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_표소진 코디네이터
# Intro 동유럽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 아마 체코가 1순위 아닐까요? 9세기경에 이미 동유럽 정치 경제의 중심지였고, 14세기에는 전 유럽에서 파리 다음가는 큰 도시였던 프라하. 중세시대 건물의 붉은 지붕과 카를교를 배경으로 한 프라하의 전경은 프라하를 대표하는 이미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체코는 동유럽과 서유럽을 잇는 길목에 위치해 여러 민족의 문화가 독특하게 꽃핀 곳이기도 합니다. 과학자 아인슈타인, 음악가 드보르자크, 소설가 카프카 등 역사 속의 인물들 또한 프라하에서 활동하며 곳곳에 흔적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아름다운 수도이지만 한편으론 평화롭지만은 않았던 도시. 세계대전과 소비에트 연방을 거쳐 체코슬로바키아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독립한 체코는 후에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나누어지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일정은 드레스덴역에서 또 한 번 기차를 타고 프라하역으로 향했습니다.
# 1월 13일 체코 프라하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체코를 대표하는 국가적 상징물이자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거대한 성인 프라하성입니다. 프라하성은 9세기 말부터 건설되기 시작해 카를 4세 때인 14세기에 지금과 비슷한 모습을 갖추었고, 이후에도 계속 여러 양식이 가미되면서 복잡하고 정교한 모습으로 변화하다가 18세기 말에야 현재와 같은 모습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어진 카를교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구시가와 프라하성을 연결하는, 가장 오래된 다리이기도 합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인근 동유럽 나라와 달리 체코는 체코어를 사용하며, 체코 통화인 크로나를 사용한다는 점입니다. 2004년, EU에 가입해 유로화를 사용할 법도 하지만 현지 화폐를 쓴다는 점이 독특하죠. 유로화도 사용 가능하지만, 크로나로 거스름돈을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혹자 세계에서 가장 어려운 언어 중 하나로 이야기 한 체코어는 현지에서 안녕하세요 라는 뜻의 'Dobry den(도브리 덴)'만 썼던 기억이 나네요.
프라하성 앞, 매 정시에는 근위병 교대식이 열립니다. 근위병의 유니폼은 영화 '아마데우스'의 의상 디자이너 테오도르 피스텍이라는 사람이 만들었다고 하네요. 근위병과 남녀 단체 사진을 찍어 보곤, 잠깐 동안 진행된 교대식을 보기도 했습니다.
성 비트 성당은 프라하성의 언덕에 우뚝 솟아 있는 프라하 최대의 고딕 양식 건물로 10세기부터 차츰차츰 건축을 하다가 1929년에 간신히 완성되었다고 합니다. 건물이 완성되는 과정에서 고딕 양식의 변화가 모두 담겨있어 고딕건축양식의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꼭 견학하는 건물 중 하나라고 해요.
현지 음식, 굴라쉬를 맛보았습니다(빵뚜껑을 열면 육개장 같은 속이 보입니다) 육개장과 맛이 비슷한 일종의 스튜 요리인 굴라쉬는 고기와 야채를 걸쭉하게 끓여낸 음식으로 빵과 함께 먹곤 합니다. 굴라쉬를 에피타이저로, 스테이크와 아이스크림 후식까지 곁들여 저녁을 먹었습니다.
"아, 이래서 동유럽 동유럽 하는구나" 프라하성에 올라 도시를 바라봤을 때, 그리고 날이 어두워진 후 카를교를 바라봤을 때 우리는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아름다운 거리와 환상적 야경, 중세시대의 건축물이 즐비해 유럽의 건축 박물관이라고도 불리는 도시. 사진으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풍광을 직접 보고, 마음에 담을 수 있었습니다.
# 1월 14일 체코 프라하 첫날, 프라하성에서 카를교까지 걸으며 프라하와 첫인사를 했다면 이 날은 좀 더 자세히 체코를 들여다보는 날이었습니다. 바로 체코 의회 공식방문을 하는 날로, 서둘러 일정을 시작했습니다.
카를교의 야경을 먼저 봤다면, 이제는 낮의 모습 또한 볼 차례죠. 체코 출신의 감독 카렐 바섹은 "프라하성과도 바꿀 수 없다"고 다리를 칭송했습니다. 다리 위에 놓인 동상들 덕분에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카를교 다리 난간 양쪽에는 성서 속 인물과 체코의 성인 등 30명의 조각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저마다의 개성과 사연을 지닌 동상. 17세기 예수 수난 십자가상은 다리 위 동상 중 최초로 세워진 동상이며 성 요한 네포무크 상은 카를교의 조각상 중 가장 유명한데 동상 밑 동판에 손을 대고 소원을 빌면 행운이 깃든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그 때문인지 동판 부분만 반질반질한 것이 눈에 띄는데요. 동상 아래 부조에는 바람을 핀 왕비의 비밀을 밝히지 않아 혀를 잘린 채 강물에 던져지는 요한 네포무크 신부의 모습이 묘사돼 있습니다.
1968년 프라하의 봄, 벨벳혁명으로 불리는 1989년 민주화 운동을 거쳐 공산주의 체제를 마감하고, 자유 민주주의로 전환하고 있는 나라 체코. 체코의 땅은 주인이 다양했습니다. 프로셰미슬 왕조-룩셈부르크 왕조-합스부르크 왕가들이 돌아가며 지배하였고, 프라하 창문 투척 사건 이후 30년 전쟁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1918년에야 체코슬로바키아 연방 공화국으로 식민 통치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짧게 경험한 민주주의와 번영도 잠시, 2차 세계대전으로 수많은 유대인이 학살됐고, 전쟁 후에는 소련 공산주의의 영향권 아래 놓이게 됩니다. 이후 복잡다단한 근대사를 겪고 불협화음이 있었지만 이제는 과거와 달라진 면모를 볼 수 있습니다.
의회 관계자 Eva로부터 건물 내부의 특징과 상징물 등에 관한 설명을 들으며 건물 깊숙히 구석구석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체코의 엠블럼은 서부 보헤미아, 동부 모라비아, 시레지아 지역을 상징하는데 두 마리의 사자는 보헤미아를, 적색과 백색의 체크무늬 독수리는 모라비아를, 검은 독수리는 시레지아를 나타냅니다.
600년 전 신성로마제국 황제였던 카를 4세는 예술과 과학에 관대한 후원자로서 특히 프라하의 예술을 후원했다고 합니다. 교회 건립과 자선단체 설립을 열렬히 지지했으며 중부 유럽 최초의 종합대학인 카를대학(1348년 설립)을 설립하기도 했죠.
놀랍고도 재밌는 사실 한 가지, 유럽은 하원의원의 힘이 가장 세다?! 자리 배치상 장관보다도 높은 자리에 앉기도 하거니와 가장 많은 인원, 젊은 사람들로 구성된 하원의회. 하원의원은 법제정을 비롯한 대부분의 일을 처리하며 기각될 경우, 상원의원들의 승인 없이도 법안을 통과시키기도 한다고. 소위 농땡이 피우는 의원이 없도록 한 불편한 의자 설계, 엉덩이를 시리게 한다는 이야기는 우스갯소리일지 몰라도 한국과 대조된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참고로 체코 의회는 양원제로 하원은 4년의 임기를 지니는 200명의 의원으로 구성되며, 상원은 81명의 의원으로 구성되고 임기는 6년이라고 합니다. 대통령은 상·하 의회에서 선출되며 5년의 임기, 행정부는 대통령이 지명하고 하원의 승인으로 선출되는 총리 이하 부총리, 그리고 각 부 장관들로 이루어집니다.
바츨라프 광장과 구시가지 사이 하벨스카 거리에는 일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여는 재래시장이 있습니다. 체코 기념품을 비롯해 다양한 물건들을 판매하는 재래시장을 지나 바츨라프 광장을 향해 가면 다양한 상점이 길게 늘어선 신시가지를 마주하게 됩니다. 가늘고 긴 대로로, 중앙에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벤치가 놓여 있으며 광장 끝에는 체코 건국의 아버지라 불리는 바츨라프 동상이 있는 국립박물관이 볼거리입니다. 1989년 민주 개혁 때, 대규모의 시위가 일어난 곳이기도 한 바츨라프 광장의 한켠에는 '프라하의 봄'과 스탈란의 영령을 추모하는 위령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프라하의 봄. 바츨라프 광장이 체코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장소 이상으로 중요한 이유는 바로 '프라하의 봄' 때문이기도 합니다. 1968년 봄, 체코는 두브체크에 의해 민주화와 시민의 자유라는 새로운 개혁으로 들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체코의 움직임을 두려워한 소련군은 8월 20일 탱크를 앞세워 시민들의 열망을 무참히 짓밟았습니다. 자유를 포기할 수 없었던 팔라치와 자비츠라는 두 청년은 자신의 몸을 불사르며 죽어갔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