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진_여행사업팀장 노진호
지금으로부터 4년 전 즈음, 청소년 10명과 함께 배낭을 짊어지고, 필리핀으로 떠났다. 주 인솔자를 맡은 첫 번째 여행이었다. 아직도 기억이 선명하다. 여행 3일차 오전, 한 아이가 나를 찾아와서 말했다.
"선생님, 저 한국 갈래요."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등에는 식은땀이 흐르고, 뇌는 처음 맞닥뜨린 상황에 당황하여 정지되었다. 지난 이틀간, 아이의 모습을 회상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을까? 그러나 빠르게 포기했다. 정지된 뇌로는 해답을 구할 수 없었다. 그때부터 스무 고개가 시작되었다. 저 한 문장이 나올 때까지 어떤 과정이 있었는지 알아내야 했다. 아주 다행히 스무 고개에 성공했고(?), 우리는 끝까지 함께 여행을 했다. 그렇게 10명의 청소년과 무사히 여행을 마쳤고, 그때 제작한 여행 수기집은 아직도 내 책장 제일 아끼는 칸에 꽂혀 있다.
나는 '청소년 여행학교' 인솔자다.
'여행'과 '학교'는 어떻게 만나게 됐을까? 연암 박지원, 공자, 석가모니, 간디, 체 게 바라, 괴테, 마르코 폴로 등 역사상 위대한 인물로 평가받는 사람들은 위대한 여행자였다. 길 위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새로운 영감을 받았으며, 깊은 통찰을 얻었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여행을 하며 스스로를 알게 됐고, 삶의 방향을 정했다. 이렇게 보면 '여행'과 '학교'는 자연스럽게 만날 운명이었다.
'여행학교'라는 이름 아래 여러 해 청소년을 만났다. 여행 전에 만나 공정여행이 무엇인지 배우고, 어떤 지역을 가서 어떤 사람을 만나는지 등을 공유한다. 전국 곳곳에 있는 아이들이 모이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에 (나는 더 자주 만나고 싶다) 온라인으로 사전 학습 자료를 전달한다. '시작도 안 했는데 참 귀찮게 하네'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여행은 준비가 반이다. 나머지 반을 채우기 위해 여행을 하면서도 부지런해야 한다. 매일 저녁 모여서 다음 일정을 준비하고, 오늘 배운 내용을 토론하며, 글도 써야 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공정여행은 즐거운 불편이다. 가능한 현지인처럼 생활하기 때문에 평소와는 많이 다르다. 그 불편을 감수하며 웬만한 것은 스스로 해야 한다. 이쯤 되면 이런 고생길에 본인을 보낸 부모님을 원망할 수 있지만 어쩔 수 없다. 성장통은 아픈 법이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홀가분한 마음으로 집에서 쉴 때쯤 다시 연락이 간다. 아이들이 여행 동안 쓴 글을 책으로 엮기 위해 가다듬도록 한다. 그렇게 '여행학교'는 마무리가 됐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새 학기가 시작하고, 학교생활에 다시 적응하다 보면 여행에서 배운 것들은 잊히기 마련이다. 다시 모여야 한다. 필리핀, 유럽, 일본, 라오스 등을 여행한 모든 청소년을 모아 1박 2일 국내 공정여행을 진행한다. 어떤 배움이 있었는지 다시 떠올리고, 서로 공유한다. 즐거운 불편을 통해 배운 것들을 삶 속에서 실천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나는 '청소년 여행학교' 선생님이다.
사실 청소년을 만나기 전, 고민이 많다. 나는 과연 공정한가? 나는'여행학교'를 진행할 만한 자격이 있는가? 짧은 시간 동안 어떤 배움을 전해줄 수 있을까? 등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안고 끙끙 앓다 보면 어느새 함께 배낭을 메고 걷고 있다. '이건 이런 거고, 저건 저런 거야.'라는 정확한 답을 줄 수는 없지만 여행을 통해 내가 컸던 것처럼 아이들이 여행 속에서 스스로 클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줄 수 있다. 더 넓은 세상을 안전하게 경험할 수 있게, 다양한 사람을 깊게 만날 수 있게, 다른 삶을 이해할 수 있게. 자신을 발견할 수 있게.
앞으로도 아이들과 여행하며 함께 성장하고 싶다. 정해진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사고하며, 다양한 문화를 인정하고 서로 존중하며, 스스로 서고 더불어 살아가며, 지구상의 모든 생명을 소중히 하며, 자신만의 삶을 꿋꿋이 걸어갈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