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_월간토마토 성수진 기자
필리핀의 아침은 내가 사는 곳의 아침보다 더 빨리 찾아왔다. 피곤해서 꿀잠에 든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고 다시 돌아가기 싫다는 게 두 번째 이유였다. 이상했다. 얼른 편안하고 쾌적한 우리 집으로 돌아가 뜨뜻한 물로 샤워하고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고 싶고 늘 보던 사람들을 보고 싶었지만, 이곳 필리핀, 바기오를 떠나기 싫었다. 눈을 뜨자마자 여행이 끝나가는 것에 아쉬움이 밀려온 아침이었다.
바기오 사람들의 ‘길’을 걷다 바기오의 아침은 쌀쌀했다. 입고 잤던 옷을 그대로 입고 눈곱만 겨우 떼는 세수를 하고 모자를 푹 눌러 썼다. 아침 여섯 시, 산토 토마스 산으로 향했다. 산토 토마스 산은 해발 2천 미터 정도 높이로 바기오 시내를 한눈에 둘러볼 수 있는 곳이다. 마이크의 차를 타고 산토 토마스 산 입구까지 갔다. 흙길을 밟고 올라가 산등성이를 지날 때 바기오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그런 풍경을 상상하며 길을 걷기 시작했다. 흙길의 다정함을 기대했던 내게 산토 토마스 산은 어색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차에서 내려 아스팔트 길을 걷기 시작했다.
햇볕이 따사로웠다. 송글송글 땀이 맺혔고 부지런히 걷는데도 점점 뒤처졌다. 편평한 아스팔트 길이라 걷기 어렵지 않았지만, 차도라 그런지 가팔라서 숨이 가빠 왔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등산이란, 산 속으로 걸어 정상에 오르는 것이고 때때로 펼쳐지는 저 아래 풍경을 보는 것이다. 시간이 날 때 즐기며 정상에 올라 이 높이를, 혹은 자신을 이겨냈다는 것에 뿌듯함을 느끼는 것이다. 필리핀 사람들도 등산을 할까 궁금해 동동에게 물었다. 동동은 이곳 사람들에게 우리와 같은 등산의 개념은 없다고 말했다. 바기오 시내를 내려다보기 위해, 정상에 올라 도시락을 먹으며 중국해를 바라보기 위해 산토 토마스 산에 오르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산토 토마스 산은 이곳 사람들에게 그저 생활의 공간일 뿐이었다. 집에 가기 위해 오르고 학교에 가기 위해 오르는, 그저 길일 뿐이었다.
그 생활의 길을 오르고 올랐다. 옆으로 펼쳐진 바기오 시내 모습이 참 예뻤다. 알록달록, 다양한 색의 집들이 제각기 다른 빛을 냈다. 나는 점점 뒤처졌고 시간에 맞춰 우리를 데리러 온 마이크의 차에 가장 먼저 탔다. 물 한 통이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차를 타고 정상 근처까지 가 멀리 중국해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자리 잡고 앉았다. 마이크가 싸 온 도시락을 하나씩 받았다. 계란 프라이와 소시지 두 알, 그리고 밥. 멀리 중국해를 바라보며 먹는 아침 식사가 감격스러웠다. 탱글탱글 맛있어 보이는 소시지는 한 입 베었다가 비린 맛에 도로 뱉고 말았다. 필리핀에 와 처음으로 먹지 못한 음식이 이 이 소시지 두 알이었다. 계란 프라이와 바나나 케첩과 함께 밥을 먹었다. 바나나 케첩은 색은 빨갛지만 바나나로 만든 달고도 신 케첩이다. 이것들과 먹는 밥이 참 달았다.
한쪽 편으로 계단식 논이 보였다. 산 경사를 따라 만든 계단식 논은 이곳의 특색 있는 모습 중 하나다. 하지만 농사를 지어 먹고 살기 어렵고, 힘들게 농사 지어 버는 돈보다 관광 가이드로 얻는 수입이 더 많은 탓에 사람들이 점점 농사를 짓지 않아 계단식 논이 제 역할을 잃어 가고 있다고 들었다. 망가져 가는 계단식 논을 보면서 여러 생각을 했다. 그 지역의 모습, 생활 방식을 바꾸게 하는 여행이 우리가 바라는 여행, 우리의 여행은 아니었다.
지금, 바기오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것들 산토 토마스 산에서 내려와 다시 탐아완 예술인 마을로 향했다. 점심을 먹으면 이제 이곳을 떠나야 한다는 것이 아쉬웠다. 우리가 흔히 먹는 스파게티와 돼지고기구이가 점심 메뉴였다. 나는 이날 아침에 먹은 소시지 말고는 필리핀 음식이 입맛에 맞았다. 그런데도 김치 한 조각 먹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마침 동동이 튜브 고추장 하나를 꺼냈다. 밥에 고추장을 비벼 먹으며 역시 우리나라 사람은 김치나 고추장을 먹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평소에 김치나 고추장을 즐겨 먹지 않았던 내가 필리핀까지 와서 고추장을 찾을 줄이야. 더군다나 필리핀 음식이 정말 맛있었는데도 말이다.
탐아완 예술인 마을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돼지고기에 고추장을 찍어 건넸다. 우리가 맛있다고 먹는 고추장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했다. 사람들이 맵다며 물을 들이켰다. 그러면서 소리 내며 웃었다. 나도 웃으며 이것이 한국 사람들이 즐겨먹는 소스인 고추장이라고 알려 주었다.
점심을 먹고 동동이 타호를 한 컵 사왔다. 타호는 필리핀의 국민 간식이라고 할 만큼 인기가 좋은 길거리 음식이다. 우리의 순두부라고 볼 수 있는 두부에 설탕물 같은 달콤한 소스를 곁들여 먹는 것이다. 두부를 간장이나 김치와 먹는 것에 익숙한 우리는 달달한 두부가 어색했지만 맛있게 먹었다. 필리핀 사람들이 한 손에 들고 길을 다니며 먹는 음식이라고 하니, 작은 컵에 담긴 타호가 특별하게 느껴졌다.
짐을 싸고 탐아완 예술인 마을을 나섰다. 마이크의 차를 타고 바기오 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이제 바기오와는 안녕이다. 다시 찾아온다 해도 볼 수 없을 풍경, 사람에 관해 생각했다. 이때가 아니면 다시는 느낄 수 없는 것들에 관해 생각했다.
새로운 경험과 일탈은 무엇이 다른가 버스 창밖으로 초록 들판을 바라보다 말다를 반복했다. 졸다가 깼다가 푹 잠이 들었다가 그렇게 여섯 시간 정도가 지나고 마닐라에 도착했다. 처음 필리핀에 도착해 마주한 곳이라 그런지 반가웠다. 후텁지근한 기운이 싫지 않았다. 다시 만난 조조도 반가웠다.
점심을 먹고 바로 떠나왔는데, 저녁 먹을 시간이 좀 지난 때였다. 필리핀 사람들이 생일파티를 하거나, 특별하게 외식을 할 때 간다는 뷔페로 향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생일 축하 노래가 들렸다. 이곳에 있는 모든 음식을 먹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조금씩 먹으려 했는데, 몇 번 왔다 갔다 하다 보니 맛있는 것들이 있어 몇 음식을 많이 덜어와 먹었다. 탕이나 국 같은 것이 많았다. 시니강을 먹고 싶었는데 무엇이 시니강인지 알 수 없었다. 옆에서 음식을 푸던 필리핀 사람에게 무엇이 시니강인지 물어 몇 번을 담아 먹었다. 아무래도 이 쌉쌀하면서도 구수한 맛이 계속 생각날 것 같았다.
식당을 나와 마사지숍으로 향했다. 승균이는 누군가가 자신의 몸을 만지는 게 싫다며 동동과 함께 근처 카페에서 우리를 기다렸고 나머지 네 명이 마사지를 받기로 했다. 모르는 누군가가 내 몸을 마사지한다는 것이 나도 조금 어색했지만, 일단 해 보자 하는 마음으로 갔다. 그 길에 마사지숍이 많았다. 동동은 그 중 몇을 가리키며 관광객을 상대하는 퇴폐업소라고 말했다. 필리핀에 처음 오는 관광객들이 어디가 퇴폐업소인지 어떻게 알고 가느냐고 물었더니, 가이드가 데리고 간다고 이야기했다. 일탈이라는 이름으로 여행에서 허용되는, 스스로 허용하는 많은 것들이 참으로 무서웠다.
우리가 향한 곳은 필리핀 사람들이 주로 찾는 마사지숍이었다. 우리를 제외하고 숍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필리핀 사람이었다. 누군가에게 내 몸을 맡기고 편하게 있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여성 마사지사가 누워 있는 나를 마사지하며 몇 번이고 “릴렉스, 맴.” 하고 말했다. 몸에 힘을 빼자 편안했다. 오랜 시간 버스에 앉아 있어 뭉쳤던 근육들이 풀어졌다. 많은 패키지여행 프로그램에 왜 마사지 시간이 포함되어 있는지 이해가 됐다.
마사지숍에서 나와 첫날 묵었던 UP 호텔로 향했다. UP 호텔에 처음 묵었던 날에는 호텔이 쾌적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탐아완 예술인 마을에서 조금 불편한 잠자리를 경험하고 오니 UP 호텔이 그렇게 좋아 보일 수 없었다. 나 자신이 간사하게 느껴졌다.
필리핀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이었다. 아쉬움 때문에 쉽게 잠들 수 없을 줄 알았는데 눕자마자 잠에 빠져들었다. 필리핀의 마지막 밤을 기념하며 여행을 돌아보는 시간을 보내지도 못한 채 말이다.
언젠가 꼭 다시 만나 필리핀을 떠나는 날이다. 아침 식사를 하고 필리핀 상권을 장악하고 있는 쇼핑몰 몰 오브 아시아로 향했다. 함께 쇼핑몰을 둘러보고 쿨투라 라는 공정무역 가게에 들어가 구경했다. 도시 빈민들이 만든 것 중에 눈에 띄는 게 있었다. 깡통 마개로 만든 작은 가방이 예뻐 살펴보았는데, 생각보다 비싸 슬그머니 내려놓았다. 깡통을 주워 마개를 떼어내 가방으로 만드는 과정이 고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마트에 들러 기념품으로 말린 망고와 과자를 샀다. 4박 5일 여행하면서 처음으로 늘어난 짐이었다. 4박 5일 여행에 호랑이 연고도, 라텍스 베개도, 몸에 좋다는 차도 살 필요가 없었다. 사고 싶은 것이 있으면 각자가 직접 둘러보고 샀다. 우리 여행은 그랬다.
조조의 차를 타고 공항으로 향했다. 4박 5일 일정이 끝나가고 있었다. 조조와 인사를 나누는 것으로 필리핀과 인사를 대신했다. 아쉬웠다. 후회가 빠진 아쉬움이었다. 아쉬움이라는 감정은 종종 ‘왜 그때 그렇게 하지 못했지.’ 하는 후회와 함께 찾아왔는데, 후회가 완전히 빠진 아쉬움이란 감정은 기쁘면서도 슬픈, 묘한 것이었다.
말로만 듣던 필리핀을 짧게나마 느낄 수 있어 기뻤고 그 와중에 여행의 의미에 관해, 또 나란 존재에 관해 생각해 볼 수 있어 기뻤다. 그리고 다시는 볼 수 없을 풍경, 사람을 생각하며 슬펐다. 언제든 마음만 먹는다면 필리핀에 다시 올 수 있겠지만, 이 여행과 똑같은 여행은 할 수 없을 것이다.
공감만세와 함께 필리핀 여행을 떠나기 전, 그리고 여행 도중, 공정여행이 무엇인지에 관해 생각하고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공정여행을, 지역과 공존하는 여행이라는 짧은 말로 설명할 수 있겠지만, 내게 이것은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쉽게 말해, 공정여행은 생각하는 여행이었다. 쉬운 여행, 보는 여행이 아니라 ‘하는’ 여행이었다. ‘어디를 갔었지.’로 기억될 여행이 아니라, ‘무슨 생각을 했었지.’로 기억될 여행이었다.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