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한 대안을 찾는 사람들

공정한 대안을 찾는 사람들 [필리핀 답사 여행기_월간토마토 성수진 기자] 생활공간에서 생활자를 바라보았다
  • 공감만세
  • 2014-11-17
  • 2806

여행정보

여행장소
필리핀 바기오 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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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이고롯과 탐아완에서 만나다

 글_월간토마토 성수진 기자

 

 

 

필리핀. 이 한 단어가 주었던 이미지가 참 많았다. 한 번도 그 이미지의 실체를 보고 듣고 느껴본 적 없이, 어떻게 혼자 상상했던 걸까. 공감만세와 함께하는 필리핀 공정여행을 시작하며, 여행 인솔자 이형동(이하 동동) 팀장이 작은 메모지 한 장을 건네며 필리핀 하면 떠오르는 것들을 적으라고 했다. 바나나, 휴양지, 더위. 세 단어를 쓰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지만, 정작 필리핀 하면 떠올랐던 성매매 관광, 코피노 등은 쉽게 적을 수 없었다.

 

필리핀 하면 즉각적으로 떠오르곤 했던 어둡고 유쾌하지 못한 이미지 때문에, 누군가에게 상처 준 적이 있다. 필리핀에서 지내다 온 누구에게 ‘필리핀에 유학하는 사람들이 문란하게 논다고 들었다.’라며 비수 같은 말을 했었다. 필리핀이 잠시 일탈하는 곳, 많은 것이 허용되는 곳이 아니라, 누군가에게는 그저 생활공간일 뿐이란 생각은 하지 못했었다.

 

공감만세와 함께 4박 5일 동안 필리핀을 여행하며 무엇보다 ‘생활공간’으로서의 필리핀을 마주하고자 노력했다. 그러며 만난 사람들 덕분에 나를 돌아보는 기회를 얻은 것은 덤이었다.

 

 

잘못 알았던 것과 처음 안 것

 

함께 여행하는 여섯이 인천공항에 모였다. 동동을 제외한 넷은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다. 대학생 소현과, 고등학생 승균 남매, 대학생 준원, 고등학생 지원. 4박 5일 동안 이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울 거라고는 처음에는 생각지 못했다.

 

마닐라 나이아 2 공항에 내려 실재하는 필리핀과 마주했다. 바람이 불었지만, 덥고 습했다. 우리를 필리핀 국립대학(이하 UP) 호텔까지 데려다 줄 현지인 조조와 인사를 나누고 화장실부터 갔다. 청소하는 아주머니가 짜증이 섞인 어투로, 따갈로그어로 뭐라 말했다. 정황상 물이 잘 내려가지 않는 변기의 사용법을 설명하는 듯했지만, 이해할 길이 없었다. 영어로 이야기해 주길 바라는 마음에 되물었지만, 아주머니는 말소리를 높일 뿐이었다. 아주머니가 영어를 쓸 수 있으면서 일부러 못 알아듣도록 따갈로그어로 나쁜 말을 내뱉는 건가 생각했다. 필리핀이 따갈로그어와 영어를 공용어로 쓴다는 것만 알았지, 영어를 못 익힌 사람이 많다는 것은 나중에 알았다. 따갈로그어를 쓰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더더욱 몰랐던 첫날이었다.

 

덥고 습한 기후, 그리고 이 때문에 우리나라 것들과는 다른 모습을 한 온갖 식물이 이곳이 ‘다른 나라’임을 알렸다. 그리고 조조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나선 도로에서, 또 다른 낯선 모습을 보았다. 자정이 다된 시각이었지만, 도로는 차들로 복잡했다. 깜빡이를 켜지 않은 채 좌우에서 갑자기 들어오는 차들, 매섭게 들리는 클랙슨 소리. 초보라면 운전대를 잡기 어려울 것 같은 도로 환경에 입이 벌어졌다.

 

눈에 띈 것은 오토바이를 개조해 사람이 탈 수 있는 공간을 더 만든 트라이시클, 지프차를 개조해 만든 지프니다. 트라이시클과 지프니는 필리핀 사람들이 편하게 이용하는 대중교통수단이다. 그리고 그다음이 창문이 없는 버스, 창문이 있어 에어콘이 가동되는 버스, 그다음이 택시다. 자가용으로는 도요타, 혼다 같은 일본 차와 현대와 기아 같은 우리나라 차도 눈에 띄었다.

 

UP로 가기 전, 16차선 도로에 들어섰다. 다니는 차들만으로도 혼잡한데, 그 가운데 사람들이 무단횡단 하는 모습이 위험해 보였다. 그렇게 UP 호텔에 도착했다. 로비에 고양이 한 마리가 유유히 지나가고 있었다. 호텔 안으로 들어온 길고양이를 굳이 쫓아내지 않는 것이 이들의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서로 다른 두 얼굴, ‘가까운’ 두 얼굴

공감만세와 함께하는 필리핀 여행 이전에 다른 나라를 가 본 적이 두 번 있다. 두 번 모두 이름난 여행사의 패키지로 떠난 여행이었다. 평소라면 자보지 못할, ‘몇 성급’ 호텔에서 자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여행, 관광버스에서 내려 관광지를 둘러보고 다시 관광버스에 타기를 반복하고, 호랑이연고나 건강보조식품, 보석, 라텍스 등을 파는 상점에 들러 찝찝하면서도 ‘혹하는’ 마음에 사는 기념품들로 기억되는 두 번의 여행과 공감만세와 함께한 여행은 정말 달랐다.

 

UP 호텔 방에 처음 들어섰을 때 마주한 낯섦. 해외 여행지에서 처음 마주한 잠자리였다. 편하게 샤워할 수 있는 욕실과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포근한 침대는 없었다. 내가 평소에 씻고 자는 곳과 크게 다를 바 없는 곳, 어쩌면 더 좋지 않은 이곳이 어리둥절했다. 그런 하룻밤을 보내고, 필리핀에서 처음 아침을 맞았다.

 

우리의 첫 일정은 UP를 걷는 것이었다. UP는 미국 식민 시절에 만든 국립대학이다. 더 잘 사는 사회를 고민하는 데 교육이 필수적이었고, 능력만 있다면 빈부에 상관없이 공부할 수 있는 곳을 꿈꾸며 만든 것이 UP다. UP는 필리핀 민주주의와 인본주의 정신의 산물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미군정하 고위 공직자를 만들어 내기 위해 미국식 교육 제도를 따른 두 모습을 지녔다. 필리핀 국가에서 만든 모든 대학이 필리핀 국립대학교 즉, UP이고, 각 지역의 UP마다 지역 이름이 붙으며 지역마다 특화된 교육 과정이 있다.

 

학교 내에 지프니들이 다녔다. UP 딜리만은 ‘UP 동(洞)’이 따로 있을 정도로 넓다. 그리고 캠퍼스 안에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 있다. 그 넓은 캠퍼스를 걸으며 지프니를 타거나 걸어서 등교하는 학생들을 바라보았다. 운동장 잔디에 앉아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도 있었다. 덩치가 큰 나무가 쭉 늘어선 넓은 길, 빼곡한 나무 사이로 좁게 난 길들을 걸었다. 마치 햇살 좋은 일요일에 여유롭게 산책하는 듯했다.

 

점심은 쿠바오 버스 터미널로 가는 차 안에서 먹었다. 필리핀의 ‘국민 패스트푸드점’, ‘졸리비’ 드라이브 쓰루에서 치킨 한 조각과 밥을 함께 주는 세트를 사 먹었다. 100페소 정도, 우리나라로 따지면 3천 원 정도 가격이다. 동동에게서, 평범한 필리핀 사람은 35페소 정도면 밥을 사 먹고, 도시 빈민은 한 끼로 30페소를 쓰는 게 어렵다고 들었다. 음식물 쓰레기를 골라내 다시 가열해 먹는 도시 빈민도 있다고 했다. 음식물 쓰레기를 다시 먹는 사람도 있다는데, 필리핀에서는 드라이브 쓰루가 우리나라보다 먼저 생겼다고 한다. 인건비가 싼 필리핀에 서비스업이 발달했다는 것이다.

 

동동에게 설명을 듣고, 치킨과 밥을 먹으며 차창 밖으로 보이는 세상이 마음에 박혔다. 크고 좋아 보이는 건물들과 판잣집이 멀지 않은 거리에 있었다. 아니, 바로 옆에 있었다.

 

 

쿠바오 버스 터미널에 내려 둘러본 쿠바오의 모습도 비슷한 충격을 주었다. 노점상이 늘어선 육교 위, 진열해 놓은 옷들 아래로 아이가 오줌을 누고 있었고, 돈 통을 두고 구걸을 하는 아이, 얼굴 한가득 문신을 하고 몸을 늘어뜨린 아이도 있었다. 어디에 시선을 두어야 할지 모르겠던 육교를 지나 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입구에서 소지품 검사를 하는, 시원하고 쾌적한 쇼핑몰이었다. 조금 전에 보았던 풍경과는 사뭇 다른 모습. 필리핀의 서로 다른 두 얼굴에, 그 두 얼굴의 ‘가까움’에 놀랐다.

 

 

여행, 그리고 여행 중에 생각하는 '여행'

내부에 간이 화장실이 있고, 물과 빵을 나누어 주는 일등석 버스에 탔다. 달리는 버스에서 와이파이를 쓸 수 있는 이 버스는 보통 필리핀 사람들이 이용하기에 비싼 편이어서, 돈이 많거나, 정말 급한 일이 있는 사람이 아니면 쉽게 탈 수 없다고 했다. 어디나 그렇겠지만, 어느 정도 돈을 내면 서비스가 정말 좋아지는 곳이 필리핀이었다.

 

쿠바오에서 바기오까지는 다섯 시간 반 정도가 걸렸다. 한 번도 쉬지 않고 쭉 뻗은 고속도로를 달렸다. 잠깐 잠이 들고 다시 깨어 창밖 풍경을 바라보았다. 푸른 들이 이어졌다. 간간이 작은 집들과 물소가 보였고 마을이 보였다. 아름다운 풍경을 뒤로하고 잠이 들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산 위에 색색 집들이 옹기종기 자리한 바기오 시내가 눈에 들어왔다. 다큐멘터리에서나 볼 수 있을 것만 같던 풍경을 직접 보는 것 자체가 기쁜 순간이었다.

 

산악지대인 바기오는 시원했다. 점퍼를 입은 사람들도 보였다. 마닐라보다 한적하고 깨끗했다. 호텔에 짐을 내려놓고 저녁 식사를 하러 가는 길. 오랜만에 맞는 시원하고 상쾌한 공기가 좋았다. 좋은 공기를 마시다가도 지프니가 지나가고 나면, 매연에 코를 막게 됐다. 2차 대전 때 미군이 두고 간 지프를 개조해 만든 지프니에서 매연이 많이 났다. 지프니는 일정한 운행 구간만 정해 두고 승객이 내리고 싶은 곳에 내려 주는 탓에 교통 체증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그렇지만 자가용이 없는 평범한 필리핀 사람들의 교통수단으로 꼭 필요한 것이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게 지프니였다.

 

저녁을 먹으러 간 식당에서 처음 시니강을 접했다. 필리핀 사람들이 즐겨 먹는 국인 시니강, 시큼한 맛이 입맛을 돋우었다. 토마토와 생강, 무, 여러 채소를 넣고 돼지고기나 해산물을 함께 끓여 먹는 것인데, 이날 먹은 시니강에는 생선이 들어 있었다. 처음 맛보았을 때는 어색했지만, 두세 번 떠먹다 보니 구수하고 고소하고 시큼하고, 뭐라 형용할 수 없는 맛이 매력적이었다.

 

 

 

필리핀의 영웅 중 한 명인 호세 리잘 동상을 보고, 바기오 시청과 번햄 공원을 둘러보고 야시장이 열리는 때에 맞춰 시장으로 향했다. 빼곡하게 들어선 노점상들이 진풍경을 이루고 있었다. 음식, 옷, 장신구 등 다양한 것을 파는 상인들에게 “하우 머취 이즈 잇?” 하고 물어보는 것도 즐거웠다.

 

편의점에 들러 먹을거리를 산 우리는 호텔로 돌아와 한 방에 모여 이야기를 시작했다. 동동은 우리가 하는 것이 ‘공정여행’이며, 공정여행은 스스로 만들어 가는 여행이라고 했다. 여행 중에 공정여행에 관해 설명하겠지만, 그것에 얽매이지는 않겠다며, 스스로 여행의 의미를 찾아가 보자고 말했다.

 

첫날보다 좋은 호텔 방에 누워 ‘여행’에 관해 생각했다. 생각보다 ‘근사한 것’이 없는 것이 우리의 여행이었다. 버스에 내렸다 탔다를 반복하며 유명하고 멋진 관광지의 기억을 사진으로 대신하는 여행이 아니라 한 곳에 조금 더 느긋한 마음으로 머무르며, 여행지가 아니라 생활공간으로서의 한 공간과 생활자로서의 한 사람을 만나는 것. 이런 것이 여행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둘째 날 밤을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