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_용인 현암고등학교 교사 박인범/ 사진_공감만세
1. 공정여행 그리고 대전 제가 ‘공정여행’이라는 개념을 처음 알게 된 계기는 2012년 경기도 성남에 있는 코이카 지구촌체험관을 방문했을 때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착한 여행’이라는 단어를 처음 접한 거였죠. 어린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체험 교육장이었지만 참 재미있고 가치로운 여행 방식이라 느끼며 내가 추구하는 여행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았습니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참고로 저는 고등학교 지리교사입니다) 여행은 한마디로 ‘삶의 과정’이어서 남들이 좋다고 하는 곳을 찾아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주체가 되는 나만의 코스를 만들어야 하는데 이것이 가능하려면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을 사랑하고 천천히 음미하는 습관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해 왔습니다. 즉 삶 속에서 여행의 소재를 찾고 이를 이어가는 코스를 만들면 ‘삶은 여행’이라는 공식 아닌 공식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한 겁니다. 그래서 삶의 흔적을 찾아 떠나는 여행, 스토리와 과정이 있는 여행, 이것이 어떤 이에게는 지우고 싶은 과정이라 할지라도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느낌을 주는 무언가가 있다면 너무나 의미있는 삶의 프로그램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고 이후 마을 탐방 동아리 활동을 꾸준히 하던 차에 2015년 공감만세의 대전 원도심 공정여행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여름에도 가족 여행을 설계하며 대전시티 트래킹이 있다는 정보를 접하고 유성온천의 휴양과 도심의 향토 자원 답사를 접목하는 나만의 코스(?)를 만들어 대전과 함께 하는 여행이 시작되었습니다.
2. 대전의 숨결탐방코스(7월 28일)
천연기념물센터 앞에서 여행을 희망하는 분들이 집결하여 본격적인 여행이 시작되었습니다. 얼마 전 강원도 양구의 생태탐방을 학생들과 갔었는데 생각보다도 빠른 속도로 많은 동식물들이 멸종 위기에 놓여있다는 말을 듣고 적지 않게 놀랐는데 엄청나게 많은 천연기념물들이 전시되어 있는 것을 보고 한편으로는 이 동식물들이 자연에 존재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한밭수목원의 아름다운 정원과 조경이 무더위를 잊게 만들기는 어려울 정도로 더운 날씨였지만 그나마도 다양한 식물들이 우리의 마음과 눈을 즐겁게 하는 것을 느끼며 사람이든 자연이든 함께 공존했을 때의 기쁨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이응노 미술관에서 이미 오래전에 돌아가신 재불 화가의 작품을 접하며 부인이자 예술적 동지인 박인경 여사의 내조와 당시 국내에서는 펼칠 수 없었던 예술적 혼을 이국땅에서 승화시켰으나 동백림 사건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른 사실, 그리고 수감 중에도 다양한 작품을 시도한 열정, 다시 고국에 돌아오기 어려웠던 사회적 배경 등이 안타깝게 느껴졌지만 예술 세계에 문외한인 제가 봐도 자신의 삶을 예술 세계에 도입한 흔적이 느껴졌습니다. 이분한테는 ‘삶은 예술’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일상과 연관된 작품이 많았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충청, 제주, 전라 지방의 기록물을 보존, 관리하는 국가기록원을 방문하였는데 80만 권이 넘는 기록물을 한 곳에 보존할 수 있는 시설과 옛 문헌을 복원하는 연구원의 설명이 개인적으로는 참 흥미로웠습니다. 근현대사의 지역 사진에 관심이 많아 대전의 과거 모습을 감상하며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도 먼 훗날에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변해있겠지만 변화 과정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자료를 충실히 남긴다면 훌륭한 문화 자원이 되리라 생각했습니다. 같이 여행한 부모님께서도 트래킹에 만족해하시며 제가 살고 있는 용인에서도 시티 트래킹 코스를 개발하면 에버랜드나 한국민속촌만을 찾는 획일적 여행 행태에서 탈피하는 시너지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봅니다.
3. 명사와 함께 하는 도보여행-언덕 넘어 믿음의 길(7월 30일)
처음에 여행 코스를 접했을 때 대전이 종교와 어떤 관련이 있을까 궁금했습니다. 내가 아는 대전은 일제강점기 교통의 발달로 성장한 도시인데 도심에 이제까지 모르는 무언가가 있으리라 호기심을 가지고 목동성당에 도착을 했는데요. 명사이신 ‘오렌지 나인’의 박종선 대표님은 대전의 향토에 대해 해박한 지식과 식견을 가지신 분이었고 대안적인 삶과 현실을 접목하여 여행 종일 즐겁게 설명해주셨습니다. 참여하신 분들이 대부분 나이가 드신 분들이었고 지역의 옛 모습에 대한 설명이 있을 때는 “그래~맞아.” 하시며 과거를 떠올리는 분위기가 이틀 전 여행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지만 그래도 편안함을 느낀 것은 나 자신도 과거를 떠올리는 나이가 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출발점이 목동성당이었고 대성고를 들르는 동안 대전의 유명한 교육기관은 대부분 교회 또는 성당과 관련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교육 기관들이 설립 이념을 계승하지 못하고 변질되는 사례를 접하며 근본을 망각하고 초심을 잃은 사람을 대하는 듯한 씁쓸함을 느꼈습니다. 과거 학창 시절 추억담을 재미있게 풀어가는 작가님 덕에 분위기는 다시 반전되었고 충남여고와 육교를 거쳐 앞으로도 쉽게 변화될 거 같지 않은 용두동 골목가를 지나 도착한 곳은 빈들교회였는데요. 이름에서 느껴지듯이 민중 교회로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의 쉼터이자 모임터로 빈들에 홀로 서 있는 모습을 보며 문득 나 자신을 반추해보게 되었습니다. 다양한 교육활동이 보장되는 사회적협동조합을 학교 내에 건립하기 위해 최근에 분주하게 뛰어다니는 나의 모습을 빈들교회와 비교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지만 현실적으로 힘들었던 과정이 오버랩되면서 그래도 같이 하는 사람이 있다면 빈들이 아닌 충만한 들이 아닐까 생각해보았습니다. 호수돈여고의 교명 유래를 재미있게 들으며 어느덧 점심시간이 되어 뽀뽀분식에 들렀는데 콩칼국수는 대전의 칼국수 문화와 콩국수가 결합되어 아주 일품이었고 더운 날씨에 든든한 에너지를 보충하는 음식으로 제격이었습니다. 건축미가 아름다운 성산교회를 지나 대전시 건축상을 받았다는 ‘예술가의 집’에서 대전의 경관을 조망하고 공동체 놀이를 끝으로 여행이 마무리되었지만 대표님과 은행동 안도르 카페에서 문화협동조합의 방향에 대해 고민하는 사장님과 같이 나눈 대화와 아이스커피는 여행의 덤이었습니다.
4. ‘삶은 여행’이란 깨달음 개인의 삶을 여행에 비유한다면 어떤 이들은 가당치 않은 소리라고 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여행은 항상 즐겁지도, 편안하지도 않은 일상의 축소판이라고 생각한다면, 내가 가는 모든 장소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으며 이것이 공정여행의 큰 가치가 아닐까 싶습니다. 여행은 또 다른 여행을 낳으며 과거의 기억이 그리워 다시 찾는 곳이라도 전혀 다른 스토리를 만들 수 있는 창조적인 작업이 아닐까요. 지역의 숨결이 그대로 느껴지는 시티 트래킹 코스가 많은 지역에 활성화되고 행복한 삶을 느끼는 샘물이 되기를 기원하며 끝으로 공감만세와 대전시의 건승을 기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