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_고두환 대표이사
사회공헌 사업을 진행할 때, 받는 것에 익숙해져버린 사람들을 만나면 너무 힘듭니다. 그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그리고 본인들은 굉장히 노력하는데 보잘 것 없는 지원이 된다면 툴툴대고 본인들의 사업은 뒷전으로 미룬 채 활동을 이어가기 때문입니다.
바공실랑안은 처음 제가 취재를 하면서 인연을 맺었던 곳입니다. 2010년 여름, 한 달에 10여 개의 태풍이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를 통과하던 때, 필리핀의 국회의사당에서 불과 10여킬로미터 떨어진 도시빈민지역 바공실랑안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습니다. 마닐라에서만 3,000여명의 사망자와 50여만 가구의 이재민이 발생한 절망적이었던 그 시각, 바공실랑안에서만 100여명의 사람들이 수마에 당했고, 사람들은 판잣데기와 스티로폼을 타고 발악의 탈출을 감행했었습니다. (그러고보니, 공감만세의 까뚜아완 까미 프로젝트를 총괄하는 이형동 팀장은 굿네이버스에서 활동할 때 였고, 옆 동네에서 뗏목 타고 구호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때 카메라를 들고 취재를 다니던 시기였습니다. 기사를 쓰고 한국에서 후원을 받아 현지에 긴급 구호를 실시할 때였죠. 다른 지역보다 주요시설과 가깝다는 이유로 구호품이 빨리 들어오는 편이었지만, 수십 구의 시체가 운집한 중앙 운동장의 처참한 광경과 모든 것이 잠겼다가 빠진 뒤 아수라장이 된 동네를 보는 것은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습니다. 몇 달 후, 상당 수의 사람들은 인근의 작은 도시로 강제 이주가 되고, 강제 이주를 가면 일자리도 살 터전도 모두 잃는 사람들은 행정 처분이 사그라들길 기다리다가 다시금 터를 잡고 살아가는 마을 바공실랑안의 모습을 지켜본지도 7년째입니다. 이 때, 긴급구호 활동을 같이 했던 친구들이 바공실랑안청년연합(BSYF: Bagong Silangan Youth Federation) 이었습니다.
필리핀 지역에 청년들의 활동 조직이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기도 힘든 나라에서 청년들이 모여서 활동을, 그것도 공익적인 활동을 한다는 것은 상상을 할 수 없는 일이지요. 2011년 UN에서 여성시민사회상을 받은 ‘조카스’ 씨는 필리핀 도시빈민들을 지원하는 단체 ‘담파(Dampa)'에서 일하는 활동가인데, 이 분이 바공실랑안의 청년들을 교육시키고 조직한 장본인입니다.
우리는 바공실랑안의 청년들과 함께 여러 공정여행을 진행합니다. 다른 지역과 다르게 또래의 사람들과 어울려 노니 아무리 가난한 지역이라고 하더라도 무엇을 해도 한국의 청소년이나 청년들은 즐거워 했습니다. 여행 후에도 이메일이나 페이스북에서 만날 수 있었고, 아무리 가난한 지역이라도 문명의 이기가 닿는 것에 모두 신기해 했습니다. 바공실랑안청년연합 친구들은 본인들이 더 교육받고, 더 훈련받으면 사회에서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사회를 조금씩 변화시킬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쓰레기장 위에 촌락을 이루고 사는 ‘파야타스’ 옆에 시티오 바칼, 역시나 쓰레기 더미와 버려진 땅 주변 어디에 형성된 절망적인 땅에 우리는 어린이집을 시작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바공실랑안청년연합은 인근의 지방정부를 설득하여 유휴 건물을 받아내고, 공감만세의 대학생 자원봉사팀은 기본적인 물품 구비 및 페인트 칠을 하는 등의 활동을 시작합니다. 유아기의 아이들을 어린이집에서 돌봐준다면 부모는 기본적인 일을 할 수 있고, 그 돈을 모아 공립학교에 진학시킬 수 있을거라는게 그들의 생각이었습니다. 20명 남짓의 아이들은 옹기종기 둘러앉아 기본적인 말과 글, 노래와 전래동화 등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 청년들이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교류와 프로젝트의 시작은 곧 자신들에게 큰 이익을 가져다 줄거라 생각하고, 요구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본인들이 해야할 소임도 등한시 하기 시작합니다. 보고서의 작성이 이루어지지 않고, 그 상태에서 누굴 만나든 본인의 어려움만 토로하는 일이 이어졌습니다. 여기서 공부방 활동을 하며 인근 대학을 다니는 공부방 교사들의 불만이 특히 많았는데, 그들은 자의적으로 처리하는 일들이 너무 많았고, 중간에서 관리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현재 관련 프로젝트를 총괄하는 곳은 국제기구 아시안브릿지 필리핀인데, 잠시 방문한 인도의 도시빈민활동가 ‘무사’ 씨는 이들의 자세를 바꾸기 위한 장기 교육을 시작하였습니다. 처음에 갸우뚱하고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이 현재 진행형인 교육에서 어떻게 변할는지 미지수입니다.
지난 7월 초, 현지에서 간담회를 통해 지속적인 보고서의 제출과 공부방 운영의 목적에 대해 분명히할 것을 서로 합의하고, 이에 대해 아시안브릿지 필리핀 사무국장인 ‘보나’ 씨가 책임지고 관리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젊은 친구들은 자신들의 요구는 들어주지 않은 채, 빡빡한 피드백이 온 것에 불만을 가졌지만 제대로 이행한다면 요구한 비용, 물품 등을 결재해 준다는 약속을 하였습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뗏목타고 본인들의 목숨은 아랑곳 하지 않으며 남을 돕던 청년들도 삶의 고난과 역경 속에 어느 덧 변했습니다. 이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며, 이래서 되겠냐고 말하며 우리의 실험은 받는데 익숙해져버린 이들에게 올해 어떤 모습이 기다리고 있을지를 물었습니다.
공부방을 방문하고 나오면서 지붕이 망가진 곳은 이번 청소년 해외봉사팀이 수리를 하기로 하였습니다. 비쩍 골은 아이들이 쏘다니는데, 옆에 와서 말 건네는 아낙은 공부방을 보내는 부모였습니다. 2년차의 바공실랑안 어린이 집에선 아직 어떤 활동이 이어질지, 어떤 희망이 있을지 미지수입니다. 이 곳의 지원 역시 5년입니다. 통상적으로 교육 프로젝트 하나 자리잡는데 20년이 걸린다고 필리핀 활동가들이 말을 건넵니다.
어린이 집의 아이들이 공립학교에 가는 것을 희망합니다. 그리고 바공실랑안청년들의 변화도 기대하는 새학기는 역시 7월에 시작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2013년 7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