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로움’을 찾아서
글/사진_이두희 코디네이터
어린 시절 비행기를 처음 타고 방문한 제주는 내겐 낯설기만 한 곳이었다. 이제는 저가 항공사들이 많아지며 제주도 여행에 접근하기 쉬워졌다. 10년에 한번 갈까 말까 했던 제주도였지만 이제는 마음만 먹으면 방문할 수 있는 일일생활권이 되었다. 사람들이 제주도를 많이 찾으며 경치가 좋은 바닷가에는 카페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고, 텔레비전에서 연예인이 오른 오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인생샷’을 찍기 위해 발자국을 남기고 있다. 나 역시 제주를 여행 할 때마다, 인스타그램(instagram) 에 #제주여행 #제주맛집을 (instagram)에 #제주여행, #제주맛집을 검색하여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을 여행하곤 했다. 하지만, 이번에 ㈜공감만세와 iCOOP 생협 활동가들과 함께한 제주 공정여행은 지금까지의 제주여행과는 정 반대의 영역으로 떠난 여행이었다.
쉼과 치유, 제주 힐링여행 – 그런데 나는?
이번 제주 공정여행의 주제는 쉼과 치유였다. 그동안 수많은 활동으로 인해 지친 아이쿱생협 활동가들이 맛있는 제주의 음식을 먹고 아름다운 자연의 경치를 보며 몸과 마음에 쉼을 주는 여행이라고 한다. 나 역시 코이카 해외봉사단 활동과 취업 준비를 위해 치열하게 몸부림치던 생활에서 벗어나 재충전하는 시간을 갖고 싶었지만, 인솔자로서 참가자들이 편안하게 여행할 수 있도록 다방면으로 신경을 써야 할 부분이 많았다. ‘나부터 편안하지 않은 여행인데, 참가자들이 과연 편안하게 여행을 할 수 있을까?’ 물론, 내 몸이 편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의 몸은 편안해질 수 있다. 하지만, 내 마음이 편하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들의 마음도 편해질 수 없다. 여행의 인솔자로 참가하게 된 여행이지만 나도 같이 여행을 즐겨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지금까지 내가 알지 못했고, 가보지 못했던 새로운 곳을 참가자들과 함께 여행하면서 제주의 새로운 모습을 보게 될 것에 기대감이 부풀었다.
‘제주로움’을 찾아서
우리가 하는 공정여행은 현지 사회문화에 대한 배움을 지향하는 여행이다. 내가 아는 제주는 그저 이국적인 풍경의 관광지, 감귤과 한라봉의 고향, 고등학교 수학여행의 메카뿐이었다. 제주에는 ‘돌’과 ‘바람’과 ‘여자’가 많다고는 들었지만 왜 많은지에 대해서는 알려고 하지 않았다. 선생님이 그렇다고 하니 그런가 보다 하고 말았었다. 제주의 남자들은 탐관오리들의 수탈로 바다 일을 하다 죽거나 살기 위해 육지로 도망을 갔다. 남겨진 여자들이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해녀로써 물질을 하며 가족들을 부양해 나갈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제주 해녀 박물관’과 ‘해녀의 부엌’ 그리고 수많은 어촌 마을에서 ‘제주로움’을 보여주는 제주 해녀들의 삶의 흔적을 볼 수 있었다.
제주만의 특별한 자연환경 – 서우봉 오름과 동백동산 생태관광
제주도에는 368개의 ‘오름’이 있다. 하루에 한 개의 오름을 올라도 1년이 부족한 정도로 많다. 제주의 오름에 반해 매일같이 오름을 오르는 남자가 있다. 사진을 찍는 ‘최경진’ 작가이다. 일반적인 사진작가들과는 다르게 스마트폰 카메라로 오름의 풍경을 기록한다. ‘최경진’ 작가와 함께 조천읍 함덕리에 있는 ‘서우봉’ 오름을 올랐다. 제주도의 해안 곳곳에는 지난 일제강점기 시절 태평양 전쟁을 대비하여 일본이 마을 사람들을 착취하여 만든 ‘진지동굴’들이 남아 있다. 자연적으로 생긴 울퉁불퉁한 용암동굴에 사람의 손이 닿아 평평하게 다져진 인위적인 동굴들이 만들어졌다. 아이러니하게도 일제의 수탈의 흔적인 ‘진지동굴’이 제주 4.3 사건에서는 마을 사람들을 지켜주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에게는 그저 주변의 경치와 자연의 아름다움만을 보게 되는 오름이지만, 수많은 아픔들을 간직한 이곳이야말로 ‘제주로움’을 잘 간직하고 있는 공간인 것 같다. 정상에 올라 해안가에 펼쳐져 있는 마을들을 내려다보며 오름에 새겨진 역사의 흔적들을 되새겨보는 시간을 가졌다.
‘오름’이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제주의 자연환경이라면, ‘곶자왈’은 다소 생소한 단어이다. ‘곶’은 숲을 뜻하고, ‘자왈’은 가시덩굴을 뜻하는 제주 사투리이다. 화산이 분출했을 때 용암이 흐르고 굳으면서 생긴 울퉁불퉁한 땅에 나무와 풀이 자라 숲을 이룬 곳을 제주말로 ‘곶자왈’이라 부른다고 한다. 돌무더기 위에 생긴 숲으로 나무의 뿌리가 깊지 않아 강한 바람에 나무들이 쓰러지곤 하지만, 그 틈새로 새로운 생명들이 싹을 틔우는 제주만의 특별한 자연을 볼 수 있는 곳이다. 돌무더기로 인해 농사를 짓지 못하는 지역 특성상 사람들은 나무를 의지하여 생활해 왔다. 다행히 용암동굴 틈으로 물이 고여 있어서 사람들이 모여 살 수는 있는 환경이 되었다. 사람들은 곶자왈의 나무를 이용해 숯을 만들어 생활하였고, 숯을 만들기 가장 안 좋은 동백나무만 남아 숲을 가득 채워 ‘동백동산’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숲이 제주 4.3 사건에서는 사람들이 숨을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해 주었다. 이렇게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는 제주의 숲들이 사람들의 욕심으로 인해 사라지고 있다. 이곳 ‘동백동산’은 2011년 3월 ‘람사르 습지’에 등록되어 살아남을 수 있었다. 지금까지 사람들을 지켜준 숲을 이제는 우리가 지켜줘야 할 차례이다.
‘제주로움’ 고민하는 사람들 – D&DEPARTMENT, 방주교회 ‘이타미 준’
2000년 일본 도쿄에서 처음 문을 연 디앤디파트먼트(D&department)는 ‘롱 라이프 디자인(Long Life Design)이라는 관점을 가지고 지역성을 기반으로 건강한 미래를 위한 ’지속될 가치의 디자인‘, ’지역 다운 디자인‘, ’사람을 위한 디자인‘을 하는 사람들을 지원하고 그들의 상품을 전시하여 판매하는 디자인 숍이다. 디앤디파트먼트 제주점에는 제주의 식문화를 발굴하고 전통방식의 요리를 제공하는 ’d식당‘과 제주만의 특색을 담은 창작활동을 지원하는 ’d news’를 운영하고 있다. 디앤디파트먼트에서 ‘제주로움’에 대한 여러 사람들의 다양한 시각을 볼 수 있었다.
제주도의 남쪽인 서귀포는 옛날부터 부유한 지역이었다고 한다. 한라산에 막혀있는 북쪽보다 남쪽이 일조량이 좋은 탓에 감귤이나 한라봉 농사가 잘 된단다. 이러한 환경은 농사뿐만 아니라 지역 발전에도 영향을 미친 탓에 ‘중문 관광단지’ 등 남쪽에 많은 관광시설들이 자리하고 있다. 한라산 남쪽 사면에 위치한 ‘방주교회’는 재일교포 건축가인 ‘이타미 준’의 작품 중 하나이다. ‘이타미 준’은 한국인 ‘유동룡’으로 살기 위해 일본에 귀화하지 않고 차별과 억압을 견디고 일본에서 살아왔고 한국으로 돌아왔을 땐 재일교포로서 외부인 취급을 받으며 ‘경계인’의 삶을 살아왔다. 대학시절 혼자서 한국 여행을 하면서 한국의 옛 건축물과 조선시대의 민화의 아름다움에 빠져들어 ‘한국적인 것’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였다.
‘포도호텔’, ‘수,풍,석 박물관’ 등 제주에 남긴 그의 작품들은 그 지역에 융화될 수 있는, 지역다움을 건축에 녹여낸 훌륭한 예술품이다. 성서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를 모티브로 설계된 ‘방주교회’는 성서의 이야기처럼 서귀포 앞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산언덕에 지어졌다. 하늘로 뻗은 지붕선과 자연채광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지붕의 타일은 마치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을 향해 나아가는 방주를 연상시킨다. 건물 주위에 인공수조를 조성하여 물이 흐르게 되어있어 실제 방주가 호수 위에 떠있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주변의 자연환경과 건축물을 조화롭게 표현하는 ‘제주로움’을 위한 건축가의 고민의 흔적을 볼 수 있는 이곳 ‘방주교회’에서 우리의 여행의 목적지를 찾을 수 있었다.
우리의 여행은 무엇으로 향하고 있는가? 공정여행을 시작한 뒤로 스스로에게 던져보는 질문이다. 이번 아이쿱생협 활동가 기금 제주 공정여행은 지역의 지역다움을 유지하고 있는 것을 찾기 위한 여행으로 ‘제주로움’을 찾아가는 여행이었다. 제주가 가지고 있는 자연, 역사, 사회 문화에 대해 알아가고 제주에서 살아온 사람들과 제주에서 살아감을 노력하는 사람들의 지혜를 배우는 시간을 가지면서, 나만의 치유와 힐링을 경험하는 여행을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