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_진인주/ 사진_공감만세
지난여름 필리핀으로 공정여행을 다녀온 지 어느새 3개월이 지났다.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필리핀의 키앙안 마을은 마음 한 켠에 소중히 남아있다. 시험과 과제와 팀플의 홍수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혼미할 때마다 떠오르는 필리핀은 흐뭇한 미소와 함께 여유와 평안을 준다.
여름방학을 맞아 무엇을 할지 고민하던 중 우연히 공정여행을 모집하는 글을 보고 지원하게 되었다. 사실 처음엔 공정여행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고, 어디든 새로운 곳으로 떠나보고 싶은 마음에 서둘러 결정을 내렸다. 홍보 안내 책자를 읽어보니, 좋은 취지인 것만은 분명한 것 같았다. 이때 어디든지 떠나고 싶었던 이유는 내게 휴식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내내 치열하게, 답답하게 공부를 하고 수능을 보고, 대학에 왔다. 원하던 대학은 아니었지만 나름 대학생활에 만족을 하며, 적응하려고 노력을 했다. 눈 깜짝할 새에 1학년이 끝났고, 영어를 공부한다고 학원을 다니는 것으로 1학년 겨울방학을 보냈다. 또 숨 가쁘게 2학년이 시작되었고, 더욱 어려워진 전공 공부와 피상적인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는 나를 더 힘들게 했다. 대학에 와서도 새로운 좋은 친구를 만날 거란 나의 기대는 쉽게 그렇지만 아프게 무너졌다. 내가 대학에 와서 느낀 인간관계란 필요에 의한, 필요를 위한 만남이었다. 그저 시시콜콜한 대중매체의 이야기로 시간을 보내고, 상대에 관해서는 별로 관심을 갖고 싶어 하지 않는다. 상대를 깊이 아는 것은 듣는 이에게 부담이고, 귀찮은 것이었다.
물론 이것으로 일반화 할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 맞는 말이다. 상처 받지 않기 위해 자신을 더 숨기고, 포장한다. 누군가에게 기대고, 함께 마음을 터놓고, 소통하고 싶지만 그럴 상대를 찾기란 쉽지 않다. 처음엔 나의 문제, 개인의 문제인 줄 알고, 자신을 자책하며 아파했다. 그러나 이내 이것은 개인의 문제보다 이미 깔려진 사회적 분위기임을 알게 되었다. 아무튼 이렇게 나의 몸과 마음은 피폐해져있었고, 진정한 힐링과 재충전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던 중 필리핀 공정여행은 나에게 큰 활력소로 의미 있었다. 게다가 난생 처음 가는 해외이었기에 더욱 기대되었다.
드디어 떠나는 날, 이른 새벽 공항버스를 타고 공항에 모여, 비행기를 탔다. 같이 가는 대학생들도 처음엔 어색했지만 다들 친해질 것 같은 좋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을 날아 필리핀이라는 땅에 도착했다. 공항에 나와 필리핀 공기를 크게 들이쉬었다. 생각보다 끈적하지 않고, 덥지도 않았다. 필리핀의 마닐라를 둘러보고, 9시간 이상 걸렸던 공포의 야간버스를 타고, 드디어 목적지인 이푸가오의 키앙안 마을에 도착했다. 버스를 타고 가는 내내 나왔던 야간버스의 에어컨 바람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잠을 자다 몇 번을 깨도 깜깜하고, 똑같은 창 밖 모습도 생생하고, 그 땐 춥고, 힘들었지만 지금은 재밌는 기억으로 남았다.
도착한 키앙안은 정말 아름다웠다. ‘필리핀 깊숙이 한 곳에 이렇게 아름다운 마을이 숨겨져 있었다니‘ 새삼 놀랐다. 따뜻하고 산뜻한 햇볕은 마을을 골고루 비춰주고 있었고, 집집마다 심긴 나무와 꽃들도 예뻤다. 당연히 대학생들은 같이 숙소를 배정 받는 줄 알았는데 한두 명씩 나뉘어져 홈스테이를 한다고 했다. 나는 두 살 언니와 함께 가게를 운영하시는 아주머니, 아저씨의 집에 가게 되었다. 주인아주머니와 아저씨는 아주 반갑게 우리를 맞아주셨다. 모든 게 낯설었지만 뭔가 설레고 기대되는 마음으로 필리핀에서의 여행을 시작했다.
흔히 해외여행은 그곳의 유명한 관광지를 보고, 돈을 소비하고 오는 것으로 정의된다. 그래서 대부분 다녀온 사람들은 ’재밌었다..‘,’내 집이 제일 편하다. ‘정도에 그치는 소감을 전한다. 하지만 이번에 내가 경험해 본 공정여행은 확실히 달랐다. 가이드가 한 명이었는데, 높은 지위에서 여행자들을 이끄는 인솔자가 아니었다. 가이드라는 용어도 어색할 만큼 그 분은 자신을 ’쏘야‘라고 소개하며, 편하게 다가와주셨다. 쏘야는 우리와 눈높이를 맞추고, 일정마다 우리보다 한 걸음 뒤에 섰고, 최대한 개입하려하지 않았다. 그저 큰 방향과 시간 약속들만 정해주었고, 오히려 질문을 더 우리에게 던졌다.
공정여행에 참가하는 우리들 스스로 먼저 보고, 생각하고, 깨달을 수 있는 쉼표를 많이 준 점이 고마웠다. 마을을 대표하는 시트모라는 단체의 현지인들과 만났다. 처음 보았지만 그들은 환한 미소로 경계심을 무너뜨렸다.
마을도 돌아보고, 직접 계단식 논에 들어가 진흙 묻고, 벼도 만지며 농사일도 해보았다. 빡빡한 일정으로 우리들을 지치게 하는 것 아닌, 즐겁게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만큼의 일정으로 구성된 것도 마음에 들었다. 이틀, 삼일, 보내며 점점 더 여유 있게, 많이, 넓게 키앙 안에 대해 느끼고 알아갔다. 내가 사는 곳은 딱딱하고 차가운 것들로 둘러싸여 있고, 나무와 풀이 있긴 하지만 얄팍한 흙에 덮였고 가느다란 나무 둘레는 초라해 보였다.
그에 반해 키앙안의 자연은 생동감이 넘치고, 저마다 마음껏 태양빛을 공급받으며, 자기를 뽐내고 있는 것 같았다. 자연스럽게 길거리에 다니는 닭이나 개 등 동물들마저도 행복해보였다. 하루는 한 시간 정도를 걸어서 깊은 숲 속에 있는 폭포에 갔었다. 가는 길에 양 옆으로 펼쳐진 계단식 논과 우람한 산과 뭉게구름은 내 카메라의 셔터를 가만 두지 않았다.
하지만 카메라 렌즈로는 그 느낌을 담을 수 없는 게 아쉬워서 카메라를 끄고, 1초라도 놓칠 새라 나의 눈동자 셔터를 바쁘게 움직였다. 거대하고, 안정적으로 보이는 자연은 바쁜 것을 미덕으로 생각하며, 끊임없이 나를 채찍질하고 숨 가쁘게 살아왔던 나에게 쉬었다가라고, 천천히 여유를 가지라고 가르침을 주었다. 그리고 잦은 두통과 불면증 때문에 평소에 미간을 좀 찡그리고 다니는 것이 고칠 점이었는데 한국으로 돌아온 뒤 찍은 사진들을 보고 ’나도 이렇게 미소 지을 수 있었구나.‘했다. 밝고, 스트레스 없이 건강한 마음을 가질 때 얼굴 표정부터 달라지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필리핀으로 출발하기 전에 영어 실력이 부족해서 의사소통이 안 될까봐 했던 나의 걱정은 가볍게 날아갔다. 언어는 그저 소통의 수단이고, 일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현지인들과 눈빛과 미소로 소통이 된다는 점이 참 신기했지만 실제로 경험했다. 우리의 여행이, 방문이 현지인들에게 최대한 피해나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심했다. 공정여행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가장 가까이에서 필리핀 현지인들의 삶 자체를 엿 볼 수 있었다. 현지인들은 거부감 없이 우리들을 친구로 맞아주었다. 겉으로 보기엔 생활수준이 낮고, 고생스러워 보여도 현지인들은 자신의 터전과 삶을 진심으로 즐기고 사랑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문명인들이 미개하다고 보는 그들의 전통을 지켜나가는 것을 행복해했다. 처음에 자문화주의 같은 옳지 않은 문화 인식 태도를 가졌던 내가 부끄러웠다.
한번은 시트모 스텝인 조지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화를 잘 내지 않으시는 것 같아요.” 그리고 그의 답. “화는 낼 필요가 없는 거예요. 대화로 풀면 되니까.” 낙천적으로 항상 웃고 있었던 조지의 얼굴이 지금도 아른거린다. 나는 왜 그렇게 작은 것에도 크게 요동하고, 괴로워하고, 짜증을 냈을까. 그럴수록 힘든 건 나뿐인데. 내 감정만 소모되어서 지칠 텐데. 성숙함이란 무거워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가볍게 비울 줄 아는 것이 아닐까. 꼭 잊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들의 웃음과 여유를!
한국으로 돌아올 시간이 되어 헤어질 때는 정말 눈물이 났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들과 소통하고 진심을 느꼈기에 헤어짐이 슬펐다. 늘 사람에 대해 경계하고, 조심했던 나였는데 달라진 나를 보고도 놀랐다. 글을 쓰는 내내 필리핀을 갔었던 때가 파노라마처럼 스쳐간다. 어떤 여행으로 이렇게 많은 것을 느끼고, 마음에 간직할 수 있을까. 우연한 계기로 갔지만 새삼 공정여행을 다녀온 것을 정말 잘했고, 갈 수 있도록 도와주신 분들께 감사하다. 많은 가르침과 현재 삶에 변화를 주었다. 이제는 잘 웃는 모습을 다닌다. 공정여행은 나에게 힘을 주는 원동력의 한 축이 되었다. 앞으로의 삶에도 잊지 않고 적용하며 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