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도 어느덧 끝나갑니다. 새해를 맞이할 때면 다가오는 일 년을 어떻게 보낼지 생각해보며, 지난 일 년도 함께 돌아보게 됩니다. 어떤 장면이 가장 먼저 떠오르셨나요? 지금 머릿속에 떠오른 것이 아마 올해 최고의 순간이 아닐까 싶습니다. 공감만세가 떠올린 2019년 최고의 순간은 여행자와 함께 ‘연해주’와 ‘북.중 접경’ 땅을 밟았던 때입니다.
공감만세는 ‘동북아 평화’를 꿈꿉니다. ‘연해주’와 ‘북.중 접경’ 공정여행을 시작한 것은 그 꿈에 한 걸음 다가가는 의미 있는 순간이었습니다. 2020년에도 그 걸음을 계속 이어가려 합니다. 앞으로도 관심 있게 지켜봐 주시고, 응원 부탁드립니다^^
여행사를 하면서 일본에도 사무소를 두게 됐다. 봄이 오면, 벚나무 아래 돗자리 깔고 삼삼오오 모여 노는 일본 사람들을 심심찮게 봤다. 그 광경을 보다가 뭉클했던 적이 있다. 감수성이 풍부한 편도 아닌데, 어쩌다 보게 된 〈박치기〉라는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올라서였다.
재일조선인들이 멋들어지게 차려입고 벚꽃 나무 아래 놀러 나온 장면이었다. 그 짧은 장면에 나라 잃은 슬픔, 분단의 애환, 그 경계에서 살아가는 울분 등이 녹아 있었다. 그 안에서 서로에게 관심 있던 일본 청년과 조선 여성이 부른 노래가 〈임진강〉이다. 가락이 아름다우면서도 애달팠다. 검색해보니 팝페라 테너 임형주씨가 부른 〈임진강〉이 좋았다. 그 후 생각날 때마다 들었다.
우리는 ‘평화’와 ‘공생’을 주제로 여행을 한다. 교토의 도시샤(同志社)대에는 윤동주와 정지용의 시비가 있다. 비가 오는 날, 교정은 고요했고 한국 아이들과 함께 그곳으로 여행 중이었다. 우리가 시비 앞에 도착하니, 한 노인이 서 계셨다. 허밍 중이셨는데, 나중에야 〈임진강〉이란 걸 깨달았다. 한 편에는 한반도기가 꽂혀 있었는데, 아이들에게 설명을 해야 했다. 무언가 떠들고 나면, 아이들은 부산스러웠다. 제대로 설명 못 한 탓이었다.
종종 부끄러울 때가 있다. 정조문이라는 사람을 알았을 때도 그랬다. 그는 일본 땅에 있는 한반도의 미술품을 모아 1988년 ‘고려미술관’을 개관했다. 이때 쓴 ‘개관사’를 읽으며, 두고두고 부끄러웠다. “언젠가 조국에 돌아간다. 그렇게 결심하며 선물 하나를 하자고 그 집의 문을 연 것이 오늘의 시작입니다.” 정조문은 죽을 때까지 그토록 사무치게 그리워한 한반도에 오질 못했다고 한다.
개관사로 그의 삶이 어떠했는지 더듬어 본다. 지금의 삶에만 골몰하면 보이지 않는, 뒤편으로 치우려 했던 진실이 보인다. ‘개관사’는 언젠가부터 우리 집 벽에 붙어 있는데, 정조문의 표정이 퍽 유쾌하다. 그게 참, 다행이다.
- '[내 인생의 노래] 임형주의 <임진강> 가보고 싶은 땅, 만나고 싶은 사람들' 일부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