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진_노진호 코디네이터
하나, 직장인들이 금요일과 주말을 이용하여 2박3일로 떠나는 곳, 둘, 패션과 관련된 TV프로그램에 자주 나오는 곳, 셋, 금융기관이 많은 곳, 넷, 야경이 멋진 곳. 다섯, 느와르 영화를 잘 만드는 곳.
지금까지 내가 인식하고 있는 홍콩은 이렇게 다섯 가지 모습이었다. 답사를 준비하면서 홍콩의 역사, 문화 등 많은 정보를 접했지만 머릿속에 굳게 자리 잡은 다섯 가지 모습은 쉽게 바뀌지 않았고 때문에 직접 마주할 홍콩은 어떤 모습일지 매우 궁금했다.
홍콩의 폐, 란타우섬 현지인과 관계하는 공정여행 원칙에 따라 첫 날은 홍콩에서 12년 동안 일하며 가이드 자격을 얻은 한국분과 홍콩 국제공항이 있는 란타우(Lantau)섬을 동행하였다. 홍콩의 230여개 섬 중 가장 큰 섬인 란타우는 때로 ‘홍콩의 폐’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이는 고유의 숲과 비교적 적은 숫자의 고층 주거지가 발달한 데에 근거한다고 하였다. 란타우섬은 트래킹, 옹핑마을, 타이 오 어촌마을로 유명한 여행지였다. ‘옹핑360’이라는 케이블카를 타고 자연경관을 감상하며 20분 쯤 오르니 은은하게 퍼지는 차향기와 사원에서 피우는 향냄새가 마을에 도착했음을 알려주었다. 옹핑마을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우리나라의 사찰과 크게 다르지 않았으나 사원의 내부, 향을 피우는 방법 등에서 그들만의 특색을 볼 수 있었다. 보통 사원에 있는 불상들은 붓다의 근원지인 인도를 바라보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286개의 계단 위에 자리한 23m의 커다란 청동좌불상은 중국을 적대시하는 홍콩의 분위기와 역설적으로 중국 대륙을 향해 온화한 미소를 띠고 있었고 이는 중국과 홍콩의 절대 떼어질 수 없는 관계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다채로운 매력을 지닌 홍콩섬 여행자들이 홍콩을 방문했을 때 가장 많이 찾는 지역인 홍콩섬은 개인적으로 홍콩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2박 3일 동안 구석구석 걸어 다니며 돌아본 홍콩은 정말 다채로운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최대 상업지구인 완차이(WanChai)는 사람이 가장 많이 모이는 지역 중 하나로 오피스와 주거공간이 오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주거공간이 밀집되어 있어서 그런지 재래시장, 골목상점 등 홍콩의 일상생활을 많이 접할 수 있었다.
쇼핑과 패션의 중심지 리 가든스(Lee Gardens)거리는 젊은이들과 관광객들이 주를 이뤘고 관광객들의 대부분은 중국 본토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사실 홍콩을 찾는 관광객 중 제일 비중을 많이 차지하는 중국 본토 사람들은 홍콩 입장에서는 무시할 수 없는 존재였다. 비록 반감은 나날이 증가하고 있지만 중국 본토 사람들이 홍콩 경제에 끼치는 영향력은 상당했다. 높은 고층 빌딩이 즐비한 센트럴(Central)은 내 이미지에 있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누가 제일 우뚝 솟아있나 대결을 펼치듯 많은 빌딩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러나 정말 재미있는 것은 빌딩 뒤에 있었다. 골목 사이에 있는 골동품 상점, 공원, 사원들이 초고층 빌딩과 대조되며 신비로운 분위기를 만들었고 이는 홍콩에 대한 궁금증을 더욱 증가시켰다.
홍콩의 나이트라이프를 대변하는 란 콰이 퐁(Lan Kwai Fong)에는 한국의 이태원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화려한 네온사인 아래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렇듯 홍콩섬은 정말 매력적인 지역이었다. 빛이 통과하면 여러 가지 색을 내는 프리즘처럼 여행자가 바라는 홍콩의 모습에 따라 그 색을 낼 수 있는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사회혁신 홍콩에서도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사회혁신에 대한 관심이 대두되고 있었다. 홍콩에서 손꼽히는 대학 중 하나인 홍콩 이공대학교(the HongKong Polytechnic University)의 총장실 바로 앞에 자리한 사회혁신센터가 그것을 증명하는 것 같았다. 학생들이 스스로 발견한 사회문제와 그것의 해결책을 찾는 효과적인 방법을 교육하고 직접 실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있었다. 개인의 대학생활을 반추해보면 각 단과대학마다 있는 취업센터와 잦은 취업설명회에 비교하여 학생들이 생각해낸 문제를 표현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실천을 할 수 있는 환경은 드물었다. 학교 내에서 이러한 활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것이 학생들에게 훗날 큰 밑거름 될 것이라고 생각했고 주로 학교 밖에서 고군분투하며 이러한 활동을 하는 한국 학생들이 대단하다고 느끼는 한편 안타까움이 많이 들었다.
홍콩은 최근 중국 내에서 멜라닌 사건이 있은 후, 많은 중국인들이 자국제품을 더 이상 믿지 못해 홍콩에서 분유, 휴지 등 생필품들을 사재기했고 이는 홍콩의 물가가 치솟는 주된 원인이 되었다. 이는 홍콩 사람들에게 원래 좋지 않던 중국본토에 대한 반감이 최고조에 이르는 계기를 제공했다. 선사시대부터 155년 동안의 영국 식민지배, 그리고 4년 동안의 일본 식민지배를 거쳐 1984년, 중국으로 반환되어 1국가 2체제를 이루고 있는 홍콩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홍콩 역사박물관을 돌아보며 머릿속에 굳게 자리 잡고 있던 홍콩의 5가지 모습이 서서히 사라져갔다. 오랜 식민역사를 거치고 중국에게 반환된 후에도 홍콩은 끊임없이 자기만의 정체성을 유지하려고 하는 모습을 역사박물관 곳곳에서 찾을 수 있었다.
한국 근대사에서 일제가 조선을 식민 통치했던 것이 조선의 근대화에 기여했다고 주장하는 식민지 근대화론이 있듯이 몇몇의 홍콩 사람은 영국이 식민 지배를 자행한 국가이지만 지금의 홍콩이 있을 수 있는 편리한 시스템을 가져다 준 존재라고 말한다. 어찌되었든 한 국가가 다른 국가의 영토에 들어가 지배하는 것은 오로지 자국의 이익을 위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따라온 피지배당한 국가의 발전이 환영할만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비록 시행착오가 많고 속도가 더딜지라도 진정한 독립성을 지니려면 스스로 딛고 일어서며 발전하는 것이 옳은 방향이 아닐까싶다.
답사 후 다시 보는 홍콩 여전히 머릿속에 자리 잡았던 다섯 가지 모습은 사라지지 않았다. 대신 다섯 가지에서 추가적으로 더욱 많은 모습들이 추가되었다. 우리와 같이 뼈아픈 식민역사를 가진 곳, 끊임없이 자기만의 색깔을 내기 위해 노력하는 곳, 어느 곳보다 사회혁신에 적극적인 곳, 높은 빌딩보다는 골목골목이 더 화려한 곳 등 기존에 듣고 보았던 매력적인 홍콩에서 더욱 많은 것을 알게 되어 추천하고 싶은 여행지 중의 하나가 되었다. 아직도 2층 버스와 트램에서 바라본 신비스런 홍콩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 홍콩에서의 모든 일정을 우리와 함께 해준 WEDO GLOBAL의 Bosco, Eva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WEDO GLOBAL은 홍콩, 스리랑카, 네팔 등지에서 공정여행을 하는 청년조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