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양구 ⑦ : 양구의 여름
장소_강원도 양구군
일시_2023년 6 ~ 8월
글/사진_신소연 코디네이터
저는 강원도는 여름에도 덥지 않을 거로 생각했습니다. 접경지역인 양구는 더욱 덥지 않을 것 같다고 예상했죠. 5월부터 듣기 시작했던 '여름이 무지하게 더울 거야'라는 말은 6월 중순부터 실감 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지금 생각해 보면 강원도가 여름에 덥지 않을 거라는 생각은, 부산이 겨울에 춥지 않을 거라는 생각과 동일한 것 같아요. 좁은 대한민국에서 대체 이런 생각을 어떻게 가지게 된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 상대적으로 덜 덥고, 덜 운 거라는걸. 대한민국의 양 끝에 살아보며 느낍니다.
▲조인선 팀장님 집 앞 딸기들
인구정책팀 조인선팀장님께서는 여름의 시작을 알리듯 집 앞 마당에 딸기가 다 익었다며 먹으러 가야 한다고 하셨고, 곧바로 팀장님 집으로 향해 딸기를 수확했습니다. 어쩌다 보니 도시 사람(?)인 저는 딸기 수확을 처음! 해보았습니다.
당연히 시장이나 마트에서 사 먹는 딸기보다는 작지만, 달콤함은 사 먹는 딸기 이상이었습니다.
▲수확한 딸기
한 컵 가득 수확한 딸기는 '나도 소소한 농장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했습니다. 하지만 주말농장의 꿈을 얘기하니 '물은 매일 줘야 한다'며…. 그렇게 저는 주말농장의 꿈을 접었습니다. ^_^
▲앵두 수확
그 며칠 뒤에는 앵두가 다 익었다며 앵두도 수확했습니다. 통조림 앵두만 먹어왔던 저는 진짜 앵두를 먹고는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달고 맛있을수가 ...! 딸기와 앵두를 나눠주신 조인선 팀장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양구 서천 / 양구 종합운동장
▲동수리 막국수 앞
▲양구 종합운동장 / 비봉초교
양구에서 만난 아름다운 양구의 모습을 공유합니다. 이번 여름의 베스트 컷입니다 :) 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화창하게 피어나는 꽃들과 퇴근길에 만난 아름다운 노을은 언제봐도 마음을 평화롭게 합니다. 양구는 높은 건물이 거의 없습니다. 높은 건물이 없다는 것이 때로는 불편하게 느껴질 수는 있지만, 자연을 한껏 느끼기에는 적절한 곳임이 분명합니다.
▲파로호
여름의 어느 날, 공수리 마을의 함광복 이장님께서는 '파로호를 구경시켜 주고 싶다.'고 하셨고, 그길로 저는 파로호에 ..
양구에는 한반도섬이 있는 파로호가 있는데, 파로호는 매우 길어서 공 수리마을에도 이어집니다. 물론 저는 파로호를 보면서 들어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지만, 처음 타본 낚싯배와, 파로호를 달리며 느껴지는 바람은 '또 오고 싶은데?'라는 생각이 들게 했습니다.
물론, 파로호에 들어가다 배가 멈추는 사건(?)도 있었지만, 양구 사람들도 잘해보기 어려운 경험을 해보게 되어 정말 신기하고 재밌는 경험이었습니다.
▲파로호 어구관리장
파로호 안쪽에는 어구 관리장이 있습니다. 발전기로 전기를 사용하고 가스는 없지만, 인공(?)밭도 있고 잠자리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파로호 어부들에게만 허락된 유일한 쉼터입니다. 어구 관리장이 없으면, 한여름에 낚시하는 어부들은 뙤약볕에서 더워 지친다고 합니다. 어부의 삶을 생각해 볼 수 있게 된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참외와 라면
어구 관리장에 계셨던 분께서 깎아주신 참외와 공수리 마을 이장님께서 끓여주신 라면은 제가 먹었던 음식 중에 단연 최고였습니다. 파로호를 전경으로 먹었던 음식은 잊을 수 없는 맛입니다.
▲비봉산 일부
지난 에세이에서 식목일에 나무심기했다고 전해드렸는데, 어느새 시간이 지나 심었던 묘목들이 벌써 이렇게나 자랐습니다. 분명히 조그마한 묘목을 심었을 뿐인데 산불로 인해 다 타버려 황폐했던 산에는 조금씩 생기가 돌기 시작했습니다. 이 모든 묘목을 제가 심은 건 아니지만, 뿌듯한 건 분명했습니다. 제가 양구에 없더라도 나중에 양구를 찾아왔을 때 큰 나무가 왕창 있는 산이 되어있길 바라는 순간이었습니다.
▲양구 도솔산 지구전투 전승행사
6월 말에는 양구 도솔산 지구전투 전승 행사가 있었습니다. 도솔산 지구전투 전승 행사는 6·25전쟁 당시 해병대가 도솔산에서 전승한 것을 기념하는 행사인데요, 이때 해병대가 '무적 해병'이라는 칭호를 받았다고 합니다. 무적 해병이라는 단어는 알고 있었지만, 자세한 내막에 대해서는 처음 알게 되어 신기하기도, 이 축제에 참여하여 즐기는 게 재밌기도 했습니다.
부산에 살다가 양구에 와서 느낀 건, 지역이 좁다는 것이 좋은 점도 분명히 있다는 것입니다. 부산에 살면서 부산의 축제는 몇 차례 가보지 않았습니다. 축제하는지 몰랐던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멀다고 느꼈고 내 지역의 축제라고 와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양구는 내 지역의 축제 같습니다. 집 근처에서 축제하니까요. 집에서 잠시 쉬다 뜨거운 해가 지면 잠시 나가 축제를 즐깁니다. 도솔산 지구전투 전사에는 전국의 해병대분들이 오셔서 축제를 즐기셨습니다. 큰 축제는 아니었지만, 여느 축제보다 즐거웠습니다.
▲양구 '위러스틱'카페
양구의 광치자연휴양림을 아시는지요? 광치자연휴양림에 가다 오른쪽으로 살짝 빠지면, 자연 그 자체의 카페가 있습니다. 너무나 푸르고 아름다운 카페 '위러스틱'입니다. 제가 이 카페를 왜 이제야 왔는지 후회하며 케일주스를 맛있게 먹었더랬죠. 사과나무가 한쪽에 펼쳐진 위러스틱 카페는 양구군 국토정중앙면에 위치해있으니 이 근처에 들리신다면 꼭 한 번 가보시길 바랍니다.
▲길가에 피어난 꽃
양구는 참, 자연입니다. 보통 꽃집에서 볼 법한 꽃들이 주변에 많이 피어납니다.
누군가가 심은 것인지, 땅속에 숨어있다 나온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름다운 꽃들이 매일 새롭게 피어나는 것을 보고 있자면 그날의 에너지가 샘솟는 듯합니다. 양구의 한여름은 푸르기만 하지 않습니다. 다양하고 아름다운 색깔이 동시에 공존합니다. 덕분에 더 청명하고 밝아 보이기도 합니다.
▲6/7/8월 간담회
양구 DMO는 여전히 달리고 있습니다. 너무 초반의 단계라 아무 성과가 보이지 않는 것 같기도 해 분명 지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DMO는 지역주민이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무언가 시도해 보려고 하는 것에 의미가 있습니다. 양구에서 최초로 시작하는 지역관광추진조직, DMO는 곧 대단한 성과가 아니더라도 어떠한 결실을 볼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모두가 바쁜 와중에도 간담회에 참석하여 짧은 시간이지만 대화도 나누고, 교육도 듣습니다. 이 모든 과정이 양구에 어떤 방식으로든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합니다.
▲한반도섬 초입
지난겨울 방문했던 한반도 섬에 운전 연습 겸 재방문했습니다. 겨울에 황량했던 한반도 섬은 예상보다 훨씬 더 아름다웠습니다. 역시 무엇이든 한번 보고 판단하기는 어리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반도섬
▲한반도섬 무궁화동산
교과서에서만(?) 보던 버들과 가을이 오고 있는 듯한 단풍나무까지.. 이것이 양구의 한반도 섬이구나! 하는 생각이 마구마구 들었습니다. 가을에는 얼마나 알록달록한 한반도섬이 기다리고 있을지 내심 기대가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양구탐험대'사전설명회(청년허브)
양구의 여름에는 지난 시간들과 조금 다르게 특별한 행사가 있었습니다.
우선 지난 6월 말에 양구에 청년들을 모집하기 위해 서울에서 설명회를 진행했습니다. 양구에서 서울까지 가까운 거리가 아님에도 양구군청 인구정책팀 조인선팀장님과 정영훈 주무관님은 흔쾌히 길을 나서 주었습니다. 오로지 양구를 위해서 말입니다. 로컬그라운드의 김대호이사님께서도 고향사랑기부제를 양구와 연결하여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을지 설명해 주셨습니다. 실제 양구를 배운 청년들은 설명회 이후 일주일살이에 지원하여 양구에 방문해 주었습니다.
▲양구탐험대 첫날
저는 양구에 방문할 여덟 청년을 위해 약 한 달간 잦은 야근과 밤샘까지 곁들여 가며 열심히 일정을 구성했습니다. 2월부터 약 5개월간 제가 느낀 양구를 어떻게 하면 일주일 동안 소개하고 느끼게 할 수 있을지 끊임없이 고민한 시간이었습니다. (제가 아는 양구를 다 넣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
저의 고민과 노력에 답을 해주는 듯 양구탐험대 청년 8명은 장시간 진행된 여러 교육에도 지치지 않고 열심히 배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양구라는 지명을 처음 들어본 친구도, 언니를 따라 어렸을 적 한 번 방문해 본 친구도 '양구 너무 편안하다'라는 첫인상 소감을 남겨주었습니다.
▲두무마을에서 본 별
양구탐험대 청년들과 양구 국토정중앙면 두무리 '두무마을'에서 3일간 지내게 되었는데 첫날 유독 날씨가 맑아 무수하게 많은 별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양구' 하면 '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 청년들에게 엄청난 별을 보여주게 되어 내심 행복했습니다.
▲펀치볼 둘레길
양구 해안면의 펀치볼 둘레길도 다녀왔습니다. 저는 양구 펀치볼 트래킹이 두 번째였는데요, 처음에 방문했을 때 날씨가 좋지 않아 아쉬웠는데 이날은 맑은 날씨의 드넓은 펀치볼을 보고 있으니, 마음이 편안해지기도 했습니다. 하루가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친해진 양구탐험대는 제 사진도 찍어 주겠다며 .. 너무나 이쁜 사진을 찍어 주기도 했습니다.
▲양구탐험대
양구탐험대 청년들은 20대 초반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사실 최종목표인 지정 기부 프로젝트에 대한 엄청난 기대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양구를 느끼고 즐기고, 다음에 한 번 더 오고 싶게 하는 것이 제 소소한 목표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일주일간의 기나긴 여정을 끝으로 양구탐험대가 공유한 지정 기부 프로젝트는 진정으로 양구 주민의 입장에서 고민해 보고, 보고 들은 양구를 넣은 프로젝트였습니다.
<양구탐험대, 고향사랑기부제 지정 기부 발굴 프로젝트>의 청년들이 발굴한 지정 기부 프로젝트가 실현되지 않더라도 서울에서 온 청년들이 단 일주일 동안 양구 주민이 되어보았던 뜻깊은 프로젝트라고 생각합니다.
아, 양구탐험대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양구분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저는 양구에 단 5개월 지냈지만, 5년 이상 산 것 처럼 흔쾌히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주셔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한 지역에서 이렇게 많은 도움을 받는 건, 정말 쉽지않은 일이니까요. 제 에세이 3편에 얘기했듯, 인정(人情)이 많습니다. 여기, 참 따뜻합니다.
▲롤링페이퍼
양구탐험대 청년들은 서울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제게 롤링 페이퍼를 써주었는데 그렇게 감동적일 수가 없었습니다. 청년들에게는 일주일이었지만, 저에게는 한 달 이상의 시간이었던 노력과 고민이 눈 녹듯이 사라지고 참 뿌듯하고 뜻깊고, '양구 5개월 차가 양구를 어느 정도 소개하긴 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청년들이 고맙다며, 수고했다고 저를 만나러 양구에 다시 오겠다고 하는 말들을 보니 부족한 저를 잘 따라와 준 양구탐험대에 고마움을 느끼는 순간이었습니다.
▲양구식당 '귀빈'
이번 에세이에서 소개해 드릴 양구의 식당은 '귀빈'입니다. 제육볶음이 맛있고 밑반찬이 훌륭한 제육볶음 정식(12,000원)입니다. 다른 가게보다 가격대는 좀 있지만, 분명히 가격만큼 맛과 양이 보장된다고 생각하는 집입니다. 파로호가 보이는 동수리에 있으니 꼭 한번 방문해 보세요.
▲양구 하미과 멜론과 양구 수박
양구 여름에 나오는 하미과 멜론, 양구 수박은 정말 정말 맛있습니다. 지인에게 꼭 선물하고 싶은 과일 1위입니다. 노란 멜론을 처음 먹어봤는데, 신기하고도 맛있어서 먹는 동안 매우 행복했습니다. 제가 운전을 조금 더 잘하게 된다면 꼭 양구 수박과 멜론을 사서 지인들에게 나눠주리라고 생각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물론 택배 가능!)
▲양구 비봉산 전경
매년 여름은 덥고 지치는 순간들이 많습니다. 올해 여름도 별다를 건 없었습니다. 근데 여름은 이상하게, 지나고 나면 늘 푸르던, 늘 맑던 날이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래서 겨울이 되면 또다시 여름을 그리워하곤 합니다.
양구에서의 여름은 제가 입사 1년이 되는 날이 있기도 했고, 처음으로 양구에서 하나의 사업을 시작하고 끝내기도 한 달이기도 합니다. 이 외에도 여러 다른 일들이 복합적으로 많이 일어났던.. 어마무시한(?) 달입니다.
많은 일들이 일어났지만, 저는 언젠가 이 여름의 양구를 그리워하는 날이 오겠지요. 아마 겨울의 양구에 다다르기만 해도 여름의 양구를 그리워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대추나무 / 슈퍼블루문
겨울의 끝에 도착한 양구에서 봄과 여름을 지나 어느새 가을을 맞이했습니다. 양구는 어느새 가을 냄새가 나기 시작합니다. 양구는 다른 지역보다 봄은 늦게 오지만, 가을은 일찍 옵니다.
8월의 마지막 날은 슈퍼 블루문을 보며 여름을 마무리했습니다. 지나가는 순간은 붙잡을 수 없으니, 순간을 즐기고,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양구와 놀아보려고 합니다. 양구의 가을은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 조금은 기대해 봐도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