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_류건우/ 사진일부_공감만세
『여행을 계획하게 되다』 처음부터 『공정여행』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한 여행은 아니었다. 이번 여행을 계획하게 된 것은 일을 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어쩌면 내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은 다 거짓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제도권이 가져다주는 안락함에 젖어 정작 우리가 올라탄 곳이 무섭게 내달리기만 하는 호랑이의 등 위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은 채 살아가고 있다.
이 호랑이의 등에서 내려올 수 있는 용기, 그것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필요 이상으로 누리고 가지고자 하는 욕심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용기가 아닐까. 그 용기 있는 여행을 위한 나와의 약속 세 가지는 아래와 같았다. 첫째, 아무리 힘들어도 자동차나 동력의 도움을 받지 말자. 둘째, 모든 것을 돈으로 해결하지 말자. 셋째, 푸드 마일이 있는 음식 먹지말자. 오로지 그 지역의 로컬 푸드를 먹자.
『첫 날부터 폭우가 쏟아지다』 10박 11일이라는 짧지 않은 여정. 나는 사막 한 가운데에 위치한 'SAIKHAN(새이항)' 공항을 시작으로 황량한 고비사막을 거쳐 알타이 산맥의 동쪽 끝자락에 위치한 '욜린암' 계곡을 최종 목적지로 정해 도보로 왕복할 계획을 세웠다. 베이스캠프로 삼게 될 고비 사막의 에코 겔 캠프에 도착하기 전 이틀 동안은 무작정 걷기만 하였다. 걷다가 노곤하면 텐트를 치고 쉬었고, 다리에 힘이 나면 다시 걸었다. 물은 점점 바닥 나 가는데 문득 ‘이 방향이 맞을까? 아니면 어쩌지?’ 하는 생각에 하루에 몇 번을 좌절하고 다시 힘을 내기를 수십 번. 드디어 하늘이 나에게 첫 번째 시련을 안겨다 주었다. 서쪽 하늘에서 천둥번개를 동반한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하더니 점점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그것은 죽음의 공포 그 자체였다.
'제도권의 보호에서 벗어난 자유의 대가가 이런 것인가?' 이런 농담을 내뱉을 여유도 없었다. 무심하리만치 광활한 이 대지에서 위로 솟은 존재라고는 나뿐이었다. 평생 벼락 맞을 짓은 안하고 살았다지만 혹시나 모를 일이었기 때문에 정신없이 배낭을 메고 뛰고 걷고를 반복할 무렵 폭우가 서서히 약해지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드디어 저 멀리 누런 대지 위에 자리한 하얀 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살았다! 겔 캠프다. 나는 살았다!”
『마음을 느끼다』 고비사막의 입구에 자리한 '에코 캠프'. 가족이 모여 공동 운영하는 이 겔 캠프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고비사막의 자연을 훼손하지 않으려는 몽골 인들의 마음이 느껴지는 곳이다. 고비사막에서 살아가는 대부분의 유목민들이 그렇지만 이 곳 또한 태양열 에너지를 이용해 자체적으로 전기를 얻는다. 또한 100% 로컬 푸드만 제공하고 있다. 수입된 재료를 일체 쓰지 않는 것이 이곳 에코 캠프의 원칙이기도 하다.
그들이 정성을 다해 내놓는 음식들 앞에서 나는 종교적인 경건함 마저 느낄 수 있었다. 생각해보라. 이 황량한 사막에서 음식을 한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사치일까. 나는 더듬더듬 몽골 현지어로 “고맙다, 맛있다”를 몇 번이나 얘기했는지 모르겠다. 내가 고마움을 전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쌀 한 톨 남김없이 접시를 깨끗이 비우는 것이 전부였다.
『생명의 물을 얻다』 베이스캠프에서 체력을 회복한 후 다음 날 새벽 바로 최종 목적지인 '욜린암' 계곡을 향했다. 주인 아주머니께서 걱정을 많이 하시는 듯 했다. 아직 현지인들도 그 곳까지 걸어가는 사람은 없었다며 매우 걱정스런 표정으로 커다란 식빵을 봉지 채 챙겨주셨다. 이렇 듯 몽골의 정서는 한국의 인심 좋은 시골과 아주 닮아있다.
사람이 매우 드문 탓에 그들은 아직도 전통의 방식으로 이방인이나 여행자들에게 내놓을 수 있는 무엇이든 무리를 해서라도 베풀려고 한다. 이런 착하디 착한 몽골사람들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식빵 하나에 든든한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사람의 앞 날은 한 치도 알 수 없는 법. 기세 좋게 걸음을 뗐지만 '욜린암' 입구에서 길을 잃고 물도 바닥났을 때 우연히 만난 유목민 아이들 덕분에 여행을 계속 할 수가 있었다. 자신들도 마실 거리가 많이 부족할 텐데, 그 귀한 염소 젖을 한 병이나 가득 내어주는데도 전혀 망설임이 없었다.
혹시나 미리 준비해 간 필기구들과 수첩들을 선물로 줄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라 여긴다. 나는 그 아이들이 유목 일을 하며 생계를 꾸리는 것도 좋지만 그것보다 작은 손에 펜을 쥐고 수첩에는 무언가를 적어가며 그들만의 꿈을 갖게 되는 데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컸다. 내가 무언가를 더 줄 수 있다면, 그리고 그 무엇이 수첩이나 펜이 아니라 더 큰 의미가 있는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친구를 얻다』 고마운 유목민 가족들의 도움으로 다시 힘을 낼 수 있었던 나는 천신만고 끝에 '욜린암' 계곡을 찾을 수 있었다. 한 여름에도 얼음이 언다는 신비로운 욜린암 계곡에서 며칠 간의 여독을 시원하게 풀어낼 수가 있었다. 목적지에 당도했다는 안도감과 함께 그제서야 밤하늘이 내 마음 속에 들어올 수 있었다. 티 없이 맑은 밤하늘에는 오로지 달과 별의 무리들만이 허락된 것 같았다.
그 때, 낮에 만났던 유목민 가족들이 내가 텐트를 친 곳을 지나가던 모양이다. 아니 어쩌면 지나간다는 핑계로 내가 걱정되어 그 먼 길을 걸어왔을 것이라는 짐작이 들었다. 이런 친구들을 평생 곁에 둘 수만 있다면! 나는 비록 그들과 말은 잘 통하지는 않았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카메라 속 정경들을 보여주며 연신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웠다. 그들이 가져온 ‘아이락’(마유주, 말의 젖을 숙성시켜 만든 알콜성 음료)에 내가 한국에서 가져 온 울릉도 산 오징어를 안주 삼으며 새벽이 되도록 웃고 어울렸다.
혹시나 몽골을 여행할 기회가 있을 사람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말이 하나 있다. 몽골의 사람들은 한번 정을 주면 평생을 잊지 못한다고 한다. 여행객들이 농담 삼아서 지금 찍은 사진을 내년에 주겠다고 말하려 했다면 절대로 그러지 말라. 순박한 그들은 절대로 그 사람이 자신에게 거짓말을 할 리가 없다며 거의 몇 년이고 꼬박 그 사진이 오기만을 기다린다.
이것은 어떤 책에서 봤던 내용이지만 그들과 정말 단 하루라도 같이 지내본다면 결코 그 말이 과장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대중 속의 고독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 곳에서는 그 반대가 아닐까. 비록 사람 구경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려운 곳이지만 그 곳에서는 만나게 되는 모든 이들이 바로 나의 은인이고 친구들이다.
『자유를 얻다』 이번 여행은 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살아오면서 없으면 큰 일 날 것 같았던 것들. 반드시 소유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여겼던 것들. 그것들이 사실은 그다지 보잘 것 없는 것이라는 것을. 사람이 사람다울 수 있는 것은 '그 보잘 것 없음 앞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가.'에 달려있는 것은 아닐까?
이 자유는 벗어남의 자유인 동시에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조금 더 가질 수 있는 자유이기도 하다. 그것이 바로 바른 삶이자, 공정한 여행이 추구해야 할 가치가 아닐까 한다. 내년 여름 다시 찾기로 약속한 그들에게 이제는 한국에서 온 여행자가 아닌 더 가까워진 친구로 다가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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