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한 대안을 찾는 사람들

공정한 대안을 찾는 사람들 [동유럽 답사 여행기_공감만세 표소진 코디] 유럽의 중심에서 인문학을 만나다6 (오스트리아 후편)
  • 공감만세
  • 2015-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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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유럽(오스트리아) 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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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유럽(오스트리아) 일대

글_표소진 코디네이터

 

# Intro

이제 동유럽 인문학 여행학교의 일정이 후반부에 다달았습니다. 할슈타트를 시작으로 오스트리아의 자연 경관을 보고, 잘츠부르크에서 '사운드 오브 뮤직'과 '모차르트' 테마의 거리를 보며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기분을 느꼈다면 이제는 수도 빈에서의 여정만이 남아있습니다.  흔히   영어인 '비엔나'로 더 잘 알려져 있는 빈(Wien). 역사적으로 보면 오스트리아는 BC 500년에 켈트족이 정착하면서 형성된 도시입니다. 그 중에서도 빈은 1440년 합스부르크 왕가가 들어오면서 정치, 문화, 예술, 과학, 음악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사실상 신성 로마 제국의 수도로 자리매김했지요.

 

1805년 오스트리아 제국의 수도가 되었고, 1938년에는 나치 독일에 의해 점령,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의 신탁통치를 받으며 수도로써의 기능을 독일 베를린에 넘겨주었다가 1954년 독립하면서 다시 수도가 되었습니다. 스위스와 함께 영세중립국으로 독립해 지금은 유럽에서도 경제적으로 부강한 나라 중의 하나가 되었는데요. 전쟁을 치르며 거대한 영토를 모두 잃었지만, 대제국 시기에 오스트리아에서 꽃피웠던 문화와 예술의 향기는 여전히 빈에 남아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영세중립국이란 다른 국가 간의 전쟁에 참여하지 않는 의무를 가진 국가를 말합니다. 대신 다른 국가들도 영세중립국을 침공하지 않으며 영세중립국은 영세중립국을 희망하는 국가와 다른 나라들의 조약을 통해서 성립됩니다.

 

 

 

# 1월 17일 오스트리아 빈

'사운드 오브 뮤직'을 들어는 봤는데, 영화를 본 적이 없다면? 그런 아쉬움이 들지 않도록 잘츠부르크에서 빈으로 이동하는 시간 동안 '바로 그' 영화를 보며 이동했는데요. 사실 사운드 오브 뮤직은 영화 이전에 뮤지컬로 먼저 대중에게 알려진 작품입니다. 그 기원으로 말하자면 '폰 트랩 가족 중창단 이야기'라는 제목의 책을 먼저 들 수 있는데요. 이 책이 1956년 독일의 한 영화사에 판권이 팔려 처음 영화화 되었고, 이후 연극으로 먼저 무대에 올려지려고 했으나 연극보다는 브로드웨이 뮤지컬에 더 적합하다는 판단 하에 뮤지컬화 되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줄리 앤드루스 주연의 영화판 '사운드 오브 뮤직'은 음악은 물론이고, 서사나 극중 캐릭터까지 원작에 가깝게 옮겨졌다고 합니다.

 

왈츠의 아버지라 불리는 요한 스트라우스의 고장 빈. 왈츠는, 이곳 시민들과도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비엔나에서는 14세가 되면 모두 댄스스쿨에서 왈츠를 배우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하는데요.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진 고풍스런 빈의 건물 어디가에서, 왈츠를 배웠습니다. 알레스 발췌!(Alles Walzer, 모두 왈츠를!)

 

동시에 빈은 카페 문화가 발달했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빈은 카페에 둘러싸인 도시다'라고 독일의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말했다고 합니다. 빈은 유럽의 대도시 중에서 가장 먼저 커피 문화를 받아들인 곳이며, 19세기 말 고풍스러운 문학 카페의 전통이 아직까지 남아 있는 도시입니다. 카페 센트럴, 카페 데멜, 호텔 자허 등 역사가 깊은 커피하우스들이 남아있죠(카페 센트럴은 오스트리아 일정 마지막날에 방문).

 

 

# 1월 18일 오스트리아 빈

전날, 이동 후 왈츠 체험으로 빈에서의 첫날은 맞았다면 이날은 쇤브룬 궁전을 포함해 빈의 특이한 건축물을 만난 하루였습니다. 먼저 쇤브룬 궁전으로 말하자면 오스트리아의 베르사유로 불리는 곳으로 궁전 내부는 베르사유만큼 화려하진 않지만 아기자기하고 다양한 매력이 있습니다. 진짜 금을 사용한 방은 물론, 1762년 10월 레오폴트 모차르트(모차르트의 아버지)가 그의 세 자녀와 함께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 앞에서 하프시코드를 연주한 거울의 방, 260개의 패널화가 있는 만인의 방이 유명한데요. 내부를 오디오 가이드를 이용해 둘러보고 궁전 뒤, 글로리에테(18세기 중엽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한 그리스 신전 양식의 전승비)를 보기 위해 언덕 위까지 올라가 보았습니다.

 

 

글로리에테는 전쟁의 승리를 축하하며 전몰자의 넋을 기릴 목적으로 건설되었는데 현재는 카페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지붕 위에는 황제의 상징인 독수리가 큰 날개를 펼치고 있고 다양한 조각이 주변을 장식하고 있죠.

 

쇤브룬 궁전은 오스트리아의 가장 큰 궁전답게 거대한 규모를 자랑합니다. 글로리에테가 있는 언덕 위에 올라 한 시절 유럽을 호령했던 합스부르크 왕가의 품격과 그들의 취향을 상상해봅니다.

 

훈데르트바서는 빈 환상파 화가이자 건축가, 환경운동가로 강렬한 색채와 제각기 다른 모양의 창틀, 둥근 탑, 곡선으로 이루어진 복도 등이 독특한 구조를 이루는 집을 지었습니다. 대표적인 건물이 바로 훈데르트바서 하우스이며 근처에 위치한 쿤스트 하우스 또한 훈데르트바서의 작품이죠. 마치 동화 속에나 있을 법한 집, 곡선을 많이 사용한 그는 "직선은 신의 부재다"라고 말하였고, 직선은 부도덕하다는 신념을 바탕으로 설계도 또한 자유롭게 손으로 그렸다고 하는데요. 생각해보면 자연물에는 직선은 찾아보기 힘들며, 어쩌면 인간만이 지나치게 직선을 고집하지는 않았는지... 직접 개명한 그의 이름 또한 독특한데 독일어로 훈데르트(hundert)는 숫자 100을, 바서(wasser)는 물을 뜻하여 한자로 백수(百水)라는 호(呼)를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훈데르트바서 하우스는 실제로 건물 안에 사람들이 살고 있어 직접 들어가 볼 수는 없었으며, 그 중 일부가 박물관으로 공개되어 있기에 대신 들어가 볼 수 있었습니다. 빈 시는 훈데르트바서 같은 훌륭한 건축가가 나타날 때를 대비해 시내에 공터 여러 곳을 남겨두기로 했다고 합니다. 훈데르트바서 하우스 또한 이상적인 주거건물을 지어보자는 빈 시 당국의 건의로 지어졌다고 하는데요, 한편으론 시 당국의 지지가 있었기에 고풍스런 건물 이상의 현대적인 건축물 또한 자리 잡을 수 있지 않았나 싶었습니다.

 

* 빈 환상파, 정확히는 빈 환상적리얼리즘파로 제2차대전 후 빈 미술학교의 귀터슬로에게 배워 제작을 시작한 하우스너, 푸크스, 블라우어, 렘덴, 볼프강 후터 등의 화가들과 그들에 의해 형성된 표현양식을 말합니다. 초현실주의의 계보를 따르면서 화려한 색채와 정밀한 묘사기법으로 극히 문학적인 회화세계를 만들었는데 대체로 의식하의 영역에 대한 동경의 색채가 짙고 침울한 환상과 묵시적인 비전을 특징으로 합니다. 수많은 후계자를 낳았고 1960년대 이후 국제적인 평가를 받기에 이르릅니다.

 

마찬가지로 훈데르트바서가 설계한 쿤스트 하우스는 오스트리아 최초의 사설 미술관으로 1991년 4월 9일에 문을 열었습니다. 1층은 티켓 판매소, 카페와 레스토랑, 뮤지엄 숍으로 사용되며, 2층과 3층은 훈데르트바서 상설 전시장, 4층과 5층은 현대미술 기획전이 열린다고 합니다.

 

빈에서 전차를 이용한다면 링 도로(빈 중심부를 둘러싸고 있는 원형 도로)를 중심으로 도시를 느껴볼 수 있습니다. 링 도로는 1857년, 시 중심부를 둘러싸고 있던 성벽을 허물고 만든 것으로, 약 4km의 길이에 너비가 50~60m 되는 넓은 도로입니다. 국립오페라 극장을 비롯해 국회의시당, 시청 등 관광명소의 대부분이 이 링을 따라 자리잡고 있습니다.

 

1862년에 문을 연 시민의 휴식공간, 시립공원. 영국의 풍경을 묘사해 만들었다는 분수와 연못, 세계적인 음악가들의 기념상이 곳곳에 세워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요. 그중에서도 특히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황금빛의 요한 스트라우스 상은 빈의 또 다른 상징이 되고 있습니다.

 

 

링 거리 주변에서 밤늦게까지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게른트너 거리, 슈테판 성당을 볼 수 있는데요. 게른트너 거리는 빈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로 유명 카페와 레스토랑 등이 들어서있는 보행자 전용 거리입니다. 약 600m에 달하며 거리에서는 노래를 부르거나 음악회 티켓을 광고하는 사람도 볼 수 있죠. 오스트리아 최대의 고딕 건축물인 슈테판 성당은 이 또한 빈의 상징적인 건물로 세계에서 3번째로 높은 남탑은 슈테플(Steffl)이라는 애칭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요한 스트라우스의 곡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의 본고장 빈은 과연 예술의 도시라 할 수 있습니다. 시내에는 영광의 역사를 나타내는 건물들이 늘어서있고, 제3의 국제연합 도시답게 현대적 감각이 조화를 이루고 있죠. 위대한 음악가 모차르트가 태어났고, 요한 스트라우스가 '왈츠'를 세상에 알린 곳. '사운드 오브 뮤직'의 배경, 합스부르크 왕가의 웅장한 왕궁들에 빛나는 오스트리아는 정말 다양한 매력을 품고 있습니다. 이제 하루 남은 일정, 빈의 문화적 매력에 지나치게 빠져들지 않는 게 좋겠다는 생각마저 든달까요? :)

 

# 1월 19일 오스트리아 빈

 

 

벨베데레 궁전은 빈의 유력자, 오이겐 폰 사보이 공이 여름 별궁으로 사용하던 궁전입니다. 오스트리아 바로크 건축의 거장 힐데브란트가 설계한 곳으로 1716년 별궁인 하궁을 세웠으며, 1723년 연회장으로 사용하는 상궁을 지어 현재 상궁은 19, 20세기 회화관, 하궁은 오스트리아 미술관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미술관에서 꼭 봐야할 작품으로는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와 '유디트'가 있는데요. 클림트의 작품 외에도 에곤 실레의 작품 또한 볼 수 있는데 그의 작품은 클림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미술관 안, 작품은 어떻게 바라보고 해석하는 게 좋을까요?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이런 궁금증에 관해 정답은 없겠지만 결국 바라 보는 사람의 시선과 마음에 달린 게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클림트의 대표작 '키스'는 처음부터 호평을 받았으며, 작품을 세상에 내놓자마다 오스트리아 정부가 사들였다고 합니다. 문양화된 꽃과 작은 금속 조각을 이어 붙인 듯한 화려한 장식은 마치 모자이크 같이 보이며 금빛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커다란 가운, 얼핏 보면 하나인 듯하지만 엄연히 다른 두 사람임을 보여주는 그림입니다. 두 사람은 어떤 사이였을까요? 여성의 손과 표정 등을 통해 저마다 각기 다른 상상을 해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