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기

수기 [월간 토마토 2010년 11월호 기획특집] 오사카 아시아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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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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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3차)선입견을 넘어 공존으로, 일본 여행학교

2023-08-12 ~ 2023-08-20
오사카 아시아 도서관
 
 
월간 토마토가 2010년 10월 24일부터 29일까지, 5박6일간의 일정으로 일본 기획취재를 다녀왔습니다. 교토와 오사카, 흔히 칸사이 지방이라 이야기하는 곳을 중심으로 구석구석을 살폈습니다. 도쿄아트센터처럼 이미 소개하고 알려진 곳은 물론이고 아시아도서관과 작은 마을에서 펼치는 의미 있는 문화행위까지, 온 힘을 다해 소개하겠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합니다. 이번호에 소개할 곳은 ‘아시아 도서관’입니다. <편집자 주>
 
 
오사카 아와지에 ‘아시아’를 모으다
미국과 유럽 중심으로 움직이는 이 세상에서 한 일본 청년은 고민에 빠졌다. 아시아는? 그럼 아시아는 어떻게 돌아가는 거지? 서점에 가도 헌책방에 가도 달팽이 요리책과 비틀즈 악보는 있어도 월남 쌈 요리책, 이미자 악보는 구할 수 없었다. 아시아에는 어떤 사람이 사는지, 어떤 음식을 먹는지, 어떤 말을 하는지 알고 싶었다. 1981년, <아시아 도서관>은 그렇게 시작한다.
 
아시아 도서관은 사무국장 사카구치 씨를 중심으로 몇몇 젊은이들이 모여 설립했다. ‘아시아를 공부하는 모임’ 회원이었던 사카구치 씨는 아시아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얻고 싶었지만, 도서관이나 서점에 자료가 충분치 않았다. ‘그렇다면, 직접 아시아와 관련한 도서관을 만들자.’라고 결심하고 10년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리고 그는 1981년, 차고에서 도서관을 시작했다.
 
“처음 시작할 땐 가장 작게 하는 것이 편해요. 돈이 필요한 곳에서 시작하면 쉽게 꿈을 실현할 수 없습니다. ‘자신 있습니다. 도와주세요!’라고 할 수 있을 때 도움도 받고 그러는 거죠.”
 
지금 아시아 도서관은 오사카시 아와지 동네 2층 작은 건물에 있다. 시민 자원봉사자가 도서관 운영에 도움을 주고 있다. 우리가 찾았을 때도 나이 지긋한 자원봉사자 3명이 모여서 도서 목록 정리 작업을 돕고 있었다. 상근직원은 단 두 명, 힘들지만 꿈이 있다는 사무국장 사카구치 씨와 한국 가수 신승훈을 좋아하는 스태프 후지타 씨뿐이다. 도서관은 회원 후원금으로만 운영하는데 이제는 웬만한 대학 도서관보다 자료가 많아 연구 자료를 찾으러 전국에서 사람들이 찾아오곤 한다. 사무국장 사카구치 씨는 우리가 찾아간 시간에도 직접 책꽂이를 만들며 도서관 만들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는 바쁜 와중에도 오랜 시간 아시아 도서관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아시아와 일본은 전쟁이라는 아픈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지금 일본은 아시아 신뢰 회복을 위해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습니다. 이래도 괜찮은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시아로부터 용서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 보고 우선, 책을 보며 공부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들자고 생각했죠. 역사를 제대로 알고 신뢰를 회복하려면 책을 보고 공부하는 것이 중요하니까요. 그 자체가 신뢰를 얻는 것이라고 보고요. 아시아 도서관은 모든 사람이 이용할 수 있는 공간, 공부할 수 있는 문화 공간입니다. 이런 장소를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렇게 노력해 아시아 이웃이 ‘일본에도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라고 인식하는 것만으로 만족합니다. 그것만으로도 다행이죠.”
 

 

 

책이 점령한 도서관과 창고
어마어마하다. 2층밖에 안 되는 작은 도서관이지만 바닥부터 천장까지 책으로 꽉 차있다. 소장한 서적 수가 굉장하다. 책이 ‘꽂혀’ 있기도 했지만 ‘쌓여’ 있기도 했다. 책뿐만 아니라 아시아 관련 비디오, CD, 카세트 등 모든 것이 이곳에 있다. 도서관 안은 책꽂이로 구역을 나눠 방을 만들어 놓았다. 중국, 인도, 일본, 동남아시아 등 나라별로 책을 분류해 공부할 수 있는 책상을 중심으로 책꽂이가 에워싸고 있다. 우리나라와 관련한 서적과 자료는 한국, 북한, 조선이라는 이름으로 분류했다. 단일 코드를 부여한 다른 아시아 국가와는 다른 형태다. 안타까운 지금 우리 현실을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
 
책꽂이 중간 중간 한복을 입은 인형 장식품도 눈에 띈다. 이런 책은 어디서 구했나 싶을 정도로 별의별 책이 다 있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 1990년대 인기가요 집이라든가, ‘우리 수령님 김일성’이라는 제목의 책, 언제 나온 지 모르는 국사 책도 있었다. 지금까지 모아 놓은 책만 30만 권이 넘다 보니 책을 놓을 공간이 부족해 따로 창고를 두었다. 아시아 도서관에서 도보 5분 거리에 있는 창고에는 책에 파묻힌 자원봉사자들이 나라별로 책을 분류, 정리하고 있었다. 이날 도서관 창고에서 만난 자원봉사자 중에는 일본 사회문제로 떠올랐던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도 있었다. 그들은 사회 적응을 위해 시가 마련한 프로그램에 참가, 이곳에서 활동 중이었다. 창고의 책은 지금 자원봉사자 수로 정리한다면 약간 과장해 족히 1년은 걸릴 듯한 양이었다. 이런 수많은 책은 대부분 기부를 받는데, 기부 받은 책으로 꿩 먹고 알 먹고,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교환하기도 한다.
 
“책은 그 나라에 직접 가서 사오기도 하고 기부받기도 합니다. 여기에 있는 책 전부가 우리가 모은 컬렉션이죠. 기부 받은 책 중에는 같은 책이 여러 권 있거든요. 그런 책을 정리해서 외국 도서관으로 보내요. 그리고 그 도서관에서 다른 책을 기부 받죠. 아시아 지역에서 유학하고 돌아오는 학생이나 그 나라 대학에서 근무하는 일본인 교수님 중에 책을 기부하시는 분이 많습니다.”
 
책을 정리하면서 같은 책은 교환하기도 하고 도서관 바로 옆에 붙어 있는 헌책방에서 판매도 한다.
 
아시아 도서관은 정부나 시로부터 어떤 도움도 받지 않았지만, 10명의 자원봉사자와 1,500명이 넘는 회원, 기부금, 그리고 책을 기부해주는 시민, 단체 등의 도움으로 30년을 이어왔다. 아시아 도서관 시작은 사카구치 씨였지만 지금은 시민의 힘이 아시아 도서관을 유지하는 원동력이다. 개인의 작은 시작이 큰 힘을 불러 모은 것이다.
 
“아시아 도서관은 아시아에 대한 문화이해가 목적인 곳이기도 합니다. 아시아 문화예술을 배우는 이벤트가 지금까지 500회 이상 열렸고, 아시아 각국 언어를 배우는 강의도 하죠.”
 
이야기하는 동안 끊임없이 차를 내오던 친절한 후지타 씨 얘기다.
 
어떤 대학에서도 가르치지 않는 언어를 아시아 도서관에서라면 배울 수 있다. 언어를 가르치는 선생님 대부분은 유학생이다. 몽골어, 베트남어, 인도네시아어, 라오스어, 산스크리트어 등 배울 수 있는 언어 수만 스무 가지가 넘는다. 강좌 수만 70개다.
 
 

 
100년을 이어갈 릴레이
<아시아 도서관>은 아시아를 배우고 공부하는 장소만이 아니다. 일본 사회에서 희미해져 가는 역사 흔적을 다음 세대에 전하기 위한 장소기도 했다. 사카구치 씨는 역사에 대해 ‘몰라요, 관계없어요.’라고 말하는 것이 지금 일본 사회라며 안타까워했다.
 
“역사를 공부하지 않는 것은 무서운 일이에요. 우리가 공부해야 하는 이유는 다음 세대를 위해서입니다. 전쟁을 겪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지금도 살고 계세요. 이 사람들 자손이 일본 사회에 있고 사회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이 역사로 이어져 있습니다. 사람과 사귀는 것은 역사를 안다는 것이죠. ‘나와는 관계없어.’라는 말은 무책임한 말이에요. 역사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사카구치 씨는 책이 천 년의 역사를 전할 수 있다고 보았고, 역사는 책이 있기에 전할 수 있다고 했다. 지금 할 수 있는 만큼 100% 노력해서 책을 늘리고 책을 모으고 정리할 것이라 했다. 그리고 아시아 도서관은 지금 새로운 도서관 건물 건설을 목표로 10억 엔 모금 활동을 벌이고 있다. 사카구치 씨는 ‘언젠가’ 이사하겠다고 말했지만 그렇다고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고 천천히 해 나갈 예정이라 덧붙였다.
 
“이 일은 100년을 이어갈 일입니다. 지금이 30년째인데 절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세대를 이어가는 일, 릴레이죠. 그리고 중요한 것은 훌륭한 공간이 아니라 도서관 자체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 공간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도서관을 만드는 것이니까요.”
 
 
속이 꽉 들어찬 아시아 도서관
아와지역에서 내려 철길 옆을 따라 걷다가 아시아 도서관 앞에 섰을 때 당혹스러웠다.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기본 정보를 접하며 머릿속에 그렸던 도서관 모습과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1층과 2층 서고를 오르내리며 든 첫인상은 ‘조금 큰 헌책방’이었다. 그러나 그곳에 담긴 의미와 진행하는 수많은 프로그램, 아시아 도서관에 힘을 모아주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으며 겉모습에 당혹스러워했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일본이 저지른 전쟁으로 고통 받은 아시아 이웃에 대한 미안함과 이를 사죄하고 용서받으려는 아시아 도서관 사람들 모습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 방법의 하나로 선택한 올바른 역사, 문화 공부에 대한 강한 의지에도 고개가 끄덕였다.
 
지난 30년 가까이 이곳에 모여 공부하고 이야기하던 사람들과 아시아 도서관을 유지하기 위한 사람들의 노력을 생각하면 이 도서관에는 어떤 숫자로도 가치를 매길 수 없는 ‘희망’이 존재했다. 아시아 도서관은 아시아와의 관계 회복과 아주 작더라도 일본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무모한 도전처럼 보일지라도 결국엔 이루고 말 것이라는 사람들이 있는 한 세상은 재미있다고 <아시아도서관>은 말하고 있었다.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 오랫동안 아시아를 모으고 있을 ‘그곳’에서 희망을 보았고, 꿈을 보았다. 도서관에서 나와 다시 철길 옆을 걸으며 대전에 아시아 도서관 브랜치를 하나 만들어도 좋겠다는 욕망이 솟구쳤다.
 
-월간 토마토 2010년 11월호 기획특집(3)_ 토마토, 바다 건너 문화를 만나다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