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_김은아/ 사진_공감만세
지난 봄 부터 난 열심히 인터넷을 뒤졌다. 아들이 이제 초등학생이 되었기에 언젠가부터 꿈꿔왔던 다른 세상으로의 여행을 여름방학이 되면 시작 할 참이었다. 해외여행이라곤 신혼여행으로 다녀온 패키지여행이 전부였던 나, 새로운 것을 보고 놀라면서 느끼는 재미도 있었지만 한 편으로는 그야말로 내 자신이 패키지(package, 꾸러미, 소포)가 되어서 끌려 다니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그래서 다음부터 이런 여행은 하지 않으리라 마음먹고 있던 터였다. 드디어 인터넷 서핑을 하던 중 “나의 여행이 지역에 도움이 되는 여행”이란 문구에 마음이 갔다. 그리고 ‘공정여행’에 대해 열심히 읽어봤다. 이미 지역 생협을 통해 ‘공정무역’ 커피, 설탕 등을 구매해 오면서 공정무역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지만 ‘공정여행(fair travel)’에 관한 이야기는 처음 알게 되었다. 이런 여행을 우리 아들과 함께 한다면 참으로 의미 있을 거라는 기대를 안고 여행을 준비했다.
여름방학을 이용한 12박 13일의 ‘필리핀 루손섬 여행학교’를 초, 중생 어린친구들과 함께 가는 여행을 준비했다. 필리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니 먼저 필리핀에 대한 책을 몇 권 사 거나 도서관에서 빌려 읽고 아들에게는 만화로 쉽게 소개해 놓은 책과 ‘공감만세’에서 추천한 도서들을 함께 읽으면서 3개월 정도 준비를 했다. 무엇보다 떠듬거리는 나의 영어회화 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준비도 하면서 필리핀 사람들과의 소통을 조금이나마 원활하게 하기위한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드디어 내가 사는 곳에서 공정여행의 원칙 중 하나인 대중교통을 이용해 4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인천공항으로 갔다. 낯선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이젠 나도 나이가 들어서인지 아이들이 모두 사랑스럽고 귀엽게만 느껴진다. 트레킹도 해야 하고 자유롭게 이동해야하기에 모두 무거운 배낭을 메고 긴 여행을 떠날 준비를 하느라 약간은 긴장된 마음, 설렘, 낯섬... 이런 마음들이 교차하면서 과연 ‘불편하지만 즐거운 여행’을 잘 할 수 있을까 라는 의구심도 들었다. 또 한 편으로는 아이들 여행에 어른이 따라가서 괜히 그들에게 불편한 존재는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조금은 들었다.
아이들 20여명의 학생들, 엄마 2명 인솔 선생님 3분 이렇게 우리는 필리핀으로 떠나는 작은 비행기 안에 몸을 싣고 낯선 나라로 가고 있었다.
우리나라와는 역사적으로 식민지로 인한 같은 아픔을 갖고 있던 나라 그래서 인지 뭔가 모를 친근감이 있던 나라였는데 밤늦은 시간에 마닐라에 도착한 우리들은 날씨도 후텁지근하고 복잡하고 또 무거운 배낭과 작은 짐들을 챙기고 함께 움직이느라 정신이 없었던 기억 뿐이다. 필리피노가 운영하는 렌트카를 타고 공익단체에서 운영하는 숙소(아시안브릿지)로 가서 피곤을 풀었다.
2일차, 필리핀의 역사를 함께 기억하고 있는 [성 어거스틴 성당]과 [인트라무로스]를 방문하기 위해 그 전에 코디네이터 선생님으로부터 필리핀의 역사와 문화, 민족성 등 여러 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가졌다. 오랜 세월 스페인 식민지 하에 있었지만 그들의 종교와 문화를 자연스레 수용하여 받아들이면서 오늘날까지 잘 보존하고 그대로 지켜온 그들의 넓은 마음과 여유로움이 우리와는 사뭇 다른 민족성을 갖고 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인트라무로스]안에서 만난 호세리잘! 그는 학식과 지식을 모두 갖춘 사람이었으나 나라를 위해 자신이 가진 것을 조국을 위해 나누고 아낌없이 목숨까지 바친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필리핀 사람들이 모두 호세리잘의 피와 정신으로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듯했다.
이제 드디어 말로만 듣던 “냉동(?)버스”에 오를 시간이 다가왔다. 한국에서 부터 겨울용 점퍼, 미니담요, 수면양말, 목도리 등등 내 것과 아들 것까지 챙겨 넣으니 무게보다는 짐의 부피가 컸었다. 특히 추위에 약한 나는 아들보다 한 걱정을 하고 있었다. 9시간 넘게 계속된 심야버스는 필리핀 북부에 위치한 키앙안으로 가고 있었다. 그런데, 다행히도 온도 조절이 조금은 되는 버스였는지 견딜 만큼 추운 버스였다. 우리나라의 화장실은 화장해 놓은 것처럼 정말 깨끗하면서도 당연히 공짜로 이용하면서 살았는데 필리핀은 터미널이나 고속도로 휴게소의 화장실도 심지어 대소변에 따라 가격도 다르게 받고 있었다. 우리로서는 어이없는 일이나 이 나라의 삶이 이런 것을.... ‘우리나라 좋 은나라‘를 마음으로 외치면서 빨리 버스여행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아침 일찍 도착한 곳은 이푸가오주(Ifugao Province)에 속한 키앙안(Kiangan), 한 적한 시골의 읍내 같은 느낌, 그제 서야 필리핀 사람들의 얼굴과 그들의 미소가 마음 안에 들어왔다. 복잡하고 정신없게 느껴졌던 마닐라와는 너무나 다른, 마치 우리 고향 시골마을과 같은 편안함을 느끼게 해 주었다. 이곳에서 우리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지만 무너져 내린 계단식 논을 복원하기 위해 시트모(SITMO, 계단식논을 지키는 젊은이들) 친구들과 함께 일할 것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우리나라도 70년대부터 농촌을 떠나 점점 대도시로 이동해 갔던 것처럼 필리핀도 농촌에서 머물면서 농사를 지를 젊은이들이 대도시로 떠나고 있는 시점에 계단식 논을 지켜가면서 에코투어를 진행하면서 고향을 지키며 살아가는 멋진 청년들이 있었다.
우리는 안락하고 편안한 잠자리보다는 자신들이 쓰던 방을 기꺼이 내 주고 그들의 손으로 정성껏 마련해 준 음식을 먹으면서 2박 3일 동안 처음으로 홈스테이를 했다. 낮에 밖에서 일하고 돌아오면 양동이 가득 물을 따뜻하게 데워서 화장실 안에 넣어 주고 밖에 널어둔 빨래도 비가오면 걷어 들여주고, 내가 한국의 김치를 먹고 싶다 생각 없이 말했는데 김치 담는 방법을 설명해 주라하더니 마지막 날엔 식탁에 김치를 손수담가 내어 놓으셨다. 홈스테이를 통해 필리핀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 친절함(kindness)과 다정다감한(friendly) 마음에 감동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시어머니와 두 며느리들 그리고 손주들, 먼 육촌 조카까지 작지만 모두 한 집에서 오순도순 사는 모습도 정말 뭉클했다. 한국에서는 샤워할 때나 설거지 할 때도 부끄럽지만 물을 원없이 사용했는데 이 곳 사람들이 물을 소중하게 사용하는 것을 보고 많이 반성했다. 참으로 ‘조금 불편하지만 너무나 행복한 여행’을 즐기고 있었다. ‘이곳 사람들과 함께해서 마음 따뜻한 여행’을 우리는 하고 있었다. 우리는 ‘패키지’가 아니었다.
이 여행기를 쓰고 있는 지금도 함께했던 홈스테이 가족들과 Facebook을 통해 서로 연락을 주고 받으며 안부를 묻곤 한다. 필리핀에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는 좋은 친구들이 생겨서 너무 행복하다. 마치 내 친척이 필리핀에도 있는 것 같다. 여행이 여행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 이어지는 여행, 공정여행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이런 값진 친구가 생길 수 있었을까
시트모친구들과 함께 벼베기도 하고 무너져 내린 계단식논의 둑도 함께 복원하면서 짧은 시간(갑작스레 비가 자주 내려서) 이었지만 아주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자기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 사람들이 와서 자신들의 일을 돕고 있는 우리를 보고 그들은 어떤 마음이 들까? 라는 생각도 해봤다. 아마도 그들의 마음속엔 분명 그들의 땅을 잘 지키고 보존을 더 잘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으리라...“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여행”,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여행” 그래서 공정여행이 아름다운 것이리라.
나는 이 여행이후 누구에게나 공정여행을 꼭 다녀오기를 간절히 부탁(?)하곤 한다. 나만 잘 살고 나만 잘 돼서 성공하면 되는 세상이 아닌 함께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일에 내가 참여하고 만들어 갈 수 있음을 가슴 깊이 느끼게 될 것이다.
마지막 일정으로 세계 4대 빈민지역의 하나인 마닐라만 인근에 ‘바세코’지역을 방문하게 되었다. 그 곳에서 홈스테이를 할 예정이었으나 그 전날 태풍으로 인해 바세코지역 으로의 이동이 불가능하려 그 다음날 마을도 둘러보고 공부방도 찾아가 보았다. 신발이 질퍽하게 빠지고 쓰레기도 여기저기, 판자로 이어 붙여 살고 있는 집들 그리고 TV나 신문에서나 보아왔던 곳을 직접 와 보니 자꾸 얼굴이 찌푸려지는 것을 의식하면서 표정관리를 해야 했다. 인트라무로스와 같은 커다란 벽을 두고 빈부차이가 너무나 심한 필리핀, 너무 안타까웠다. 누구의 잘못인지, 정치를 잘못해서인지 알 수 없는 답답함과 막막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여기저기에서 조금씩 도움의 손길로 나름 열심히 자립해서 살아가고 있었는데 은박으로된 과자봉투를 재활용해 만든 그들의 수공예품들을 우리 공정여행자들이 구매를 함으로써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는 일도 했다. 그 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과 얼굴이 특별히 불행해 보이거나 슬퍼 보이기는 커녕 더 밝거나 그저 우리들의 모습과 다를 것이 없었다. 행복의 기준은 분명 빈과 부로 인한 것이 아닐 테니....
여행을 마친 후 나도 그들을 도울 방법을 생각해 보았다. 바세코 아이들과 사람들에게 ‘옷을 보내 주는 일’. 우리 주위에서 아이들의 옷은 작아져서 못 입는 옷들을 모아 보았다. 우리 아들옷, 별로 입지 않는 내 옷 그리고 몇 명의 친하게 지내고 있는 엄마들에게 전화를 해서 입지 않는 여름옷을 챙겨주라 부탁하고 옷을 모으러 다녔다. 깨끗하고 멀쩡한 옷들로 담아 커다란 박스 2개가 되었다. 하나하나 넣으면서 소중하게 입혀지기를 바라면서 채워 넣었다. 일단 ‘공감만세’로 붙이고 필리핀으로 가게 되는 편에 ‘바세코’에 전해 주십사 했다.
여행이 끝났어도 내가 만났던 이들이 기억되어서 그들과 함께 여행이 계속되어지는 느낌이 든다. 단순히 지나쳐 버리는 여행이 아니라 함께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는 여행이었기 때문이리라.
그저 나만 즐기고 우리만 좋으면 되는 여행이 아닌 함께 즐겁고 함께 행복해 지는 여행
그래서 난 ‘공정여행(fair travel)'이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