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한 대안을 찾는 사람들

공정한 대안을 찾는 사람들 [서유럽 답사 여행기_공감만세 전한별 코디] 파리의 빛을 뒤로 하고 걷기, 그리고 경험하기
  • 공감만세
  • 2014-08-06
  • 1888

여행정보

여행장소
서유럽(프랑스, 독일) 일대
관련상품
서유럽 인문학 여행학교

글/사진_전한별 코디네이터

 

 

이번 여름은 유럽 전역에서 유난히 공사가 많았다.  프랑스에선 보통 비가 오지 않는 여름에 보수공사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나,  공사장을 가리는 멋없는 광고가 인쇄된 현수막과 철골들로 치장된 파리는 관광책자에 수록된 사진처럼 반짝이진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낡고 음습한 외관을 지닌 파리의 지하철은 한층 더 꿉꿉한 먼지를 일으키며 달렸고, 그럴 때 마다 입 안이 텁텁해졌다공사로 인해 운행을 줄인 몇몇 지하철 노선을 보며,  파리 동역에서 스트라스부르 발 열차를 기다리던 중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혔다.

‘우리의 여행이 결코 부드럽게 진행되지만은 않겠구나.

 

 

그리고 둘째 날, 새로운 나라에 대한 동경과 경외심으로 반짝이던 눈빛이 파리의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내뿜는 피곤함 섞인 한숨과 메마른 표정에 점점 흐려지는 것에 그 예감이 실제로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목적지마다 역이 공사 중이었기에 조금 돌아가거나 걷는 것을 선택해야 했고, 그때마다 잘 참아오던 어린 친구들이 지쳐가는 것을 보고 나도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가장 예기치 않은, 그리고 가장 당황스러웠을 사건은 단연 19일 생투앙 벼룩시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만난 사고일 것이다.

그때 당시는 상황을 알 수 없었으나, 우리가 들어가야 했던 Porte de Clignancourt 역이 네 정거장 떨어진 Barbès-Rochechouart역에서 터진 친팔레스타인 파의 과격 시위로 인해 출입이 통제된 상태였고, 언제 다시 문이 열릴지는 알 수 없었다.

그날 하루 아무 문제 없이 집에 돌아갈 것을 예상했던 나는 당황하기 시작했고 다른 선생님들과 함께 방법을 강구했다.

하지만 딱히 다른 방법이 나오지 않아 초조해하고 있을 때, 내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것도 다 경험이지."  그리고 그 말은 나를 달램과 동시에 감격시켰다.

 

우리가 낭만이란 환상으로 가리는 파리는 세계에서도 가장 유별나게 그들의 낡은 모습을 지키려 노력하는 도시다.  낡은 삶의 자취는 최첨단을 살아가는 우리 한국인에겐 버거울 정도로 불편하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와이파이 하나 제대로 터지지 않는 이 불편한 도시를 굳이 찾아오는가?

 

우리가 사랑하는 파리의 낭만은 현대의 우리가 잊어버린 불의의 역사에서 시작되고, 그에 맞서는 분노와 고뇌에서도 탄생한다. 오스망 스타일의 깔끔하고 섬세한 푸른 지붕의 집들이 늘어져있는 넓은 방사형의 거리는 새롭게 재개발 된 도시에서 숨을 공간을 찾지 못해 붙잡히고 사살당한 ‘코뮈나르’들이 탄식을 내뱉으며 바라봤을 마지막 풍경이었을 것이고, 가난한 아랍 이주민들로 꽉 차 우리를 당황케 했던 혼잡하고 무질서한 생투앙 벼룩시장의 입구는, 우리가 거닐었던 고풍스러운 물건들을 파는 베르네종 시장보다도 훨씬 시내에서 쫓겨난 가난한 노동자들이 세운 첫 벼룩시장을 닮았을 것이다.

 

어쩌면 이 여행의 참가자들은 필연적으로 파리의 ‘아름답지 못한’ 부분을 이해하려 온 것일지도 모른다.

 

 

경험은 관망을 이해로 바꾼다. 우리가 걷고, 지하철을 타며 파리를 여행한 시간은 가끔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들어간 시간보다 값지다. 자신의 발로 자기만의 파리 지도를 만들며, 우리는 며칠 동안 파리 사람들의 일상에 섞여 있었고, 그들의 향취를 좋든 싫든 맡아야만 했다.

 

하지만 누군가는 지하철 5호선 Hoche 역이 "오슈"로 발음되는 걸 들으며 프랑스어는 H가 묵음이라는 것을 배웠고, 누군가는 파리에선 여전히 레버를 돌려야 열리는 지하철 문이 있다는 것에 놀랐으며, 누군가는 스크린도어 없는 지하철을 바라보며 우리나라의 지하철에서의 자살률을 떠올리기도 했다.

 

물론 유서 깊은 소르본 대학의 웅장함이 그들을 꿈꾸게 하고 명작들로 가득 찬 미술관들이 그들을 매혹하는 것엔 변함이 없겠지만, 결국 이 작은 깨달음들이 모여 개개인의 세상을 향한 관점을 바꾸는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이 여행에 참여해 준 모든 이에게 찬사를 바친다. 변화는 충격처럼 과격하게 찾아오지 않는 한 자신의 방문을 예고하는 편이 없으며, 우리는 짧은 여행에서 큰 변화를 찾느라 지치곤 한다. 이 여행이 열 여덟 명의 젊은 학생들의 삶에서 기념비적인 첫걸음이 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들이 자신의 리듬에 맞춰 자신의 현실과 이 곳의 현실 사이의 그 작은 틈을 발견하고자 무던히 노력했다는 것을 기억해야만 한다그들의 짜증 섞인 의문은 절대 비관으로 끝나지 않았고, 모두가 끝에는 불편함을 삶에 대한 이해로 변모시키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

 

어떤 이들은 내가 눈감고 넘어가던 프랑스의 일그러진 모습을 예리하게 비판했고, 또 다른 이들은 내가 더 이상 감탄하지 않는 프랑스의 일면을 다시 깨워 새로이 색을 입혔다. 더 놀라운 것은 어느 하나 냉소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사람은 없었단 것이다.

 

그리고 그 낙관적인 눈은 옛 것과 새 것이 공존하는 세계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으려 노력한다. 우리가 파리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한 파리는 흔쾌히 그 자리를 내어 줄 것이다. 그들이 자기 발을 고생시켜 얻은 이 여행이 또 다른 방랑의 시발점이 되길 바라며, 그들의 다음 여정을 기대해 본다.

 

누군가는 다시 한번 파리를 찾아올 지도 모르겠다. 또 다른 삶을 경험하기 위해, 스스로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