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_월간 토마토 기자 이화자 / 사진_이화자
10월 19일부터 11월 1일은 한국관광공사가 주관하는 가을 관광주간 기간이다. 일 년에 두 번 봄, 가을에 있는 관광주간은 여름철에 집중된 휴가 분산과 관광 활성화를 위한 관광 장려 제도이다. 여러 프로그램 중 하나로 한국관광공사는 지역별로 대표 프로그램을 정했다. 대전의 대표 프로그램으로는 (주)공감만세가 주관하는 ‘대전 원도심 미식여행’(이하 미식여행)이 선정됐다. 10월 17일부터 11월 28일까지 매주 토요일마다 진행되는 미식여행의 시작을 월간토마토가 참여했다. 10월 17일 오전 11시, 첫발을 내딛는 이번 여행에 40여 명이 모였다.
두부 두루치기 팀과 칼국수 팀 미식여행의 첫 번째 일정은 옛 충남도청에 자리한 시민대학에서 시작됐다. 옛 충남도청은 등록문화재 18호로 도청 소재지를 공주에서 대전으로 옮기면서 신축했다. 우리 근·현대를 겪어 온 건축물로서의 가치뿐만 아니라 근현대전시관, 시민대학, 도시재생지원 등 보존을 넘어 새롭게 활용하는 문화재로서도 의미가 있는 곳이다. 미식여행은 이름에 걸맞게 시민대학에서 진행하는 요리강좌 체험으로 시작했다. 시민대학 장암관에서 진행된 ‘브런치 만들기’는 원활한 진행을 위해 참가자를 두부 두루치기 팀과 칼국수 팀으로 나눴다. 강의는 유미희 교수가 두부 두루치기 팀을, 장윤숙 교수가 칼국수 팀을 맡았다. 요리를 시작하기 전 도구사용법과 요리 시 기본 에티켓, 조리법 등에 관한 수업을 먼저 진행했다. 곧이어 참가자들이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샌드위치와 샐러드 만들었다. 어려운 조리법은 아니었지만 음식이 완성되자 뿌듯함에 맛이 두 배였다.
밖으로 나오니 따스한 가을 햇볕이 발걸음을 재촉했다. 대흥동 골목에 들어서기 전 공감만세 최정화 실장은 대흥동에 관해 간단히 설명했다. “대전은 일본강점기 때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그 당시 이곳엔 일본인이 많이 살아 관공서나 도청이 모여 있어 번화한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둔산과 유성 등에 주요 상권이 옮겨가고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졌습니다. 집값이 내려가자 이곳엔 가난한 예술가들이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화가, 도예가, 연극배우, 인디밴드 등 문화예술 종사자들이 모여든 것이죠. 그래서 대흥동 곳곳에는 그들의 정신이 묻어난 작품들이 많습니다. 오늘 대흥동의 숨겨진 아름다움을 직접 경험해 보시길 바랍니다.” 항상 걷던 길이었지만 시선이 바뀌자 대흥동 골목은 새로운 길로 다가왔다. 항상 식당 찾기에만 바빴던 골목은 문화예술의 거리가 되고, 그저 예쁘다고만 생각했던 건물은 생각보다 많은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그림을 이해하자 대흥동이 보였다 길을 걷다 최정화 실장이 산호 다방 앞에 섰다. 산호 다방은 50여 년 동안 대흥동을 지킨 터줏대감이다. 다방 앞에 서자 간판보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다. ‘티셔츠’ 벽화이다. 이 벽화는 ‘프로젝트 대전 2012’ 중 하나로 생겨났다. 처음 벽화의 크기보다는 그곳에 벽화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단 사실 때문에 놀라웠다. 항상 걷던 길이었음에도 커다란 벽화와 처음 마주 했다. 벽화에 20여 명의 눈이 모이자 최정화 실장이 설명을 시작했다.
“이 벽화는 알면 알수록 더 흥미로운 그림입니다. 눈치채셨는지 모르겠지만 벽화 속 티셔츠에는 색을 칠하지 않았습니다. 배경에 색을 입혀 티셔츠를 표현한 것이지요. 작가가 이렇게 표현한 이유가 있습니다. 작가의 의도에 따르자면 벽화 속 티셔츠는 원도심을 의미합니다. 즉, 원도심은 허물고 고쳐야 할 곳이 아니라 지켜야 하는 곳이란 걸 표현하기 위해서입니다.” 어?’가 ‘와!’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티셔츠가 그려진 벽화를 이해하자 그제야 진짜 대흥동이 보이기 시작했다. 대흥동은 둔산, 유성 보다 낙후된 공간이 아닌 문화예술 공간으로서 지켜야 할 것이 많은 공간이었다.
벽화의 의미를 생각하며 둘러보는 대흥동 골목은 길든 짧든 묵묵히 자신을 지킨 곳이었다. 독립출판서점이자 카페, 원도심 안내공간인 ‘도시여행자’ 카페가 그러했고, 3대가 닭을 튀겨오며 많은 사람에게 맛과 추억을 선물한 ‘서울 치킨’이 그러했다.
원도심의 食 어느 지역이나 그곳을 대표하는 음식이 있기 마련이다. 대전엔 대표적으로 칼국수와 두부 두루치기가 있다. 칼국수가 대전의 향토음식이 된 것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명실상부한 대전의 대표 음식이라는 것엔 이견이 없다. 하지만 대전에 있는 수많은 칼국수집 중에서도 맛과 전통이 있는 집은 흔치 않다. 이번 미식여행에서는 대흥동과 세월을 함께한 ‘진로집’과 ‘내집’을 방문했다. 칼국수 팀과 함께한 진로집은 전통만큼이나 오래된 골목 안에 있다. 두부 두루치기 전문점인 이곳은 3대째 운영하는 곳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40년 전으로 시간 여행을 온 듯 한 내부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당시엔 평범했을 나무로 지어진 건물은 지금 보는 이들에겐 향수와 색다른 느낌을 준다. 칼국수 팀은 진로집의 대표 메뉴인 두부 두루치기와 칼국수를 주문했다.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다 보니 메뉴가 나왔다.
원래 두루치기는 쇠고기나 돼지고기 등과 여러 가지 채소를 넣어 국물이 조금 있는 상태로 볶듯이 만든 음식이다. 하지만 대전 두루치기의 특징은 오로지 두부로만 만든다는 것이다. 이는 과거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못한 시절 고기를 대신해서 두부만 넣어 조리한 것에서 유래가 됐다. 매콤하게 입맛을 사로잡는 두부 두루치기는 밥이나 국수와 먹으면 입맛 돋우는 반찬이 되고, 술과 곁들이면 근사한 안주가 된다. 진로집의 현재 주인인 김동현 사장은 3대째 가업을 잇고 있다. 외할머니가 포장마차로 시작한 장사는 이제 다른 지역에서도 일부러 찾는 50년 전통의 맛집이 되었다.
든든히 배를 채우고 다시 대흥동 골목길로 나섰다. 오전 일정이 거리를 전체적으로 훑어 보는 것이었다면 오후에는 좀 더 가까이 다가가는 시간이었다. 그 시작은 대흥동 도자기 공방인 ‘도자기작업실과 가게 1/2’에서 시작했다. 이곳은 남미은 작가와 이지혜 작가의 공동 작업실이면서 전시, 판매, 체험까지 가능한 오픈 스튜디오다. 지하로 이어진 계단을 따라 내려가니 아기자기한 도자기들과 작품만큼이나 정다운 남미은 작가가 우리를 맞이했다. 참가자들은 이곳에서 짧은 자유시간을 가졌다. 도자기 작품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작업 시간은 얼마나 걸리는지, 만들기 체험엔 어떻게 참가할 수 있는지 등 궁금한 점을 묻고 답하는 사람들로 공방 안은 시끌벅적했다. 처음 미식여행을 신청한 계기는 가족 여행으로, 값싼 가격에, 원도심이 궁금해서 등 다양했지만, 여행이 진행되면서 자연스럽게 문화예술에 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그 후 골목 담벼락에 박석신 작가와 시민들이 함께 만든 ‘파랑새 벽’과 원래 모텔 주차장이었던 공간에 만든 ‘PARKing gallery' 방문이 이어졌다.
대흥동 문화예술을 체험하는 마지막 일정은 소극장에서의 연극 관람이었다. 정말 좋은 영화나 연극이 엔딩크레딧이 올라가고 무대에 불이 밝혀지면 묵직한 침묵이 찾아온다. ‘좋았다.’라고 말하고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기엔 아직 여운이 가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연극 ‘정글뉴스’ 또한 그랬다. 미식여행에선 프로그램 중 하나로 ‘정글뉴스’, ‘antigone is dead’, ‘6월 26일(부제:우리 아들)’, ‘오아시스 세탁소 습격사건’, ‘헤드락’ 공연 중 하나를 관람한다. 영화와는 달리 연극은 ‘본다’는 느낌보다는 ‘참여한다’라는 느낌이 강했다. 연기 하는 배우들과 같은 공간에서 함께 호흡하며 무대를 만들어 간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것이 여전히 청년들이 자신의 젊음을 무대에 바치고, 그보다 더 많은 사람이 소극장을 찾는 이유일 것이다. 미식여행 참가자들 또한 그들의 연기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참가자 한윤정 씨는 “우리는 흔히 지방에도 탁월한 연기자가 많다고 얘기하곤 하지만 직접 확인할 기회가 없었는데, 이번에 진짜로 느꼈습니다. 배우들이 앞으로도 계속 연기를 이어갈 수 있도록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라고 말했다. 미식여행의 마지막은 대전 1호 음식점인 사리원 면옥에서 진행했다. 60년 전통을 지닌 이곳은 냉면과 갈비탕이 주메뉴다.
마무리 일정으로 참가자에게 수료증을 전달했다. 아이도 어른도 모두 상장 받은 듯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참가자 박영은 씨는 “대전에서 살지만 마치 다른 나라 여행 온 듯 모든 게 새로웠습니다. 가까이, 자세히 보면서 대흥동의 진짜 가치를 알게 되어 좋았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기회가 더 자주 있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하며 수료증을 펼쳐 보였다. 하루 종일 함께 맛있는 음식, 의미 있는 경험을 한 후라 그런지 모두 아침보다 훨씬 가까워져 있었다. 미식여행이 준 또 다른 인연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