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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면 뭐하니? 답사를 가야지 ①(feat. 강릉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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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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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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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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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면 뭐하니? 답사를 가야지 ①(feat. 강릉편)

글/사진_여행사업이사 노진호

 

 코로나19로 인해 예정되어 있던 해외여행 및 연수는 무기한 연기되거나 국내로 전환되었다. 국내로 전환된 여행 및 연수마저도 최근 코로나19 재확산으로 또다시 연기되었다. 이럴 때일수록 움츠러들 수 없다. 주말에 놀면 뭐 하나? 답사를 하러 가야지. 이렇게 자발적으로(?) 대표님과 오붓이 강릉 답사를 떠났다. 서울에서 강릉까지 KTX를 탑승하면 2시간이면 도착한다. 우리는 오전 8시 기차에 몸을 실었다. 대표님은 항상 말씀하셨다. 준비없는 답사는 아무 의미없다고.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답사 준비상태를 체크하셨다. 실수였다. 자리를 떨어뜨려 예매해야했다. 난 아직 멀었다.

 

 그렇게 미흡한 준비상태를 확인하고, 뒤늦게 정보를 찾으며 대표님께서 공유해준 자료를 살펴봤다. 나에겐 고질병이 하나 있다. 이동수단을 타면 삽시간에 잠이 든다. (사실 어디서든 땅에 머리만 닿으면 잘 잔다) 그렇게 눈을 감았고, 다음역은 강릉역이라는 승무원 목소리에 눈을 떴다. 잘 주무셨냐는 대표님의 안부인사와 함께 강릉 답사가 시작되었다.

 

 문향, 예향, 제일 등 강릉을 수식하는 말은 많다. 추상적인 수식어가 아닌 보다 구체적이고 직설적인 수식어가 있다면 그것은 아마  '대관령 너머' 가 될 것이다. 조선시대에 대관령은 서울에서 전국으로 이어지는 주요 간선도로 중 하나였던 관동대로에 속했다. 서울 흥인문을 출발해 관동대로를 따라 중랑포, 평구역, 양근, 지평, 원주, 방림, 진부, 횡계를 지나 대관령을 넘어야 강릉에 닿을 수 있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중앙의 문화가 동쪽으로 대관령을 넘기 쉽지 않았고, 강릉의 문화 역시 대관령을 넘어가기가 어려웠다. 이 때문에 강릉은 좀 더 고유색이 짙은 특징적인 문화를 유지할 수 있었다. 지리적 경계였던 대관령이 곧 문화적 경계였던 셈이다.

- 「여행자를 위한 도시 인문학 ,강릉」,정호희 지음, 가지

 

맛좋은 초당두부

 아침 겸 점심을 먼저 먹었다. 강릉하면 역시 '초당두부'다. 초당두부는 두 가지 유래가 존재한다. 하나는 조선 명종 때, 삼척부사를 지냈던 허엽이 집 앞의 맛 좋은 샘물로 콩을 가공하고 깨끗한 바닷물로 간을 맞추어 두부를 만들게 했는데, 이렇게 만든 두부의 맛이 좋기로 소문나자 두부에 자신의 호 '초당'을 붙이도록 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한국전쟁 때, 강릉 청년들이 동부전선에 나가 전사하자 혼자 남은 아낙네들이 두부를 만들어 내다 팔아 생계를 꾸리게 된 것이 그 유래라는 것이다.

 

 얼큰한 순두부 정식을 주문했는데 적당히 매운감과 순두부의 고소함이 섞여 훌륭한 맛이었다. 기본 반찬으로 제공되는 두부 또한 맛이 좋았다.

 

 

 이탈리아 로마 3대 젤라또 파시, 올드브리지, 졸리티가 있다면 대한민국에는 강릉 순두부젤라또가 있다. '더 짠내투어'에도 소개되었던 이색적인 후식 중에 하나다. 역시나 순두부젤라또를 맛보려는 사람이 여럿 있었다. 순두부젤라또 이외에도 여러 메뉴가 있었지만 난 모든 음식은 오리지널을 먹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맛은 두말할 필요 없다. 강릉에 간다면 꼭 맛봐야 한다.

 

 순두부젤라또는 '강릉의 초당순두부를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을까'를 항상 고민한 끝에 탄생했다고 한다. 실제로 이탈리아에서 젤라또 기계를 들여와 이탈리아 젤라또 본연의 맛도 즐길 수 있다.

 

 

 

정조가 감격한 격몽요결

 

 

 

 짧은 시간에 여러 공간과 사람을 만나야 하기 때문에 오후부터는 대표님과 따로 움직였다. 신난... 아니 신이 닳을 정도로 열심히 돌아다녔다. 첫 번째 행선지는 오죽헌이었다. 오죽헌은 매 정시마다 해설을 들을 수 있다. (현재 실내 공간은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로 모두 운영을 중단하고 있다)  

 

 누구나 한 번쯤 봤을법한 격묭요결의 책표지. 율굑 선생께서 일반 학도들에게 도학의 입문을 지시하기 위해서 1577년에 간행한 유학서이다. 오죽헌 내에 '어제각'이라는 곳에 율곡 선생께서 격몽요결을 집필할 때, 사용한 벼루와 정조대왕 서문이 보관되어 있었다. 이곳은 1788년(정조 12년)에 율곡 선생의 유품인 벼루와 격몽요결을 보관하려고 몽룡실 앞에 세워졌다. 어명에 의하여 건립되어 어제각(御製閣)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정조대왕은 율곡 선생이 쓰시던 벼루와 친필원고인 격몽요결이 오죽헌에 보관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것을 대궐로 가져와 보신 후 감격하여 벼루의 밑바닥에 율곡 선생을 칭송하는 내용의 글을 친필로 썼고, 격몽요결에는 서문을 지어 책머리에 붙이게 했다. 이를 오죽헌으로 돌려보내 강원도 관찰사 김재찬에게 명하여 이 집을 짓게 하였다. 

 

 

 오죽헌에 가면 대나무에 많은데 일반 대나무와 달리 까만빛을 띠고 있다. 까만 대나무를 오죽이라 불렀고, 신사임당과 율곡이이 생가 주위에 오죽이 많이 자라 집 이름도 오죽헌이 되었다. 오죽헌은 역사적인 의미와 함께 건축의 의미가 강조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민가 건물 가운데 하나고, 조선 초기 건축 특징을 잘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는다. 강릉에 온다면, 바다보다 오죽헌에 먼저 와서 '강릉'이란 지역의 옛 이야기를 접해보길 추천한다.

 

 * 강릉답사기는 놀면 뭐하니? 답사를 가야지(feat. 강릉편) 2편에서 계속됩니다! 답사는 코로나 방역수칙에 맞춰 진행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