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진_이형동 코디네이터
다양한 이유로 사람들은 여행을 떠난다. 힐링을 위해, 경험을 위해,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기위해, 때로는 아무런 목적없이 떠나기 위해.. 8월. 오후에 도착한 인천공항은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생각을 가지고 한국밖의 세상으로 여행을 가기위해 가득히 모여있는 모습으로 우리를 반겨주었다.
공감만세는 이번에 새로운 필리핀 공정여행을 하나 시작했다. 한국인들에게는 익숙한 지역, '바기오'로 떠나는 공정여행이었다.
바기오 공정여행은 공감만세가 처음 설립될 때 부터 시작되었던 나름의 역사와 이야기가 있는 여행이었는데, 그동안 탐방이나 연수중심으로 다녀오는 여행이 주를 이루었던터라, 특별한 목적없이 공정여행 자체로 여행을 떠나게 되는 것은 실로 오래간만이었고, 더욱이 필리핀의 여럿지역을 돌아보는 장기여행이 아닌 바기오 집중해서 짧게 다녀오는 바기오 공정여행은 새로운 시도였다.
필리핀 방언 중 하나인 '이고롯'어(語)로 '탐아완'은 '유리한 고지' 내지는 '높게 솟은 정상'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결국 탐아완이라는 말은 '높은 곳' 정도로 이해되는데, 이 말처럼 탐아완은 바기오 지역에서도 높은 산능선이에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 구름한점없이 맑은 날씨가 되면 탐아완 마을의 정상에서는 저 멀리 필리핀해 또는 중국해의 모습이 보인다고 했다.
이처럼 높고 뻥뚤린 자리에 위치한 탐아완은 90년대까지만 해도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이었다. 여기에 필리핀의 유명한 화가인 '베네딕토 카브레라'가 이끄는 필리핀 문화예술재단인 '차움재단(Chaum)'이 필리핀 현대미술관 중 하나이자 앞에서 말한 '베네딕토 카브레라'의 애칭이기도 한 '벤캡미술박물관(Bencab Museum)'과 필리핀 문화에 뿌리를 두고 활동하는 자국 예술인들에게 영감을 주고, 미술경매나 전시회 지원과 같은 경제적 지원을 위해 예술인 특화 마을 '탐아완 마을'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탐아완이라는 지역은 필리핀의 문화예술의 대표적인 상징 중 하나가 되기 시작했다.
수도없이 많은 지역중 '베네딕토 카브레라'는 왜 바기오를 중심으로 예술활성화 정책을 펼쳤을까? 이 질문을 따라가다보면 자연스럽게 필리핀 사람들에게 '바기오'라는 지역이 가지는 감정 내지는 상징성을 살펴볼 수 있다. 열대성 기후인 여름의 나라 필리핀이지만 실제 국토의 넓이는 한국의 배에 해당한다. 한국도 남북을 살펴보면 다양한 기후와 식생들이 포진되어 있는데, 그보다 더 넓은 지역을 국토로 삼고있는 필리핀은 못해도 우리의 배에 해당하는 식생과 기후를 가지고 있다.
이 중 바기오는 필리핀 수도 마닐라에서 차로 쉬지않고 7시간 가량을 달려야만 닿을 수 있는 지역으로 높은 산악지역에 마을이 만들어져 있다. 덕분에 일년내내 선선한 기후를 유지할 수 있었고, 열대성 기후지대인 필리핀에서는 드물게 시원한 곳에서 자라는 소나무가 꼿꼿하게 잘 자라는 환경을 만들어 냈다.
덕분에 우기가 되면 영상 10도 아래로 기온이 떨어져 여름나라 필리핀에서 사람들이 털모자와 패딩점퍼를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진풍경을 자연스럽게 볼 수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이런 특성 때문에 높은 기온에서는 쉽게 자라지 못하는 채소와 과일이 날씨에 구애받지 않고 무럭무럭 자라날 수 있고, 멀지않은 거리에 필리핀해 / 중국해가 있어 생선류를 구하기도 쉬워 예전부터 다양한 식재료를 신선한 상태로 구할 수 있는 지역이었다.특히 바기오하면 딸기가 유명한데 이 역시도 선선한 바기오의 날씨 덕에 딸기가 잘 자라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해서 몇몇 필리핀 여행안내책자를 보면 만약 당신이 바기오에서 먹는 음식에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면, 필리핀 어디에서도 맛있는 식사를 할 수 없을 것이다.' 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바기오는 필리핀의 맛을 대표하는 지역이다.
또한 앞에서 이야기되었던 이고롯도 하나의 상징인데, 이고롯은 필리핀에서 옛부터 나고 자라온 종족을 의미한다. 이 이고롯족은 그들의 언어인 이고롯어로 산에서 온 사람들 내지는 산(山)사람을 뜻한다고 한다. 필리핀 루손섬 북부를 관통하는 산맥인 코딜리예라산맥을 타고 내려온 여럿 산줄기들로 이루어져 지형인 바기오는 덕분에 사람들이 사는 지역을 제외하고는 까마득한 절벽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다시 돌아와서, 이 코딜레라 산맥은 독특한 문화를 가진 종족들이 고대부터 살아왔는데 이고롯도 이들 중 하나이며, 자신의 종족의 문화에 맞추어 변형되었다 하지만 쌀의 신 '불룰'을 숭배하고 호전적인 성향을 보이는 특성을 공유하고 있다. 이들이 공유하는 특성은 그 특별함과 원시성 그리고 신비성 때문에 20세기 후반 필리핀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고대적 전통의 하나로 인식되기 시작했고, 정부의 관광전략과 흐름을 같이 해 어느순간 필리핀의 고대성을 이야기하는데 가장 대표적인 요소 중 하나로 자리잡게 되었다. 때문에 바기오는 필리핀 사람들에게 있어 민족의 정신적 뿌리라는 상징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바기오는 앞서 살펴본 기후적 특성인 '선선함' 때문에 한 때 필리핀 정부의 공식적인 여름수도 였기도 했다. 덕분에 과거에는 여름이 되면 필리핀 중앙정부가 임시적으로 마닐라에서 바기오로 이동하기도 했었고, 그 당시 필리핀 대통령이 머물렀던 화려한 별장을 지금도 바기오에 가면 볼 수 있다. 여러모로 바기오는 마닐라 다음으로 필리핀 사람들에게 익숙한 지역인 것이다.
이렇게 필리핀 사람들에게 남다른 의미가 있는 바기오는 한편으로는 한국인들에게도 마닐라 다음으로 유명한 지역중 하나이다. 바로 이처럼 시원한 기온과 소나무가 주는 익숙함 때문인지 한국인 선교사, 영어어학원, 한국인 이민이 많은 지역이기도 하다. '한국인의 침공'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많은 한국인들이 바기오에 머물고 있고, 한국인 사회는 바기오의 지역경제를 움직이는 작은 동력이 되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짤게는 한달 길게는 일년정도 바기오에 머무르다 다른 나라로 옮겨가는 유학생들이 중심이라 위에서 말한 바기오의 모습을 경험하기란 쉽지않다. 반면 옛 미군주둔기지 '캠프존헤이'를 중심으로 바기오 시내에 형성된 쇼핑과 술집, 라이브바, 레스토랑의 거리인 '세션로드'는 특유의 화려함과 멋짐을 뽐낸다. 그래서 한국인에게 바기오는 돈을 쓰는 화려한 세션로드의 이미지로 남기 쉽다. 필리핀의 정신적 뿌리가 되는 지역이 외지사람인 우리에게는 다른 방식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그래서 공감만세는 탐아완 마을과 함께 바기오의 앞과 뒤를 외지인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활동들을 고민했었다. 이론적이거나 가르치려거나 하는 모습을 최대한 줄이고 바기오에서 만나고 이야기하고 경험하는 활동 하나하나를 통해 자연스럽게 바기오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공정여행 속에 녹여내고자 하였다. 그리고 공정여행과 바기오를 연결해주는 고리역할을 탐아완 마을의 예술이 채워주도록 했다.
여기서 잠깐 탐아완의 예술이라는 부분을 살펴보면, 미술이나 음악계통의 예술분야 전공자가 아니라도 자기만의 예술적 감수성과 이를 표현해내는 기법이 있다면 누구나 차움재단의 후원을 받을 수 있고, 탐아완 마을에서 자유롭게 예술활동을 할 수 있다. 우리들이 탐아완에 머무르는 동안에 '드림캐쳐'를 만드는 워크샵을 운영했던 예술가 로나와 코딜리예라 산맥의 다양한 종족들의 전통춤과 악기연주방식을 배우고 체험해보는 워크샵을 운영했던 두명의 청년들도 전직 간호사와 현직 대학생이라는 생업(?)을 가진 사람들이었지만 탐아완의 교육과 관리를 배경으로 전문적인 문화예술교육을 우리들에게 해주었었다.
별다른 배경이나 지식보다 자신의 감수성과 표현력을 중요시하는 탐아완의 예술정책은 그들 특유의 열린운영방식이 주는 여유로움 때문인지 한국인들로 구성된 여행단체인 우리들도 많이 낯설었던 필리핀의 문화예술들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를 주었다. 그렇게 탐아완 마을의 유일한 한국인이였던 우리들은 드림캐쳐도 만들고 필리핀 춤도 추면서 이고롯의 삶에 잠시나마 스며들었었다.
이번 바기오 공정여행은 고등학생과 대학생 그리고 문화예술기자라는 독특한 조합의 여행자들과 다녀올 수 있었다. 여행인솔자의 입장에서 여행을 함께하는 사람들의 다양성은 큰 매력과 걱정거리이다. 많은 사람들의 저마다의 생각을 만족시킬 수 있어야 하는데 모두를 만족시킨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헌데 이번 여행자 조합은 연령으로는 10대부터 20대, 배경으로는 예술분야전공자와 비전공자, 지역으로는 대전과 수도권이라는 특성까지 어떻게 묶어도 하나로 엮어지지 않는 조합이었다. 하지만 여행속에서 어색하게 때로는 자연스럽게 이야기하고, 워크샵의 형식으로 자연스럽게 자신을 표현하는 경험속에서 나이나 배경보다는 여행을 함께 온 동료라는 공통점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나 자신의 이야기들을 나누기 시작했다.
필리핀의 정신적 뿌리에서부터 필리핀 예술가들의 다양한 작품활동까지 왕복 14시간의 여행길을 종횡무진하며 달려온 바기오 공정여행은 화려한 쇼, 진귀한 산해진미 대신 일상적인 만남과 내 손으로 직접 작은 구슬들을 꿰어 만드는 드림캐쳐를 통해서도 우리가 여행속에서 휴식과 행복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여행의 영감을 주었던 반짝이는 기회로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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