방, 게스트하우스 등으로 활용했다. 2018년까지 3천7백억 원을 들여 사대문 안팎의 한옥 4천5백 채를 보존한다고 발표했다. 옥선희 작가는 한옥의 가치를 재인식하고 보존하고자 노력하는 정책은 바람직하나 정책 이후의 현상에 대해서 안타까움을 표했다. “주목받고, 가치가 높아지니까 돈 많은 외지 사람의 주말 별장이 되었어요. 그렇게 되면 공동화 현상이 일어나서 껍데기만 남는 꼴이 됩니다. 관광객이 빠져나간 밤이면 을씨년스러운 풍경만 남아요.”
조선시대 정치, 문화, 행정의 중심지였던 북촌은 시간이 흐르며 차츰 변화했다. 옛 도성도를 살피면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 남북 방향으로 크게 네 개의 물길이 있었다고 한다. 물길과 골짜기를 따라 북촌이 형성되었으나 인구가 늘고 도시가 개발되면서 물길이 메워졌으며 마을의 경계도 차츰 흐릿해졌다. 복개된 길을 걸을 때마다 옥선희 작가는 지금 걷는 이 길이 ‘복개’된 길이라며, 한 번씩 짚어주었다. 휘문고등학교, 경기고등학교 등 명문 학교도 북촌에 모여 있었지만, 지금은 모두 강남으로 옮겼다. 아직도 북촌에 자리를 지키는 학교는 중앙고등학교뿐이었다. 3·1 운동 책원비가 세워진 중앙고등학교는 1919년 독립운동에 필요한 독립선언문 작성 등 3·1 운동 계획을 세우던 곳이다. 굵직한 역사의 흐름이 북촌 곳곳에 남아 있었다.
“1908년 개교한 중앙고등학교가 100주년 기념식을 할 때 정말 재미있었어요. 졸업한 학생이 학교를 다 찾아오는데 학교 밖 계동길 골목까지 죽 늘어서 서 있었거든요. 그날은 동네도 함께 축제 분위기였어요. 오래된 학교에 다닌다는 건, 이런 풍경을 만들 수 있다는 걸 새삼 느꼈죠.”
25년 동안 북촌에 살았다는 북촌 주민 정덕미 씨가 운영하는 식당 ‘밀과 보리’에서 점심을 먹었다. 주민이기 때문에 믿음을 줘야 한다는 사명감은 정덕미 사장이 허투루 음식을 만들지 못하는 이유다. 든든히 배를 채우고, 별궁길로 향했다. 지금은 떠난 경기고등학교는 서울교육박물관과 정독도서관으로 활용한다. 넓은 뜰이 있어 나들이객도 많이 찾는다. 돗자리를 펴고 가족들과 따스한 햇볕을 즐기는 사람이 가득하다. 도서관 밖은 문화행사를 개최하고, 시민이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한다. 뜰이 넓은 도서관은 도서관에 거부감을 느끼는 아이들과도 함께 찾기 좋은 장소였다.
“겸재 정선 선생님이 인왕제색도를 그리기 위해 인왕산을 바라봤던 자리가 이곳입니다. 1751년 그려진 이 그림은 직접 경치를 보고 그린 실경산수화지만, 실제 모습과는 많이 다르죠. 당시에는 실경산수화라고 할지라도 작가의 감정이 담기지 않으면 가치가 없는 것으로 여겼다고 해요.” 정독도서관에서 나와 언덕을 오르면서 멀리 보이는 인왕산을 바라볼 수 있었다. 다닥다닥 붙은 건물 너머로 봉긋하게 솟아 있었다. 인왕산 꼭대기에서 바라보는 서울의 풍경도 궁금해졌다. 답답하고 복잡하지만은 않을 것 같았다. 빌딩 숲 서울과는 다른 이곳에서 서울을 찬찬히 읽는다. 과거와 현재, 다가올 미래가 궁금해지는 북촌이다.
“인간의 역사는 기록하지 않으면 소멸해요. 사는 동안 기록하고 자기 자신을 남겨야 합니다. 스스로 되돌아보고 경험하지 않으면 복기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도 자기만의 인생 노트를 만들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북촌동양박물관 권영두 관장을 만나는 것으로 여행을 마무리했다. 맛집을 찾으러 왔던 곳, 한옥만 구경하고 떠났던 북촌은 이제 추억이 묻은 ‘장소’로 바뀌었다. 팀을 이끌고 여행에 참가했던 산업은행 종로지점 외국환 파트 김현경 파트장은 “삼청동, 북촌에 많이 왔지만 이렇게 여행하는 건 상상도 못했어요. 오늘 여행을 통해서 다른 어떤 동네라도 진지하게 바라보고, 여행할 수 있을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서울의 관광지이면서 그곳의 모습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이 남아 있는 곳, 북촌을 여행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