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한 대안을 찾는 사람들

공정한 대안을 찾는 사람들 [부탄 공정여행 수기_공감만세 대표이사 고두환] 행복지수 1위 부탄을 여행하는 독특한 방법
  • 공감만세
  • 2015-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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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정보

여행장소
부탄 파로, 팀푸 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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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은둔 왕국, 부탄

글_ 고두환  대표이사

 

매년 3월 20일은 유엔(UN)에서 지정한 ‘세계 행복의 날’이다. 유엔은 보통 추상적 개념을 상징화하지 않는다고 한다.  기준을 제시하기 어렵고, 제시한다 하더라도 논란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예컨대 비슷한 시기에 지정된 세계 협동조합의 날’을 떠올려보면, ‘이것이 협동조합이다’라고 제시하면 되지만, ‘이것이 행복이다’라고 제시하는 것은 쉽지 않다. 우리가 무심코 사용하는 추상적 개념들을 정의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근래 한국 사회에서 행복한 나라라 불리는 곳은 단연 덴마크다.  북유럽에 위치하여 각종 지표도 상위권에 있고, 덴마크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 해도 그 나라가 행복할 것 같다는 느낌을 공유한다. 그리고 여기, ‘부탄’이라는 나라가 있다.

 

 

히말라야 자락 은둔의 왕국, 인구 70만 명에 1인당 국내총생산(GDP) 2천 불 정도의 나라,  전 국토의 70% 이상이 산지이며 외교와 국방은 주변 강대국인 인도에 상당 부분 일임할 수밖에 없는 이 나라가  2011년 영국 신경제재단(NEF)에서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다. 덴마크에서 공유된 느낌이, 부탄이란 나라에선 도무지 공유되질 않는다. 놀라운 건 부탄 행복의 실체는 잘 설계된 관광정책에서 비롯된다는 점이다. 외부인이 부탄에 가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방콕, 카트만두, 뭄바이 정도의 도시에서만 부탄으로 들어가는 항공기를 탈 수 있다. 부탄의 국제공항 파로(Paro)에는 오직 부탄 국영항공인 드룩에어(Druk Air)만이 출입국을 할 수 있다. 창밖으로 보이는 험준하고도 그림 같은 히말라야 산자락을 수십 차례 지나쳐야 부탄 땅에 닿을 수 있다.

 

부탄을 여행하는 관광객은 몇 가지 복잡한 절차와 부탄 관광법을 따라야 한다. 일단 비자를 발급받아야 하는데,  부탄 내 국영 여행사에 신청하여 짧게는 며칠에서 길게는 몇 달까지 걸린다. 강대국과 수교를 맺지 않는 원칙이 있는  부탄은 가기 쉬운 나라가 아니다. 가령 중국이나 미국 국적을 가진 사람이라면 설사 부탄에 갈 수 있다 하더라도  비자 발급에 오랜 시간이 걸리고 특이한 허가조건을 받기도 한다. 국경을 맞닿은 중국 국적의 사람은 비자가 발급된다  하더라도 산에 오르지 못할뿐더러 갈 수 있는 장소가 극히 제한된다. 첩자활동을 할지 모른다는 우려와 중국이 주변의  티베트나 원난 같은 지역을 강제 복속시킨 사례에서 부탄 역시 그리 자유롭지 않다는 경계 때문이다.

 

한국은 인도 다음으로 부탄과 교역이 많은 나라고, 작은 왕국 부탄에서도 한류가 붐이기에 이런 부분은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비자를 신청할 때 연결된 국영 여행사는 비자발급 후 부탄과 주변국을 이동하는 드룩에어의 예약 및 결제, 그리고 부탄 관광법에 의해 여행비용 및 관광세를 여행자에게 요청한다. 세 시간이 채 안 걸리는 드룩에어의 왕복비용은 100만 원을 훌쩍 넘기 일쑤라는 사실과, 부탄을 하루 체류하는 데 드는 비용이 200~250달러 정도(비수기와 성수기의 차이) 든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렇다면 부탄은 7일만 여행하더라도 4백만 원가량의 여행 비용이 든다.

 

 

이쯤 되면 사람들은 그 비용을 지불하고 왜 부탄에 가야 하느냐는 볼멘소리를 한다. 4백만 원이라면 유럽도, 남미도 갈  수 있는 여행 비용이다. 이런 부탄에 매년 10만 명이 훌쩍 넘는 외국인 관광객이 찾아온다. 북미, 유럽, 일본의 시니어가  부탄을 찾는 주요 관광객이다. 한국에서는 주로 부탄의 불교 성지순례나, 무역 및 정부사절 등으로 오가는 소수의  사람만이 찾다가 서서히 ‘행복’이란 단어에 끌려 부탄을 찾는 사람이 늘고 있다. 하지만 이래저래 방문하기 힘든 부탄에  한국 여행자가 급격하게 늘지는 않을 거라 생각한다.

 

부탄의 여행세가 비싼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높은 여행의 질을 유지하겠다는 부탄 정부의 의지, 다른 하나는  여행관세다. 일단 하루 200~250달러를 지불해야 하는 여행세에는 3성급 이상의 호텔 혹은 리조트, 식사 및 입장료,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가이드 그리고 차량이 포함되어 있다. 가이드는 보통 해외에서 관광을 공부하고, 국내에서  연수 및 국가고시를 통과한 인텔리 청년들이 맡는다. 그들은 부탄의 역사 문화부터 현재의 트렌드까지 적절한 유머를  섞어 여행자에게 설명하고, 여행 내내 24시간 거슬리지 않게 동행하며 여행을 안내한다.

 

부탄 관광법상 여행자는 가이드 없이 부탄을 돌아다닐 수 없다. 이질적 문화를 가진 부탄에서는 그만큼 외국인이  지켜야 하는 여러 문화와 관습이 있고, 티베트와 라다크 등이 주변 강대국에 복속되는 과정을 유심히 지켜본 부탄 왕국은 여행을 온 이방인에게 부탄만의 고유한 역사 문화를 여행 중에 어렵지 않게 녹이며 그들의 독립의지에 대해 쉽게  역설하고 있다. 여기에 덧붙여 따라오는 숙박, 식사, 차량 등을 연결지어 생각해 보면, 부탄 관광은 부탄 최고의  인텔리들이 가장 정제된 관광 인프라를 제공하며 여행자를 환대하는 구조로 진행됨을 알 수 있다.

 

부탄 내 차량 계기판을 보면, 평균속도는 20~30km/s 정도다. 구불구불한 산지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도 부탄을 여행하는 사람들은 정서적으로, 육체적으로 쉬어간다는 느낌을 충분히 받는다. 여행관세는 총 여행 비용의 30% 이상 부과된다. 즉 100만 원을 지불하면 30만 원 이상이 세금이다.  우리나라 부가세가 10%임을 생각했을 때, 높은 세율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여행관세는 부탄 행복정책의 근간인  무상교육과 무상의료의 재원으로 쓰인다. 부탄 내에 합법적으로 머무는 사람 누구나, 즉 내외국인 모두 무상교육과  무상의료 혜택을 받는다. 영국식 교육제도를 따르는 부탄은 상급학교 진학 시기가 되었을 때, (성적이 되는 학생 중)  원하는 이들을 해외로 유학을 보내주는 제도도 있다. 그 수가 매년 5천 명, 인구 70만 명의 나라에서 5천 명이 매년 국비로 유학을 가는 셈이다. 이 학생들 중, 부탄으로 돌아와 조국을 위해 일을 하는 비율은 99%다. 이는 실로 놀라운 통계다.

 

 

우리나라에서도 지역에 젊은 인재가 없다는 소리를 많이 한다. 지역에서 배출된 젊은 인재는 보통 서울이나 외국에  가서 공부를 하는데, 그 지역에 눌러앉거나 거대 도시에 터를 잡고 살아간다. 자신을 배출한 지역을 위해 일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개발도상국 역시 인텔리 계층이 조국을 위해 일하는 경우가 드물기에 정작 나라에 필요한 젊은 인재를  구하기 어려운 상태다. 대다수 나라의 지역과 지구촌의 개발도상국이 겪는 문제를 적어도 부탄은 겪지 않는다.  무상의료 역시 놀랍다. 출산부터 산모 회복까지, 시설이 있다는 전제 하에 아이 보육과 각종 예방치료까지 무상의료가  적용된다. 국민 대다수가 대승불교를 믿기에, 치료에 명상과 영적 치유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탄, 하지만 국민이 양방  치료를 원하면 헬리콥터를 띄워서라도 주변국으로 보내주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다는 미국도  살인적인 치료비용이 무서워 병원에 가지 못하고, 우리나라 응급실에서도 당장 치료해서 살릴 수 있는 사람도 보호자의  동의와 원무과의 결재 문제로 치료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를 심심찮게 볼 수 있는데, 히말라야 자락에 위치한 작은 왕국 은 적어도 그런 걱정을 하지 않는 무상의료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혹자는 시설이 열악해서, 혹자는 국가 규모가 작고, 경제발전 정도가 달라서 다른 국가와 비교가 불가능하다고 하지만,  언제 우리가 이렇게 시스템이 촘촘하고 국민을 위한 국가에서 살아봤는지에 대해선 충분히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그렇다면 여행자를 맞는 부탄 국민은 어떨까? 당연히 여행자를 환대한다. 부탄에 누군가 여행을 온다는 것은 자신의  직접적 이익이 증가한다는 것을 뜻한다. 즉 여행자가 부탄에 오기 때문에 내 아이가 질 높은 무상교육을 받고,  우리 가족이 질 높은 무상의료를 받는다.  여행 온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기품 있게 대하는 게 부탄 국민의 자세이다. 국가에서 특별한 교육을 할 필요도, 특별한 정책을 펼칠 필요도 없다. 사적 이익과 공적 이익이 결합되어 모두가 수혜를 받는 구조는 굉장히 견고하다.  현재와 같은 관광구조라면 커다란 외부변수가 없는 한, 적어도 부탄 국민의 자세가 변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원주민이 행복해지는 여행

여행의 목적은 무엇일까? 보통 사람들에게 질문을 해 보면, 여러 대답이 나온다.  ‘설렘, 재충전, 배움, 영감, 힐링….’ 하지만 올바른 개념의 관광 목적은 ‘원주민의 행복한 삶’ 내지는 ‘관광을 활용한 원주민 삶의 업그레이드’ 정도일 것이다.  우리는 여행자와 여행에만 초점을 맞추지만, 관광을 산업적으로 봐도 문화적으로 봐도 관광지에 사는 사람들의 삶이  행복하고 개선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의미가 없을 것이다.

 

지난 10년 간, 한국을 찾는 관광객은 양적으로 두 배 이상 팽창했으며, 그 수가 연간 1천 2백만 명에 이른다.  제주도는 하루 1만 명의 중국인 관광객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국민 누구도, 두 배 이상 양적 팽창 한 관광산업의 혜택이 나의 직접 수입이나 직접 수혜와 연결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제주도는 ‘제주 올레’와 ‘세계 7대 자연경관’ 등으로 관광의 중흥기를 맞았지만 제주도 내의 고용률과 성장률은 오히려 마이너스가 나고, 이제는 제주도 내 토지 외국인 소유와 무분별한 개발 및 경제 누수 효과 등 각종 폐해를 연일 걱정하는 실정이다. 몇 가지 사례를 놓고 봤을 때, 다른 산업과 마찬가지로 관광 역시 압축적인 성장을 하면서 성장에만 초점을 맞췄지, 성과를 어떻게 나눌 것인지, 이 성과를 유지하기 위해 어떤 시스템을 구축하여 국가와 국민이 함께 갈 것인지에 관해선 우리 사회도 이제야 고민을 시작한 실정이다.

 

관광산업 성장의 파이를 한국 사회가 국민에게 어떻게, 그리고 얼마나 효과적으로 나누고, 그 구조를 국민에게 어떻게  전파하고 설득하고 있는지 다시금 물어야 한다. 지금 같은 속도라면 우리 집 앞마당이 제주도와 같은 호재를 맞아 신음할 수 있고, 각종 관광의 경제적 지표는 끊임없이 올라가지만 나의 삶과는 동떨어진 채, 환경이 파괴되며 우리  사회의 안락함은 복잡다단함으로 치환되는 일이 가속화될지도 모른다.  돌이켜 보면 한국인의 해외여행 행태에 문제가 있었다. 나의 욕망을 푸는 도구로서 여행은 소비와 쾌락으로 점철되었고돈 몇 푼을 쥐어주고 우리의 모든 것을 풀어내는 곳으로 여행지와 원주민을 이용했다. 그나마 그 돈 몇 푼조차 다국적기업과 선진국으로 흘러들어간다는 것은 이미 국내에 소개된 《희망을 여행하라》라는 공정여행서에서도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부탄은 2년에 한 번씩 국민총행복(GNH: Gross National Happiness)을 측정한다.  전체 국민의 5% 가량이 조사대상이 되며, 1인당 평균 6시간 가량을 인터뷰한다. 이렇게 조사한 복잡다단한 지표에서  국민의 97%는 ‘행복하다’고 대답했다. 비슷한 시기, 한국의 행복 순위는 전 세계 60위권이었다. 부탄의 국왕은 전제군주였지만, 스스로 왕권을 내려놓고 1년 간 전 국토를 돌아다니며 국민을 설득하여 민주주의를 받아 들이고 입헌군주국으로 왕국의 시스템을 바꾸어 놓았다. 물론, 그렇지 않았다면 전제왕국을 열강들이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을 거란 의견이 많다. 하지만 어느 전제군주도 스스로 왕권을 내려놓는 선택은 쉽사리 하지 않는다.  부탄의 모든 정책을 결정하는 행복위원회에서는 지하자원의 개발도, 외국 원조를 받아들이는 것도,  세율을 조정하는 것도, 2년에 한 번씩 조사한 국민총행복 지수에서 ‘국민의 행복에 반한다’는 결론이 나면 무조건  시행하지 않는다.

 

세계적인 컨설팅 업체인 맥킨지(Mckinsey)에서는 부탄 경제의 발전을 위해 관광세율을 낮추면 혁신적 경제발전이 가능할 거란 보고서를 내놓았지만, 행복위원회는 그들의 의견을 따르는 대신 맥킨지의 직원 두 명을 부탄 국내로 파견받길 택했다. 행복위원회는 그들과 협업을 통해 어떤 의견이 실증적으로 맞는지 실험하는 단계를 거치는 중이라면서도, 그들에게 국내총생산이 아닌 국민총행복 지수를 우선하는 국가가 맞다는 것을 보여주겠다는 자부심이 가득한 상태다.

 

부탄 국민은 태어날 때부터 10헥타르의 땅을 소유한다. 매매는 5헥타르까지만 허용한다. 남자든 여자든 첫째 자식이 가문과 재산을 잇고, 나머지 가족을 구휼할 의무를 갖는다. 누가 어떤 실패를 하더라도 땅과 그 안에 있는 집은 남아 있게되고, 가족의 테두리는 살아 있다. 부탄 전역을 다니면서든 유일한 불만은 어느 지역이나 음식의 맛과 종류가 거의 똑같다는 점이었다.먹는 재미가 없는 나라, 돌려 말하면 사람들은 오감을 자극하는 욕구가 심히 무덤덤했고, 누구의 얼굴을 봐도 더없이 평온해 보였으며, 그들의 속도대로 살아가는 부드러움을 엿볼 수 있었다.

자립형 국가 모델에서 교육과 의료, 그리고 민주주의 등은 근대국가 당시 부탄왕국에게 독립적 생존을 위해 부양해야 하는 국가적 과제였다. 그리고 이를 질 높은 관광정책을 설계한 후, 막대한 관광세를 징수하는 방식으로 풀어간다. 

 

현명한 나라다. 국민의 행복을 위해 국가가 존재하는 부탄, 원주민의 행복한 삶을 위해 존재하는 여행, 완벽하다는 게 아니다. 우리는 부탄의 지역기반관광 사례에서 앞으로 한국의 관광정책에 대해 심도 있는 고민을 해내야 하며, 우리의 욕망 분출을 위한 소비와 쾌락으로 점철된 해외여행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잘못하면 나의 자식은 관광화로 폐허가 된 동남아의 어느 휴양지에서 살아갈 수 있고, 나의 손자는 지금보다 더 응축된 욕망의 분출을 위해 소비와 쾌락에 사로잡힌 여행을 할지도 모를 테니까. 행복에 대한 각자의 정의는 다르지만, 생각해 보면 행복은 살아가는 데 필요 충분한 조건을 보장받고, 이를 위해 모두가 열심히 일하면 자연스레 보장받을 수 있는 보통 국가의 시스템 내에서 가능할 것 같다.

 

정의는 다르지만 조건의 차이가 크지 않은, 관광의 목적인 ‘원주민의 행복한 삶’이 보장된다면, 전 세계 국내총생산에 10%를 훌쩍 넘기고, 노동인구의 10%를 훌쩍 넘게 고용하는 관광산업이 지구촌 여러 지역과 국가의 행복한 삶을 견인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