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한 대안을 찾는 사람들

공정한 대안을 찾는 사람들 채식로드 기획자의 '제로 웨이스트' 실천기 ③: 배고프고, 배부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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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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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로드 기획자의 '제로 웨이스트' 실천기 ③: 배고프고, 배부르다.

 

글/사진. 여행사업팀장 노진호

 

제품이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라는 우리의 믿음은 버리고, 우리의 소비 행태를 되돌아보아야 할 떄인 것 같다. 우리의 행동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 경우의 수를 짚어보는 데에 조금 더 시간을 투자해도 좋을 것 같다. 한때 천으로 만든 에코백이 유행을 타며 하나의 패션으로 자리 잡았었다. 흰 캔버스 천으로 만든 가방이 에코백이 아니고, 이미 우리가 가진 가방을 오래도록 쓰는 것이야 말로 에코백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 핀란드 사람들은 왜 중고가게에 갈까?(2019), 박현선, 헤이북스

 

한창 멋을 부릴 때는 옷, 모자, 가방, 신발 등을 시도 때도 없이 구입했다. (쇼핑몰을 해볼까 생각해볼 정도로 관심이 많았다) 하지만 유행이 지나면 버렸고, 옷장과 신발장은 새로운 것들로 채워졌다.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라는 것을 깨닫고, 언제 그랬냐는 듯 패션에 대한 관심이 떨어졌다. 지금은 신발이 구멍이 나거나, 가방줄이 끊어지거나, 옷에 구멍이 날때까지 사용한다. 그래서 본가에 갈 때마다 엄마에게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이렇게 그지같이 하고 다니냐'는 꾸중을 듣곤 한다. 요즘은 집에 갈 때, 최대한 멀끔한 상태를 유지한다.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한 지 3일 째, 주변 분들의 응원과 공감을 받았다. 힘이 난다. 팀원의 일침으로 면 마스크를 구입했고, 처음 사용해봤는데 생각보다 많이 답답하고 숨을 쉬기가 어려웠다. 이런 시련을 준 팀원에게 감사하다. 원래 잘 되는 영화나 드라마는 주인공에게 시련이 닥친다. 

 

비가 내렸다. 비가 내리는 날에는 막걸리에 파전이 생각났었는데 오늘은 달랐다. 건물 입구마다 비치된 우산 비닐 커버가 떠올랐다. 기사에 따르면 매년 버려지는 우산 비닐 커버가 2억 장이라고 한다. 재활용도 거의 안된다. 다행히 사무실 건물은 우산 비닐을 제공하지 않았다. 

 

 

음료를 주문할 일이 생겼다. 텀블러를 사용했다. 작년에 서울시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와 함께 대만 연수를 갔을 때, 선물받았던 텀블러를 잘 사용하고 있다. 만약 이 글을 보신다면 아주 뿌듯해하실 게 분명하다. 문득 사람들이 텀블러를 몇 개 가지고 있고, 한 텀블러를 얼마나(기간) 사용하는지 궁금했다. (난 하나도 산 적이 없는데 집에 5개나 있다)

 

 

역시나 식당 입구에는 우산 비닐 커버가 비치돼 있었다. 사용하지 않았다. 점심을 먹다가 나에게 시련을 준 팀원이 또 다른 의문을 제기했다. '제로 웨이스트면 음식도 남기지 않아야 되는 거죠?' 순간 내 앞에 펼쳐진 형형색색의 반찬들이 눈에 들어왔다. 밥 한 공기도 겨우 먹는 나에게........ 괜찮다. 나는 주인공이기 때문에 이 역경을 헤쳐나갈 수 있다. 반찬을 다 먹진 못했지만 밥그릇, 국그릇은 깨끗이 비웠다. 생각보다 내가 많이 먹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앞으로 동료들 앞에서 무언가 시도한다고 함부로 얘기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오후에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하여 업무를 하다 보면 (사장님이 보고 있다) 허기가 진다. 어제 팀원이 나워 준 쿠키가 떠올랐다. 먹고 싶었다. 하지만 참았다. 지금의 허기는 허상이라고 생각했다. 언젠가 너무 안 먹어서 배가 아파야 배가 고픈거라고 들었던 게 생각났다. 배가 아프지 않았다. 먹을 수 없었다. 나는 배고프지 않았다....... 

 

저녁은 이사님과 함께 부대찌개를 먹었다. 이사님이 라면사리와 햄사리를 추가로 주문했다. 설렜다. 부대찌개는 내가 좋아하는 메뉴 중 하나다. 아무생각없이 담소를 나누며 먹고 있는데 이사님께서 말씀하셨다. "제로 웨이스트하면 음식도 남기지 않는 거지?" 당황했다. 난 이사님에게 '제로 웨이스트'를 한다고 말한 적이 없었다. '우리 팀원의 소행인가? 날 음해하려는 시도인가? 내가 뭘 잘못했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렇죠."라고 대답했다.

 

열심히 먹었다. 난 원래 밥을 다 먹으면 더 이상 반찬을 먹지 않는다. 오늘은 예외였다. 밥을 다 먹고도 무려 세 번이나 부대찌개를 더 먹었다. 짰다. 물을 마셨다. 또 먹었다. 엄청 짰다. 물을 마셨다. 밥을 더 시킬까 했지만 그건 무리였다. 결국 다 먹지 못했고, 과유불급을 다시 한 번 되새겼다.

 

 

제로 웨이스트....... 배고프고, 배부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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