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진_김태형 여행운용 2팀 팀장
호주답사기를 시작하기 전에 1년 전 나는 호주 워홀러였다. 6개월간 일을 하여 돈을 모았고, 그 돈으로 3개월간 여행을 다녔다. 여행은 배움의 연속이었다. 새로운 곳을 가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새로운 생각들을 할 수 있었다. 호주에서의 많은 경험들은 나에 대하여 많은 것들을 되새기게 하였다. 책에서만 보았던 호주에 대해서도 직접적으로 알 수 있었다.
열심히 하는 동양 사람들과 다르게 일을 미루거나 뺀질거리기 바쁜 호주인들을 보며 나는 ‘호주인은 게으르다’고 생각했다. 자기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손님에게도 단호하게 NO를 외치는 호주인들을 보며 나는 ‘호주인은 이기적이다’라고 생각했다. 원주민들을 원주민 보호구역으로 내쫓고 이 커다란 대륙을 백인의 땅으로 만들어낸 호주인들을 보며 나는 ‘호주인은 나쁘다’라고 생각했다.
여행을 하는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이야기했다. “떠나지 않았으면 알지 못했을거야.” 여행을 하며 나는 호주를 좋아하기 생각했다. 호주의 아름다운 자연 환경, 사회 복지 시스템, 여유로운 사회 분위기. 그러면서 이런 곳에 살고 있는 호주인들은 참으로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부러웠다고 보는 게 맞겠다. 우리는 조그만 나라에 5,000만 인구가 아등바등 거리며 지금 이 순간에도 피 터지는 경쟁을 해가며 살아가고 있는데, 이들은 한국인보다 부지런하지도 열심히 살지도 않으면서 왜 이런 행복을 누려야 하는가. 알고 싶어졌다. 호주인들은 어떻게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었는가.
200일이 넘는 시간동안 호주를 돌아다니며 나름의 답을 얻었으나 나의 수많은 생각들은 완전하지는 못한 것이었다. 의사소통으로 인한 문제였을 수도, 타고난 게으름이었을 수도, 배낭여행객의 한계였을 수도 있다. 모든 순간순간을 스스로의 경험을 통해 재단하고, 판단하며, 가치내리고 있었다.
혼자 떠나는 여행은 너무나 좋지만, 소통과 배움은 사람과 함께 할 때 완벽해진다. 혼자서 떠나고 혼자서 생각하는 이야기는 스스로의 기준으로 모든 것을 재단하고 바라보는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다. 호주인의 목소리를 듣는 여행을 떠나고 싶었다. 그들의 속에 있는 깊은 이야기를 듣고 싶은 갈망이 생겼다. 호주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여행을 하리라. 나는 소망했고, 그 꿈은 생각보다 빠르게 이루어졌다.
지금부터 내가 할 이야기는 그 꿈을 위한 10일간의 호주 답사기(라고 쓰고 여행기라고 읽는다.)이다. 이번 호주여행은 실제로 호주에서 오랫동안 살아 계신 분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그들이 바라보는 호주를 이해하기 위하여 최대한 노력하였다. 그 10일간 느꼈던 것들 중 일부는 여전히 내 머릿속에 물음표로 남아 통통거리며 끊임없는 질문을 잉태하는 중이다. 그 질문에 어느 정도 답을 내릴 수 있을 때 내 삶은 조금 달라질 것이라고 확신한다.
10일간의 호주 답사기라고 명명하기는 했으나, 10일안에 호주 전체를 돌아봤을 리 없다. 우리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주 무대는 호주에서도 북부에 위치한 조그마한 도시, 케언즈다. 호주의 땅덩어리가 아무리 넓다고는 하나, 호주 땅의 80%는 아웃백이라고 하는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이다. 2000만이 조금 넘는 호주인은 바닷가를 끼고 둥그렇게 도시를 이루고 살아가고 있는데, 그 대표적인 도시들이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시드니, 멜버른, 캔버라다.
케언즈는 조그마한 도시다. 인구는 겨우 15만. 서귀포의 인구와 비슷한 숫자다. 케언즈하면 역시 바다다. 호주의 북쪽에 위치한 케언즈는 1년 내내 20도 이상의 열대성 기후를 가지고 있는데 이런 온화한 기후는 세계에서 최고로 아름다운 바다로 꼽히는 ‘그레이트베리어리프’와 만나 케언즈를 세계 최고의 해양 스포츠 천국으로 만들어 주었다. 특히 내가 호주를 찾았던 8월은 케언즈 여행의 최성수기중 하나로써, 남반구인 호주에서 겨울에 해당하는 지금은 약 20~30도에 온화한 기후를 자랑하여 다채로운 케언즈의 해양 액티비티를 즐기기에 최고의 시기라고 한다.
우리의 첫 일정은 하나원 서대표님과의 미팅으로 시작되었다. 우리의 케언즈 여행은 감사하게도 참 많은 분의 도움을 받았는데, 가장 큰 도움을 주셨던 분이 바로 이 서한나 대표님이셨다. 케언즈에서 가장 오래된 한인 유학원 및 여행사를 운영하고 계신 서대표님은 이번 답사가 원할히 이루어 질 수 있도록 많은 조언과 도움을 아끼지 않아주셨다. 가벼운 첫 미팅을 마치자마자 서대표님은 아름다운 케언즈의 바다를 보여주시겠다며 우리를 데리고 팜코브로 드라이브를 가셨다. 팜코브는 케언즈 북쪽에 위치한 곳으로 여러 리조트와 까페들이 위치한 휴양지다. 아쉽게도 파도가 너무 거세서 바다가 다 흙탕물처럼 뒤집어지는 바람에 경치는 그렇게 아름답지 않았다. 정작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건 바다가 아니라 리조트였다.
나는 리조트는 다 고층빌딩에 깔끔하고 삐까뻔적한 줄 알았다. 촌티내서 미안하다. 가난한 배낭여행객이 리조트 가 볼 일이 뭐가 있겠나. 내게 여행 숙소는 언제나 게스트하우스 또는 홈스테이였다. 그런데 이 곳 팜코브의 리조트는 내 생각 속 리조트가 아니었다. 일단 지저분하다. 리조트하면 잔디밭에 정돈된 맛이 있어야 되는데 어디까지가 정원이고 어디까지가 건물인건지, 나무들이 건물과 뒤엉켜있다. 그 뿐인가. 천장에 뚫린 구멍 사이로 나무가 힘차게 줄기를 뻗었다. (알고보니 예부터 이 곳을 지키고 있던 커다란 나무를 자를 수 없어 리조트를 만들 때부터 구멍을 뚫었댄다.)
리조트가 지어지면서 어떻게 환경파괴가 안될 수 있으냐마는, 리조트를 짓는다며 모든 것을 싹 밀어내고는 천편일률적으로 잔디를 깔고 야자수를 박아대는 한국의 리조트들과 비교하자니 부럽기 이를데 없다. 빛을 바래 누르스름해진 하얀 건물이 초록빛의 거대한 열대우림과 만나 독특한 하모니를 뽐낸다. 리조트나 호텔이라고 하면 일단 거부감을 가지고 바라보는 나의 삐딱한 시선마저도 조금 부드럽게 만든다.
케언즈가 최고의 해양액티비티 천국이라지만, 케언즈의 모든 바다가 수영에 적합한 것은 아니다. 케언즈 시내 바로 앞에 위치한 바다는 개펄과 같이 되어 있는 흙탕물이라 수영에 적합하지 않다고 한다. 이 개펄이 또 그냥 개펄이 아니다. 산호들과 수많은 해양생물이 살고 있는 생태환경의 보고다.
케언즈 최고의 노른자 땅에 위치해 있기에 이 곳을 비치나 휴양지로 개발시킬 수도 있었을텐데, 호주인들은 그러지 않았다. 바다와 육지사이에 긴 방파제를 만들어 일차적으로 사람들이 쉽게 바다에 건너갈 수 없게 했다. 또한 바다는 그대로 두고, 바닷가를 바라볼 수 있는 조금 떨어진 곳에 거대한 돈을 투자하여 라군이라는 인공수영장을 만들었다. 800억이 넘는 엄청난 돈이 들어, 공사당시에는 꽤 논란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지금은 그야말로 케언즈를 상징하는 존재가 되었다.
팜코브와 라군을 돌아보는 내내 제주도 생각이 참 많이 났다. 제주도의 중산간 지역에서는 지금도 포크레인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자연유산으로 지정된 한라산은 개발할 수 없으니 중산간 지역을 호텔등으로 개발하는 것. 자연과 어우러지는 개발을 택한 그들의 모습이 부러워, 자꾸만 내 고향 제주도가 눈 앞에 아른거렸다.
사실 대기업과 같은 개발론자들만을 욕할 일은 아니다. 나라가 장기적인 관점에서 시스템을 갖고 접근해야할 문제라고 본다. 그런데, 이 나라는 오히려 관광 산업을 육성하겠다며 각종 규제들을 잔뜩 풀고 개발을 부추기고 있다. 우리는 중국인들이 제주도에 많은 호텔을 짓는걸 보며 이러다 중국땅이 되겠다며 혀를 끌끌 찬다. 그런데 이 나라는 제주도에 5억 이상의 투자를 한 사람들에게 영주권까지 주며 개발을 부추기고 있다. 나라를 욕해야 하나 사는 사람을 욕해야 하나. 도대체 무엇까지, 어디까지 팔아먹을 셈인가.
참을 수 없는 식욕 때문에 재산을 바닥내고, 딸을 판 것까지 모자라서 자신의 몸을 먹어 치워 이빨 한 쪽만 덩그러니 남아 버린 그리스 신화속 에리시크톤의 이야기를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에리시크톤은 ‘굶주린’의 신 리모스의 저주에 걸려 그렇게 되었다면 우리는 어쩌다 이렇게 되버린건지. 인간의 욕심보다 무서운건 없는 법이다.
라군의 야경은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야경 탓에 괜스레 마음 한구석이 더 아렸다.
서대표님이 청소년 홈스테이 프로그램을 우리도 체험해 보아야 한다며 호주 현지인의 집으로 초대를 해주셨다. 우리가 찾았던 집 주인은 이안이라고 하는, 케언즈에서 꽤 유명한 영어 선생님이었다. 우리가 이안 선생댁을 찾았을 때에는 이미 이웃인 히쓰네 가족이 놀러와 있었다. 히쓰에게는 아들이 있었는데 우리가 이야기 하는 동안 집 바로 앞의 물웅덩이에서 한참을 나오지를 않기에 물었더니 물고기를 잡는 중이란다. ‘얘네한테 잡히면 그게 물고기냐’하며 코웃음을 쳤는데 웬걸. 비록 손가락만한 피라미긴 하지만 양동이 하나 가득 물고기를 잡아왔다.
옆에서 히쓰가 덧붙였다. “아들의 또래 친구들을 보면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않죠. 하지만 우리 집에는 컴퓨터가 없어요. 아이들은 학교 수업이 끝나면 이 곳에서 자연과 함께 놀며 자랍니다.”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않는 청소년의 모습은 한국만의 문제는 아닌 듯 했다. 이안이 내게 말했다. “사람과 대화를 하는 순간마저도 손에서 핸드폰을 놓지 않는 건 미친 짓이야. 휴대폰이 사람에게 많은 자유를 준 것 같지만, 휴대폰만큼 사람을 구속하는 존재도 없어. 우리집은 전화도 터지지 않아. 일을 마치고 집에 오는 순간 나는 모든 순간을 오롯이 내 아내와 내게만 집중하지.”
조용한 시골 정원마을에서의 삶을 실천하는 이안은 참으로 흥미로운 인물이었다. 나랑 눈이 마주칠때마다 씨익 웃으면서 ‘One more beer?'을 외치던 그는 참으로 순박한 인상의 동네 할아버지이면서도 자신만의 철학으로는 똘똘 뭉쳐있었다. 그는 내게 말했다. “나는 매일 아침 5시가 넘으면 잠에서 깨어 집에서 나설 준비를 하고, 학교에 도착하여 7시가 되면 아이들을 가르칠 준비를 하지. 나는 선생님이 된지 30년이 넘었지만 매일 아침 이 2시간의 수업준비를 단 하루도 거른적이 없어. 호주인들이 게으르다고 생각하지? 나는 동의할 수 없어. 너희가 알고 있는 게으른 호주인들은 호주에서 가장 낮은 질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라고. 어느 나라에 가나 그런 일들을 하는 사람들은 가장 게으른 사람들이야. 이 나라를 움직이는 사람들은 세계 그 어느 나라보다 부지런히 일하는 이들이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