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산골마을, 따뜻한 공간을 만들고 있습니다 ⑩ 마지막화
돌아보며, 마치며, 또 기다리며.
글/사진_패어트래블재팬 이연경 팀장
2018년 9월, 집을 찾던 때부터 꼬박 2년 하고도 2개월. 그 긴 시간을 꽉 채워 시이노모리는 이제 오픈을 목전에 앞두고 있습니다. 언젠가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세계 이곳저곳, 여행을 다니다가 문득, 정말 좋아하는 곳이 생기면 작은 집을 하나 사서, 여행 오는 사람들과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는 마음 따뜻한 공간을 만들고 싶다고요.
그렇게 제 상상 속에서 꿈처럼 머물던 공간은, 저도 모르는 새, 일본의 한 산골마을 진세키고원에서 완성되었습니다.
상상과는 달리, 내닫는 걸음 중 무엇 하나 쉽지 않았습니다. 집을 찾는 것. 그 집이 어떤 모습이 될지 그려내는 것, 장인들과 함께 그 그림을 실제로 구현해내는 것. 그리고 그 공간을 더 풍성하게 채워 넣는 것까지. 하지만, 돌아보면 모든 순간들이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추억 하나.
집을 건네받고, 집안 곳곳 남겨진 전 주인 할머님의 물건을 정리하던 날 도쿄에서는 반가운 큰 아드님이 찾아오시고, 진세키에서 작은 가게를 하시는 둘째 아드님과 며느님도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추억이 묻어나는 물건들을 정리하며 나누는 담소 무엇 하나 그립지 않은 이야기가 없었습니다.
안방에는 할머님이 생전에 즐겨 입으시던 옷가지와 기모노가 거실에는 할머님 자신이, 또 그의 자식들과 손자들이 함께 모아온 인형들, 주방에는 혼수로, 또 손님 초대로 넉넉히 구비해놓은 그릇들이. 세월을 지나며 달그락, 삐거덕 대는 가구들도 그저 오래되었다는 이유만으로 버리기에는 아까운 물건들이 한가득. 필요한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 가지라던 인심 좋은 자녀분들 덕분에 시이노모리에는 아직도 그 추억들이 살아 숨쉽니다.
(그 일면을 보시려면, 연재기 2화를 참고 해주세요!) ▶ 일본 산골 마을, 따뜻한 공간을 만들고 있습니다 ② : 집에 남은 흔적들
▲ 오래된 가구들
▲ 새로운 집에 예쁘게 배치한 옛 물건들
추억 둘.
가정용 집을, 손님맞이를 위한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서 시이노모리는 길고 긴 행정절차와의 싸움을 계속하고 있습니다...ㅎㅎ 첫걸음은,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진세키고원 지자체와의 행정절차 두 번째는 민박시설로 등록을 하기 위한 히로시마 현청 건축과와의 사전상담 세 번째는 공사자재를 한국으로 들여오기 위한 관세청과의 길고 긴 밀당 여기까지만 해도 1년이 훌쩍 지나버렸습니다. 정말 울고 싶은 순간들이 많았지요.
하지만, 여기서 끝나면 아쉬웠을까요? (대체...누가? ㅠㅜ) 손님들의 안전 확보를 위한 소방설비 설치와 관련된 소방서와의 상담 및 현장검사, 그리고 지금 진행하고 있는 최종 단계, 민박시설 등록 절차까지. 이제야 끝이 보이나 싶습니다만, 매년 여러 가지 규정에 따라서 보고도 해야 하고, 관리도 해야 하니 세상에는 참 쉬운일은 없는 듯합니다.
(그 일면을 보시려면, 연재기 4화를 참고해 주세요!) ▶ 일본 산골 마을, 따뜻한 공간을 만들고 있습니다 ④ : 주택 숙박사업은 신고가 아니라, 허가입니다. (feat. 에이스침대)
▲ 시이노모리에 과감히 자금을 투자해 주신 진세키고원 지자체 분들
▲ 마을에서 행정절차를 도와주신 자치센터장, 지자체 담당자, 진세키 기금담당자분들
▲ 안전한 공간을 위해 구비한 피난 경로도, 손전등, 소화기
하지만, 담당하는 관청 직원들과 상담하며, 서류를 다시, 또다시 만들어보내고, 몇 번이고 만나고 전화를 하며 미운 정 고운 정이 쌓인 걸까요. 이제는 그분들도 왠지 저의 든든한 동료처럼 느껴집니다.
추억 셋.
결혼을 앞둔 제일 친한 친구와 오랜만에 전화 통화를 하다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결혼은 내가 준비하는데, 듣다 보니 신혼집 살림 채우는 것보다 네가 더 힘든 것 같다야 ㅎㅎ”
공사가 끝나고, 공간에 필요한 가구, 가전, 소품들을 채울 차례가 돌아왔습니다. 리스트를 정리하고 하나씩 구매를 해나가는데 세상에 왜 이렇게 사야 할 물건은 많고, 종류도 많던지요. 쇼핑몰에서 3~4시간은 거뜬히 보낼 만큼 쇼핑을 좋아하는 저이기에 처음에는 한꺼번에 여러 물건을 사니 부자가 된 느낌도 들고, 매일매일 도착하는 택배가 일찍 받는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느껴져 좋기만 했었더랬지요.
그런데, 이렇게 몇십 개의 물건을 반복해서 고르다 보니, 아이쿠. 제 물건을 살 때는 제 취향 하나만 고려하면 될 일이던 것이 손님 취향과 공간의 분위기, 실용성, 가격까지 고려해야 하니 물건 하나 고르는데도 몇 시간이 걸리곤 했습니다. 머리는 지끈 지끈, 그리고 왜 사도 사도 필요한 물건은 계속 나오는 것인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결국 지금은 쇼핑이 싫어지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지요. 그래도 사놓은 물건들을 하나둘씩 사용하다 보면, 내가 참 잘 골랐구나 싶어 뿌듯할 때도 많습니다.
그중에 기억에 참 남는 물건이 하나 있는데요. 바로 별채에 놓인 소파입니다. 시이노모리의 물건을 구매할 때, 나름 지키고자 했던 원칙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자연에 되도록 해가 되지 않는 제품일 것, 둘째는 좋은 가치를 담고 있는 (기업의) 제품일 것, 셋째는 전범 기업의 제품이 아닐 것. (여담이지만 일본에 있는 공간이라서 특히 세 번째는 꽤나 지키기가 어려웠답니다 ㅠㅜ) 어찌 되었든 이런 옹고집(?)을 부리며 소파를 사려고 정말 별의별 온라인, 오프라인 매장을 다 가보았는데 좀처럼 마음에 드는 물건이 없어서, 거의 3주 동안 고민하다가, 소파를 사지 말까...하고 포기를 생각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런 고민의 끝자락에서 한줄기 빛과 같이 발견한 것이 바로 이 소파. (광고가 아니니 기업이나 브랜드명은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궁금하면 직접 시이노모리에 오셨을 때 알려드릴게요 ㅎㅎ) 사실 디자인은 그리 특출날 것이 없는 심플한 소파입니다만, 회사 자체가 매트리스를 전문으로 만드는 젊은 기업이고, 내장재가 메모리폼이고 세탁이 가능한 소파 커버가 함께 오는 것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리고 써보고 마음에 안 들면 120일 이내에 무료로 환불도 가능하고, 생산되는 방식이 친환경적이고 (FSC 인증을 받은 목재를 사용), 판매 수익의 일부를 WWF(세계자연보호기금)의 바다거북이 보호 프로젝트에 기부하는 구조로 되어있기까지. 그간의 기나긴 고민들은 이제 그만!
저는 바로 결제를 했고, 5분쯤 지나서였을까요. 기업의 CSR 담당자로부터 메일이 하나 왔습니다. 내용인즉, 제품 구매를 감사하며, 제품 구매로 바다거북이의 보호가 실현되어 감사한 마음으로 서포터 인증서를 보낸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물건을 사고 이렇게 뿌듯하고 기쁜 경험은 참 오랜만이었습니다. 나의 소비가 세상의 좋은 일이 되도록 의식하고 사는 것은 어찌 보면 어렵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필요한 것을 구매하는 것보다는 훨씬많은 고민과 시간을 필요로 하지요. 하지만, 또 어찌 보면 참 쉬운 일입니다. ‘구매하기’를 단 한 번 클릭하는 것만으로, 세상을 좀 더 나아지게 할 수 있으니까요.
공감만세의 여행을 선택해 주시는 여러분도, 정말 많은 고민을 거쳐서 저희 상품을 골라주시는 만큼, 그 구매의 결정이, 반드시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일이 될 수 있게끔 더 힘내야겠다.' 라고 다짐하게 해준,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 이것이 바로 그 소파!
▲ 이제 나도 바다거북이 서포터라고요!
이 외에도 매 순간순간, 떠올리면 웃음 지어지는 많은 추억들이 있습니다. 언젠가 여러분이 시이노모리에 하룻밤 묵어가실 때 맛있는 음식과 함께 조금씩 꺼내어 나눌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지금까지 시이노모리 연재기 10부작 : '일본 산골마을, 따뜻한 공간을 만들고 있습니다.'를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의 공간 이야기는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조금씩 엿보실 수 있으니, 아래의 링크를 통해 찾아와주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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