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_김석영/ 사진_공감만세
담을 따라 걷다보면, 마을 한가운데에 자리한 커다란 나무를 지나, 작은 둔덕이 보이기 시작해요. 아이들은 교실 안에 들어가있지 않고 그 언덕을 누비다가 저를 발견하고는 후다닥 달려와서 둘러쌉니다. 그리곤 나마스까르! 하면서 낭랑한 아침 인사를 해요. 전 처음엔 한명 한명 나마스떼! 하면서 인사를 받아주다가 벌떼처럼 모여드는 꼬맹이들 사이에서 어쩔 줄을 몰라하죠. 어설픈 네팔어로 교실로 돌아가라고 하고나서야 거창한 아침 인사가 끝이 나는 거에요.
아이들이 머무는 교실은 4개, 선생님들 교무실은 1개. 시멘트로 지어진 2층짜리 간촐한 학교는 사방이 탁 트인 능선의 끝자락에 있어요. 저 멀리 만년설로 뒤덮힌 험준한 산봉우리를 배경으로 뛰노는 아이들의 모습은 마치 한 폭의 그림만 같아요. 물론 아이들의 행태는 아름다운 그림과 거리가 멀어요. 조그만 것들이 겁도 없이 발랑까졌습니다. 첫 수업으로 손씻기 교육을 했는데, 제가 하는 말엔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더라구요. 저를 보며 지네들끼리 네팔말로 키득거리느라, 카메라를 쳐다보느라, 혹은 제가 가져온 비누를 갖고노느라 정신을 팔고 있다가 결국엔 자기들 마음대로 합니다. 나는 목 아파 죽겠는데 지들은 아주 신이 났습니다!
그만큼 제가 (제가 들고온 것들을 비롯하여) 신기한가봐요. 『Service for Peace』 네팔 지부에서 일하는 우피스의 말로는 이 곳 타루깔카의 아이들은 아랫 동네 다딩 BC의 아이들만큼 혜택을 누리지 못 하고 자란다고 해요. 집에는 TV가 없고, 전화기도 드물대요. 학교에선 아주 기초적인 것들만 가르쳐주어서 넓은 세상을 접할 기회도 없대요. 아마 아이들에게 타루깔카 바깥의 것들은 모두 생소할꺼에요.
그래서 우피스가 저의 자원 활동 장소로 이 학교를 택했을 때 아이들한테 무얼 가르쳐주어야하나 많이 고민이 됐어요. 활동을 할 수 있는 시간은 제한되어 있는데 아이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많으니깐 말이에요. 그러다 문득 인도에서의 경험이 떠올랐습니다. 인도에서 6주 동안 여행하면서 많은 곳을 돌아다니고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많은 것들을 배웠지만, 그 중에서 뼈저리게 느꼈던 것은 위생 관념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점과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해야한다는 점이었어요.
많은 수의 인도 사람들과 네팔 사람들은 수저 대신 오른손을 사용해서 식사를 해요. 식사가 끝나면 물로 오른손을 대충 행구고 옷에 슥슥 닦아버리구요. 비누를 써서 꼼꼼히 씻는게 아니기 때문에 손에는 기름기와 음식 찌꺼기가 그대로 남아있어요. 그리고 왼손으로는 용변을 처리해요. 왼손도 잘 안 씻는 것은 매한가지랍니다. 결국 용변에 있는 여러 가지 병균들이 왼손으로 옮겨가고, 다시 오른손을 거쳐 고스란히 입으로 들어가는 셈인거죠.
또 다른 하나는 환경오염의 문제에요. 인도 사람들은 자연의 모든 것에 신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하며 자연을 숭배하지만 진작 자연을 지킬 줄 모르는 것 같아요. 여행을 처음 시작할 때 즈음이었죠. 기차를 타고 가다가 바나나도 까먹고, 과자도 한 봉지 사먹고, 짜이 아저씨한테 짜이도 두어잔 사먹었더니 침대칸 구석에 쓰레기가 가득 찼더랬습니다. 기차 안에 달리 쓰레기통도 없어서 어찌해야하나 고민하고 있었어요. 제일 아랫칸의 아저씨가 절 보더니 쓰레기를 건네 달래요. 그러더니 창문을 열고 아무런 주저없이 밖으로 휙 던져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버려진 쓰레기들이 모여 기찻길과 나란한 길을 새로 만들어요. 비단 기찻길뿐만이 아니라 어디를 가도 인도는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었어요. 스스로가 건강하고, 발을 디디고 살아가는 이 대지가 건강한 것보다 중요한 것이 있을까요.
생물학을 전공하는 한 명의 대학생과 고산 마을의 꼬마 친구들이 만나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지 생각해보았습니다. 미미해서 지금 당장은 눈에 띄지 않더라도, 하루가 지나고 한 주가 지나고 그렇게 몇 년의 시간이 지났을 때 아이들 삶의 일부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그런 일들이 있지 않을까하고 말이에요.
고민 끝에 4가지 프로그램을 준비해보았어요. 손씻기 교육, 양치질 교육, 햇빛을 이용하여 옷 말리기 교육, 그리고 쓰레기 줍기 교육이었어요. 먼저 간단한 그림을 보여주면서 아이들의 이해를 도왔습니다. 그리고 직접 손을 씻고 양치질하는 시범을 보였어요. 네 개의 교실을 돌며 비누칠과 양치질만 수십번을 했더랬죠. 다딩에서 사온 칫솔, 치약, 그리고 비누를 나누어주고 아이들도 저를 반복적으로 따라하게 하면서 몸에 익히도록 했어요. 손이 번뜩번뜩, 이가 반짝반짝! 마지막 날에는 아이들에게 옷가지를 한 가지씩 준비해오라고 시키고, 학교의 난간과 교실의 창문에 걸도록 했어요. 바람에 하늘거리는 색색깔의 천조각들을 가르키며 태양과 바람에 좋은 영혼들이 있어 악마들을 없애준다고 말해주었죠.
아맞다, 수업을 진행하다 새로운 아이디어도 떠올랐어요. 바로 어린이 비누 나눔 재단을 만드는 거에요. 비누를 이용해서 손을 씻으면 세균성 질병의 감염을 70% 정도 예방한다고 알려져 있어요. 용변을 볼 때 휴지 대신에 왼손을 쓰는 인도와 네팔에서는 비누가 더욱 필요할테죠. 네팔에서 비누 한 개의 가격은 100원 정도. 현지에서 빵이나 과자를 살 수 있는 돈이에요. 현지 물가를 고려해보았을 때 가계에 부담이 갈 정도의 가격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재단에서 나오는 수익금으로 동네 구멍가게에서 비누를 사서 (이왕이면 네팔産으로) 그 동네 아이들에게 충분히 나누어 줄 수 있을 거에요. 어릴 때부터 비누로 손을 씻는 습관을 들이면 커서도 잊지 않겠죠?
그리고 쓰레기를 직접 주워오기 수업을 했습니다. 학교 주변의 쓰레기를 자기 손으로 주워보고, 다음부터는 쓰레기를 아무 곳에나 안 버리도록 말이에요. 그냥 수거해오면 영 재미가 없으니 교실을 두 팀으로 나누고 더 많이 가져오는 팀에게는 상품을 주는 팀 대항전 방식으로 진행을 했어요. 이기는 팀에겐 색종이를 준다고 하니 꼬맹이들이 쏜살같이 달려가서 쓰레기를 주워오더라구요. 나중엔 쓰레기를 놓고서 서로 자기 것이라고 다투는 웃지 못 할 일도 생겼죠.
프로그램의 진행은 어떻게 됐냐구요? 스스로 이런 평가를 내리는게 부끄럽긴 하지만 썩 괜찮았어요. 아이들도 제가 준비해온 프로그램에 정말 즐거워했어요. 마치 크리스마스에 새로운 장난감은 선물 받은 것 같은 모습이었어요. 하지만 3일이라는 시간은 무언가 변화를 불러오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이야 아이들이 다 이해하는 것처럼 보여도 제가 타루깔카를 떠난 후 우리가 왜 손을 씻고 이를 닦고 옷을 햇볕에 말리고 쓰레기를 주워야했는지 모두 기억할까요. 자원 활동을 하는 취지는 좋지만, 그에는 지속성 그리고 전문성 또한 뒷받침이 되어야 하겠죠.
마지막 날, 수도인 카트만두로 이동하기 위해 수업을 일찍 마쳤어요. 무슨 영문인지 몰라 앗싸리하며 저를 따라나서는 아이들을 양팔에 끼고 언덕을 내려와 골목길을 따라가요. 이윽고 커다란 나무 뒤로 학교가 작아집니다. 일을 마무리 짓고 집으로 돌아가는 느낌이 아니라 가야할 때가 됐으니 할 수 없이 간다는 기분이 들어요. 하지만 빈손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새로운 과제를 알게 되었으니깐요. 다음에 제대로 활동할 수 있는, 세상에 변화를 불러올 기회가 또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